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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쓴이 Oct 20. 2022

봉봉원

나이를 먹는다는 것.

오래전 직장 동료들과 함께 갔던 기억에 남는 중식당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식당 이름은 봉봉원. 발음할 때 귀여운 소리가 나는 아주 정겨운 이름의 식당이다.

대전 목척교 포장마차 거리 사이 골목에 위치한 작지만 포근한 느낌의 가게였다.

같이 온 직원 선생님이 몇 번 와본 적이 있어 주인 할머니가 친절하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그 친절을 몸소 느끼고 나니 왜 그렇게 특별히 할머니 얘기를 했는지 알 듯했다.

가게로 들어가자마자 느낀 것은 식당에 들어온 게 아니라 어느 가정집을 방문한 기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아들이 운영하는 진짜 가족들이 운영하는 중화 요리점이었다.

우리는 이 집에서 제일 맛있기로 소문난 양장피와 탕수육을 주문했다. 그런데 메인 요리가 나오기도 전에 시키지도 않은 음식들이 계속 나오는 거다.

무려 조개탕과 짜장밥과 음료가 서비스란다.

일단 서비스부터가 말도 안 된다. 그 어떤 맛있는 요리라도 한국 사람들은 밥이 없으면 서운해한다는 사실을 어찌 그리 잘 아시고. 거기다 따뜻한 국물까지 곁들이니 서비스만 먹어도 속이 든든할 것 같았다.

먼저 나온 음식으로 한창 요기를 하고 있는데 옆 테이블 아저씨들이 음식을 다 드셨는지 일어날 기세였다. 그런데 그중에 한 아저씨가 할머니에게 오늘 음식이 유독 짰다며 건더기만 건져 먹었다고 인상을 찌푸리셨다.

아저씨의 짜증 섞인 말에 할머니는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을 지으시며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하셨다. 그리고는 곧 요리를 한 할아버지를 향해 가느다란 눈을 흘기시면서 할아버지를 나무라셨다. 할머니의 핀잔에 할아버지는 대꾸도 없이 멋쩍게 웃어 보이셨다.

그런데 이상한 건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한창 나무라는 와중에도 오히려 가게에 어떤 삭막함보다는 훈훈한 기운이 느껴지는 거였다.

아마 그 장면에 음소거 버튼이 눌렸다면 아무도 두 분이 다투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나무라는 할머니와 그걸 듣고 있는 할아버지 사이에는 오로지 평화만이 흐르고 있었다.

순간 나도 저 두 분처럼 나이 들고 싶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 어떤 누군가가 면전에 대놓고 나에게 안 좋은 소리나 불리한 말들을 쏟아 내도 얼굴 한 번 구기지 않고 저렇게 여유 있는 웃음을 지을 수수 있는 그런 어른다운 어른 말이다.

잠깐의 상념에 잠긴 사이, 드디어 메인 메뉴인 양장피와 탕수육이 나왔다. 우리는 음식이 나오자마자 어김없이 각자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고, 할머니는 그런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신 후 양장피를 직접 손으로 비벼주셨다. 맛은 혹시나 하지도 않았지만 역시나 맛있었다.

어느 낯선 곳에서의 친절과 음식은 항상 마음을 움직이는 법. 그런 곳에서의 음식은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우리는 한마디 대화도 없이 음식을 폭풍 흡입한 후에야 겨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배가 산더미처럼 부른 채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할머니와의 짧은 담소도 이어졌다.

할머니는 급히 방 안에서 어떤 책자를 꺼내 오시더니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대전 시청에서 뽑은 식당으로 시청 책자 속 한 페이지에 봉봉원이 실렸다는 것이다. 대전에 그 많은 음식점들 중에 유일하게 당신네 가게가 뽑혔다면서 해맑게 웃어 보이셨다. 여태껏 내가 본 자기 입으로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 중, 제일 멋지고 근사해 보였다.

웃어 보이는 할머니의 깊은 주름엔 절대로 흔들릴 것 같지 않을 어떤 자긍심과 행복이 끼어 있었다.

세월을 보낸다는 게 꼭 서럽고 아쉬워할 일만은 아니라는 걸 몸소 보여주신 어르신 덕에 더 따뜻한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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