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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쓴이 Oct 21. 2022

나는 아직 어린데 엄마가 사라졌다.

엄마의 부재

엄마가 곁에 없다는 걸 문득문득 깨닫는다.

마지막 중환자실에서 마주했던 엄마가 잊히지 않는다. 엄마가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내 손을 꽉 쥐어잡던 그 순간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영락없이 무너지고 만다. 살면서 한 번도 그런 엄마의 묵직한 의지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생생한 순간마저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얼마나 더 엄마에 대한 기억으로 목말라 있었을까.

유난히 기억력이 안 좋은 내가 앞으로 살면서 그렇게 또렷한 순간을 몇 번이나 더 맞이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날의 그 눈빛, 촉감, 공기, 냄새를 잊을 수가 없다.


희미하면 희미해서 슬프고, 선명하면 선명해서 슬픈 것. 그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겠지.

외면한다고 해서 슬픔이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버린 사람에게는 슬픔을 피할 별다른 도리가 없다. 그렇다고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하기엔 아직은 버겁기만 하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실감할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는 걸까. 그 시간의 기준은 대체 누가 정하는 것이며, 그 시간에 과연 끝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나는 어리고, 여리고, 자주 흔들리는 존재다.

하지만 이런 나를 바로잡아 줄 사람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 또한 잘 안다. 이건 오롯이 나만의 숙제이다.


사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극복이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겪고 있는 이 모든 감정들을 마치 꼭 넘어야 할 산처럼 대하고 싶지 않을뿐더러,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도 아직은 한참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에게 엄마의 부재는 몸속 아주 깊은 곳에 잠식해 있다가 면역이 떨어지면 발병하는 바이러스 균처럼, 그렇게 평생을 이고 가야 할 숙명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나는 면역력을 키우려 노력할 뿐, 완전히 부정할 수도 제거할 수도 없는 맘속 화석 같은 상처 자국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당분간은 나름의 적절한 시늉들을 해내면서 잘 지내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다 어느 날엔가 나도 모르게  이상 시늉이 아닌 진짜 일상을 제대로 마주 하고 있는 자신을 문득 발견하게 되는 순간, 그때는 정말 기쁜 마음으로 엄마를 오롯이 떠올릴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사랑하는 딸을 끝까지 지켜보고, 지켜줄 엄마에게_


2020년 1월 22일

엄마를 보낸  1 되던 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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