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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팅달 Aug 19. 2022

엄마에게 맞는 재활병원 선택하기


원래의 계획은 대학병원에서 4주간 재활을 마치고,

엄마가 입원해있던 요양병원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었다.

엄마의 상황으로 갈 수 있는 병원은 선택의 폭이 매우 좁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위관(콧줄)과 도뇨관(소변줄)을 빼고도, 몸의 상태가 정상수치로 회복되니.

의사들은 엄마가 1등이라면서 (엄마 같은 환자가 없다고) 힘을 불어넣어 줬다.

그래서인지 엄마가 더 힘을 얻어 식사도 잘하시고, 소변도 정상적으로 잘 보셨다.       

입원한 지 열흘 정도 지났을까? 대학병원 진료협력실에서 연락이 왔다.

다음에 갈 병원을 정하자고.

응? 벌써?     


대학병원 입장에서 더 많은 환자를 받기 위해 재활 병동은 입원을 3주로 정했단다.

으... 이 병원을 들어오기 위해 1년을 넘게 기다렸는데. 3주 만에 퇴원이라니...

그래도 큰 소득이 있었다. 콧줄과 소변줄을 제거했으니까.

이젠 재활에 신경 써서 운동신경만 돌아오면 되는 상황~~ 이런 날이 올 줄이야...

기도는 하고 있었지만, 꿈에도 생각을 못했었다.

이것은 엄마의 신앙심과 믿음의 힘이다.

         

진료협력실은 굳이 예전의 요양병원으로 갈 필요가 있겠냐며,

나에게 재활전문병원에 병원의 소견서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너무 좋아서 그 리스트를 보니,

어머머머머.... 예전부터 내가 가고 싶었던 그 병원!

재활을 엄청 잘한다는 그 병원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었다.

안 그래도 올해 1월에 그 병원에 전화를 해서 가고 싶다고 했더니,

자리가 없다면서 칼같이 전화를 끊었던 그 병원이었다.

       

“난 재활병원 가기 싫다. 그냥 예전 ‘ㅁ’ 병원으로 가면 안 될까?”

“엄마! 일어나서 걸으셔야지! 로봇치료도 가능한 곳이라고 하니까... 거기로 가자!”     



엄마는 힘들다고, 여기저기 아파서 못살겠다고 하셨으나

나는 대학병원에서 추천해줄 때, 갈 수 있을 때, 하루라도 젊을 때 가야 한다고 무조건 우겼다.

그래서 대학병원에 입원한 지 3주 만에 드디어... 재활전문병원으로 이동을 했다.

뇌질환 환자 재활로 유명한 곳이니, 괜히 이곳에만 가면 엄마가 정말로 걸으실 것만 같았다.    

  


재활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또 코로나 검사를 했다.

어제 대학병원에서 하고 왔는데, 또?

하지만 하루에 코로나 환자가 10만 명에 가까우니 해야겠지...

재활의학과 담당 원장과 면담을 할 때, 의사는 엄마의 상태를 보고 한방치료도 가능하니까 침을 맞으면 좋겠다고 처방을 해줬다. 이후 엄마의 골절상태를 보기 위해 X-ray를. 염증 수치와 영양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혈액 채취를 했다. 엄마와 내가 검사를 하는 동안, 여사님이 병동에 올라가서 병실 상태를 보고 오셨는데...      


“6인실은 안되갔시오. 어머니는 욕창 때문에 계속 뒤집어줘야 하는데 공간이 없어요!”

“침대가 중간자리라서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다른 병실을 달라고 해볼까요?”

“6인실을 내가 다 돌아보고 왔는데, 없드라니까. 3인실은 있던데.... 쫌 나아요. 3인실로 옮기면 좋겠는데...”     


내가 엄마를 돌보는 것이 아니니, 여사님과 엄마가 편해야 하니까,

하루에 1만원이 더 들지만 욕창이 생기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당장 6인실에서 3인실로 바꿨다.        


입원실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데. 침대 때문에도 문제가 생겼다.

요양병원에 있는 침대보다 너무 좁고, 짧은 크기랄까?

정말 엄마가 누우면 빈틈이 거의 없을 정도의 침대였다. (키 큰 사람은 다리가 빠져 나온다고 간호사가 말할 정도니까)

엄마에게 욕창 베개가 6개가 있는데, 하나도 들어갈 자리가 없던 것이다.

간호사에게 바꿔달라고 말하니,

이 병원은 국립재활병원이라서... 정부지침에 따라 코로나 방역을 위한 거리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얼마 전에 좁은 침대들로 싹 다 바꿨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고. 그냥 쓰라고...

병실도 침대도 맘에 들지 않지만... 여사님이 어떻게든 간병을 해보겠다고 하셔서, 침대 문제는 넘어갔다.


장난하나... 간장이 반찬 중에 하나라니? 엄마가 드실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침대의 폭도 15센티는 작은 듯....  


집에 돌아와서 엄마의 소품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엄마가 저녁에 맛이 없어서 식사를 못하시겠다고 하셨단다.


그런데 이번엔 식사였다.

깜짝 놀랐다. 여사님이 사진을 찍어서 보내줬는데...

연하 환자의 식사라고 하기엔 너무 심각하잖아!     

밥을 먹어야 약을 드시는데, 이런 밥을 어떻게 드시냐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나오면 큰일이라고....


그러게... 어쨌든 저녁을 안 드셨다니까

그 말에 죽과 엄마가 드실 수 있는 반찬들을 믹서기에 갈아서 가져갔는데...

굶다가 잠이 들어버리셨다는 거다.

아.... 그런데 여사님이 투정을 하시는데, 갑자기 짜증으로 확 솟구쳤다.      


“여사님, 이 병원이 되게 좋은 곳이에요! 엄마는 이 병원을 나가면 앞으로는 못 들어와요. 그러니 조금만 버텨보죠. 여사님이 말씀하시는 그 요양병원과는 기능이 다르다고요!”

“알갓시오. 내 우선 어머니 식사가 걱정이라서 그러지...”     


1년 반을 같이 있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여사님께 화를 냈다.

자꾸 여사님이 불평을 하시면, 환자가 불안해서 어떻게 재활을 받냐...

제발 좋게 좋게 긍정적으로 말 좀 해달라고 요구를 했다.

여사님은 열악한 상황을 설명했을 뿐이라며 민망하신 듯 병실로 올라가셨다.


집으로 오는데 여사님이 그만두시면 어쩌나... 또 불안감이 밀려왔다.

하아... 그날 밤... 잠이 안 왔다.

다음날 새벽예배도 못 가고 뜬눈으로 맘을 샜는데, 새벽부터 여사님에게 문자가 왔다.

아침식사를 찍어 보낸 것이다.


정말 뜨악.... 도저히 엄마가 드실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이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어제 가져다준 죽을 좀 드셔 보라고 했더니 입맛이 없다고 한 숨만 내쉬셨다.      

잠을 잘 자고, 식사를 잘해야 몸이 나을 텐데...

잠자리도 식사도 영 엄마와 맞지 않으니...



내 선택이 잘못된 걸까?     

여사님은 오전 치료 스케줄을 위해 엄마를 모시고 운동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역시 치료시설은 깔끔하고 넓고 치료기계도 많고 대학병원보다 훨씬 좋다고 했다.  

그러나 엄마가 하셨던 운동은 고작 요양병원에서 했던 그 정도의 치료만 가능하다고...     


“하나님... 제가 뭔가 크게 잘못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떡하죠?...”     


마음 가운데 질문이 생겼다. 나의 행동은 지금 엄마를 위한 선택이었니?

생각해보니 “지금”이 아닌 “앞으로”에 대한 선택이었다.

엄마는 88세의 누워있는 환자라 휴식이 필요한데,

이곳은 걸어 다니는 젊은 사람들이 일상생활로 회복하기 위해 치료받는 병원이었던 것이다.      


난 바보다. 또 실수했다.

나의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엄마가 지금 너무 고생을 하고 계신다!

신중하게 선택했다고 여겼지만

사실은 내 욕심과 의욕이 너무 앞섰기 때문에 초래한 결과였다.      

반성하면서 당장 예전에 있던 병원에 전화를 걸어, 병상이 남아 있냐고 물었다.  

다행히 대학병원에서 소견서를 미리 그 병원에 보내줬었고, 어제 이 병원에서 코로나 검사를 했기 때문에 필요한 서류는 다 구비되어 있으며, 엄마가 사용하시던 그 침대는 환자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들어오라고 했다. (아이고 감사해라...)     

엄마에게 이 병원을 퇴원하고, 엄마가 원하는 병원으로 갈 거라고 말했더니 매우 좋아하셨다.

그렇게 오후에 예전의 ‘ㅁ’ 병원으로 다시 옮기셨다.



담당의사가 엄마의 상태를 보고 화들짝 놀랬다.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냐고!!      

엄마가 콧줄과 소변줄을 제거하고 온 것을 보고,

담당의사를 비롯해서 간호사와 치료사들이 엄마의 병실로 몰려갔단다.

심지어 병원 원장님도 엄마를 보기 위해 바로 병실에 가서 엄청 축하를 해주셨다고 했다.      


여기저기서 엄마에게 악수를 청하고,

건강해져서 오셔서 축하한다고 박수를 쳐주고,

주변의 환자들도 부러워하고...

한바탕 축제 분위기였고

엄마는 이 병원에 들어간 순간부터 스타가 되셨다.

담당의사는 ‘믿음’에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 시선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 병원에서 처음 있는 일이란다. 엄마의 나이에 오늘내일했던 분이 이렇게 회복이 되는 것은 보기 드물다고... 역시 믿음의 힘은 크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그날 저녁부터 엄마는 식사를 정말 잘하셨다.

밥맛이 돌아왔다며 엄마는 나에게 아무것도 사 오지 말라고, 이 병원에서 열심히 재활을 하겠노라고

웃어주셨다.      

그 웃음에 마음이 확 놓였다.

긴장해서 마음에 돌덩이 같은 게 있었는데....

확 풀어진 느낌이랄까..... 정말 감사했다.




엄마 위주로 생각해야 하는데

아직도 난 나 위주로 엄마를 바라보는가 보다.

또 한 번 반성하면서...

엄마를 위해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를 생각하고 잘 선택해야 하겠다.

그래야 엄마가 고생을 하지 않으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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