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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쓴이 Oct 06. 2022

진상을 대하는 자세

진상의 진상을 밝히다.


어른인데도 불구하고 말도 안 되는 일로 떼를 쓰거나, 이유 없이 화를 내고 언성을 높이는 이들을 우리는 속된 말로 ‘진상’이라고 부른다. 그렇다. 진상은 어딜 가나 있다.


물리치료사로 정형외과에서 근무할 때는 하루에 100명도 넘는 다양한 환자들을 접했다.

물론 좋으신 분들이 대다수였지만, 병원에서도 진상은 분명 존재했다.

사회 초년생일 때에는 그런 환자를 겪고 나면, 크게 상처를 받기도 하고 일에 대한 회의감까지 들었었다. 아무래도 지금보다는 훨씬 어린 나이에 멘털도 약했고, 그저 자신을 피해자라고만 느꼈다. 하지만 그동안 책도 많이 읽고 경험도 쌓으면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이 많아지면서 내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진상들을 그저 무례한 사람, 어른 같지 않은 어른이라고만 생각했다면, 지금은 그저 몸보다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무엇이 저들을 그토록 화나게 하고, 무력을 쓰는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부자여도 내면이 가난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이고, 가난을 무기 삼아 세상에 화풀이하는 사람들도 넘쳐나는 세상이다. 이러나저러나 꼭 외부 환경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마음의 문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관계마저 손익을 따진 지는 꽤 오래된 듯하다. 인간 대 인간으로 진정한 감정의 교류를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새 인권을 잊고 살게 된 것은 아닐까?

결국 그들도 우리가 공통으로 갖는 ‘인간으로서 대접받고 싶은 마음’의 바람이 내면적으로 채워지지 않은 채, 병적으로 발현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코 자신들도 채워지지 않을 행동으로 남들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있는 셈이다.


물론 내면이 텅 비어있건, 채워져 있건 그들의 행동이 잘못된 것은 극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 진상의 진상(眞相)을 알면, 적어도 그들과 같이 화를 내거나 언성을 높이지는 않아도 된다. 단순히 몸이 아픈 게 아닌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측은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다 보면 앞뒤 없는 무례한 언행으로부터 자신을 자책할 일도, 마음에 상처를 받는 일도 조금은 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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