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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Oct 18. 2020

소년이 소녀에게 - 2

이상한 아이.



소녀 -


선생님들은 좀처럼 학생들에게 관심이 없다. 관심이 있는 척만 할 뿐 그 속내를 깊이 들여다 봐 주지 않는다.

몰라 적어도 나한테 우리 담임이란 작자가 요즘 그러던걸.

  나는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한 달 전부터 줄곧 혼자 앉았다. 홀수 명인 우리 반은 필연적으로 혼자 앉는 사람이 생기는데 한 달에 한 번씩 제비뽑기로 짝을 정했다. 그런데 여름방학 전 마지막 달엔 내가 그 불운의 주인공이 됐다. 어차피 늘 혼자이긴 하지만 그래도 혼자 앉는 건 싫어.

하루하루 손가락 접어가며 시간을 흘렸다. 그렇게 방학이 되고 이제 끝이다 싶었는데 개학을 하니 속도 없는 담임이 한 달 더 이대로 앉잔다. 이 뜨거운 건 무엇인가 하니 속에서 불구덩이가 들끓어 그랬다. 그렇지만 밖으로 불만을 낼 수는 없다. 이의가 있는 것은 오직 나 하나니까. 그렇기에 여즉 손가락 꼽아 날짜를 세고 있다.

그런데 어제 그 애와의 일로 내가 혼자 있다는 사실이 더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심장이 조였다. 그 애가 혼자인 나를 보는 게 싫다. 부러 민정이네 반으로 쉬는 시간이면 달려갔다.


 그 애 쪽은 쳐다도 보지 않으려 머리를 굴렸다. 이따금씩 뒤통수가 콕콕 쑤셨지만 그건 그 애를 의식한 내 착각이겠거니 했다. 괜히 그 애를 의식해봤자 친하지도 않은 여자애들한테 미움이나 사겠지 싶어 일부러 관심도 꺼버렸다.

그런대로 마주치지 않기로 한 나만의 계획은 성공한 듯도 했다. 물론 내가 그 애를 쳐다보지 않아서 모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 애기들이 자기 얼굴만 커튼 속에 파묻고 숨바꼭질하듯이. 나도 오늘 하루 종일 내 얼굴만 숨겼다. 문 뒤로, 책 뒤로, 머리카락 뒤로 내 눈만 숨겼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게만 작전 성공인 오후가 됐다.



종일 그 애 피한다고 다른 날에 비해 곱절은 피곤했다. 터덜터덜 플라타너스 벤치로 향하는 몸이 두 근 반 세근 반한다. 그리고 그렇게 툭 무심코 돌아본 운동장엔 글쎄, 오늘도 그 애가 있었다.


 오늘은 혼자다. 떠벌이들은 어디다 두고?

공을 들고 있지만 그 애의 커다란 시선이 온통 내게 쏟아진다. 나는 고개를 티 나게 홱 돌리고는 얼른 벤치에 앉아 신발을 꺼냈다. 고개를 있는 대로 푹 숙이고 운동화에 발을 쑤셔 넣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끈이 풀려있을게 뭐람. 애써 모른 척 리본을 묶는데 신발 위로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림자마저 머리카락이 북슬북슬한 것이 분명 모카빵 복실이다. 외면해본다. 다시 끈을 묶으려니 그 애 이마에서 땀방울이 톡 하고 내 운동화 끝에 떨군다.

-저기..

결국 그 애가 말을 걸어온다. 내 심장은 요동치기 시작한다. 눈을 들어 그 애를 바라봤다. 궁금함이 가득 한 표정.

- 너 나 피해? 왜...?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까. 그렇다고 말하면 그 애가 뭐라고 생각할까. 아니라고 하기엔 하루 종일 내 행동이 그렇지 못하다. 심장은 더 빨리 뛰고 호흡이 가빠진다. 이내 숨쉬기가 불편할 정도로.

- 아. 아니. 저기.. 미안한데 나 먼저 갈게.

등 뒤로 그 애의 시선이 내다 꽂힌다. 따갑다. 무지무지. 바늘에 찔려 피가 송글송글 맺힌것마냥 따갑다.



탁탁탁탁. 그 애 발걸음 소리만 들린다. 들리라고 더 크게 탁탁대며 걷는 건지 그 애를 향해 코끼리 만치 커진 내 귀가 그렇게 듣는 건지. 내가 훽 돌면 그 애는 툭 멈춘다. 그리고는 장난 띈 얼굴에 미소 달고 딴청이다. 내가 뒤돌아 다시 걷기 시작하면 또다시 탁탁탁탁 그 애 발소리. 얍실하게 녀석이 또 멈출까 눈치 채지 못하게 더 빨리 훽 돌자 그 애가 미쳐 멈추지 못하고 내 코앞에서 부딪힐양 섰다.

-왜 따라오는데?

-나도 집에 가는 길인데? 따라간 거 아닌데?

그 애가 드리워진 앞머리 사이로 입술을 깨물며 웃는다.
너무 그 애랑 가까워 얼굴에 피가 쏠리는가 후끈후끈 뜨겁다. 제대로 서있기도 힘든 후들거리는 다리에 어찌어찌 힘을 주어 다시 뒤돌아 걷는다.


복실이 녀석 어느 틈에 강아지 마냥 쭐래쭐래 따라붙어 키득대며

-사실 따라가는 거 맞는데?

한다. 죽여버릴까?


소녀 -왜?
소년-그냥.
소녀-싱겁다.
소년-풋.


골목길 중간까지 말이 없다. 들리는 건 오롯이 진정 못하는 내 심장소리다. 심장이 귀에서도 나불대며 뛰는지 이제 알았다.

소년- 원래 말이 없어?
소녀- 아빠 닮았다. 친구랑은 그래도 말 잘해.
소년- 아, 9반 민정이? 얼굴은?
소녀- ..... 엄마.

그런 건 왜 묻냐 쏘아보는 내 눈빛에 그 애가 또 ‘힛’ 웃는다. 높다란 콧잔등 위로 녀석의 앞머리가 흔들댄다. 자꾸 웃으면 정든다는 어른들이 하는 말이 생각나 무섭다.


소녀 - 넌 나한테 왜 그래?
소년- 뭐가?
소녀 - 왜 따라와?
소년 - ....


대답이 없어 슬쩍 복실이 놈을 곁눈질하니 혼자 반달눈 접어 웃고 있다. 이 웃음에 홀랑 반해 우리 반 여자애들이  다 그렇지. 쯧쯧.
한참을 말이 없다. 그렇게 몇 분일까. 그 애와 내 발걸음 소리, 간간히 들리는 숨소리만 배경처럼 깔렸다. 탁탁 탁탁 쌔액쌔액. 그러다가 그 애의 고개가 어쩐지 나를 향해 돌아오는 것 같기에 슬쩍 보니

소년 - 너 바보구나?

하매 순식간에 나를 앞질러 지나간다. 어깨 한쪽에 뭐가 들었는지 그게 아니면 암것도 없는 건지 납짝한 가방을 들쳐 메고 복실이가 나풀나풀 걸어간다. 좁다란 돌담벽 이름 모를 들풀 꽃 사이 그 애가 성큼성큼 멀어진다. 이 순간 내 눈이 사진기라면 좋겠다. 그렇다면 찰칵 찍어 내 눈에만 간직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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