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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Oct 26. 2020

소년이 소녀에게 - 5

소나기



소년 -


 그 날은 아침부터 조금 이상했다. 시커먼 먼지 덩어리 같은 구름이 꾸덕꾸덕 하늘에 끼더니 별안간 벼락까지 쳐대는 통에 병원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됐다. 그래도 가는 게 좋겠지. 약을 받아와야 하니까.


-엄마, 비 오니까 따뜻한 거 입어요.
-그래, 아들.


 엄마는 오래전부터 우울증을 앓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사소한 일에 쉽게 화를 내고, 울고, 가족들과 다툼을 하더니 엄마는 마음의 문을 꽁꽁 닫기 시작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우리는 이제나 저제나 전전긍긍 엄마를 기다렸다. 그렇지만 우리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마음은 언제나 외딴섬으로 향했다. 우리가 곁에 있는 데도 엄마의 뒷모습은 늘 외로웠다.



 그렇게 엄마와 함께 병원을 다닌 지 2년째다. 가기 싫다던 엄마를 어르고 달랜 아빠와 함께, 그리고 그나마 가족들 중에 엄마가 가장 마음을 많이 털어놓았던 어린 나와 함께. 첫날 이후 엄마는 늘 나와 함께 병원에 왔다. 혼자 보내는 것은 못내 가족들이 불안하고 엄마는 내 말이라면 그래도 잘 들어줬으니까.



 택시 창 밖으로 빗물이 우르르 후드득 떨어져 내린다. 물이 지나간 자국을 따라 세상이 울퉁불퉁 모양을 바꾼다. 택시기사 아저씨가 급하게 와이퍼를 가장 빠른 속도로 올려보지만 빗물에 창밖이 가리어지는 속도가 더 빠르다. 어쩐지 가슴팍이 답답해져 온다. 엄마가 또 우울해질까 봐. 옆에서 하염없이 창밖을 응시하는 엄마의 손을 잡았다. 비가 오면서 급격히 내려간 온도에 엄마 손도 차갑다. 내 손의 온기에 엄마가 나를 돌아보고 살풋 웃어준다. 그래도 그 미소에 조금 마음이 놓였다.


 내려서 빨리 편다고 우산을 폈는데도 온몸이 다 젖을 만큼 비를 맞았다. 얼굴 위로도 빗물이 흘러내리지만 뭐, 상관없다. 엄마를 먼저 건물 안으로 들여보내고 우산에 흥건한 빗물을 탈탈 털어냈다. 산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우산 위에 물방울이 유리구슬처럼 매달렸다 떨어진다.

 우산에 비닐을 씌워 병원 안으로 들어가는 자동문의 버튼을 눌렀다. 유리문이 왼쪽으로 제 모습을 치우자 그곳에 그 애가 또 그렇게 서 있었다. 순간 시간이 멈췄나 했다. 사람들이 문 사이를 지나가고 우리는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다.

 다시 시간의 태엽을 돌린 건 나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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