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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Oct 30. 2020

소년이 소녀에게 - 6

비밀이야


소녀 -



그렇게 한동안 하늘을 가리던 초가을의 물줄기도 잦아들고 월요일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토요일 아침 병원에서 어색한 마주침 끝에 나는 다시  애를 뒤로하고 빗속을 달려 집에 왔다.  애의 눈이 닿으면  뒤가 홧홧하고 따끔거리는  빗속에서도 똑같더라. 주말 내내 눈꺼풀만  위에 올려놓고 정작 잠은 한숨도  잤다. 생각이 머릿속을 동동 맴돌아 잠이 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주로 맴도는  빗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커다란 눈으로 나를 꿰뚫던  애의 얼굴이었다.


  애는  거기 있었을까, 나는  거기 있었을까. 정신과 병동에서 나오는 나를 보고  애는 무슨 생각을 할까. 나를 정신병자라고 학교에 소문이나 내지 않을까. 생각만으로도 골치가 아파와서   시선은 분홍색 마법의 알약으로 향하고 그다음으로는 손이 다가간다. 그러다 이내 거둬들였다. .. 정신병자가 아니야.


영영 오지 않았으면 했던 오늘도 날은 밝았다.  기분이 어떻든 관심 없는 세상은 째깍째깍   일을 한다. 비도 멎고, 해도 뜨고,  애를 마주  시간도 성큼성큼 다가오고.


 오늘은 어쩐지  하루 종일  애가 나를 쳐다보는  같았다.  피해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체육시간에 그만 모든   수포로 돌아갔지 . 같은 반이면서 피한다는  애당초 말이  되긴 하다.


운동장은 온통 빗물에 젖어 모래가 찰퍽거렸다.  위에서 체육을   없으니 체육관이 따로 없는 우리 학교는 비가  다음 날이면 플라타너스 벤치  너른 길에서 체육 수업을 했다. 오늘은 줄넘기 수업이었다. 이단 뛰기를 한번,  ,,, 그렇게 스무  넘고 나면 통과다. 줄넘기라면 자신 있던 나는 단박에 스무  그까짓  뛰어버리고 얼른  애를 피해 운동장  스탠드로 향했다. 스무 번이나   사람은 상으로 쉬는 시간이 주어졌으므로.


 돌로 되어있는 스탠드는 빗물이 없이 꼬들꼬들해 그런대로 앉을만했다. 앉아서 땅이 꺼지나 내가 꺼지나 한숨을 푹푹 몰아쉬고 있는데 언제 쫓아온 건지  애가 덜컥  옆에 앉아버렸다. 도망갈 틈도 없이.  외커플 커다란 눈동자로 빤히 보는데, 이번엔 정말 하는  없었다.

- 들어갔어?  많이 왔었는데.

벌써  멀리서부터  녀석을 흠모하는 여자애들의 따가운 시선이, 떠벌이들의 시선이 바늘 같다. 이렇게 나는  공공의 적이 되는가.

-. 집이 가까워. 병원에서..
-좋겠다. 우리 집은 멀어서 매번 택시 타고 가는데.

매번?  가는데..? 거길 ?

-병원은..  다니는 거야? 물어봐도 ?

내가 먼저 묻고 싶었던  질문을  애가 선수  물었다. 그건 나도 묻고 싶은 말이었는데. 묵묵히 생각을 떠다니는 단어를  개씩 들고 되짚어 정답에 가까운 말을 찾아보는데 그런  없더라. 그래서 내가 궁금한걸 먼저 물었다.

-.. 내가 안이상해? 말도 없고.  혼자 다니는데.

 애가 빤히 본다. 정말 모르겠다고 말하는 얼굴인거야, 지금.


-그게  이상해?

딱히  말이 없네.  이상하냐고 묻는다면. 그냥.. 애들이 싫어하잖아. 혼자 있는 .  같은 .


-말이 너무 없어서 다녀. 병원. 사람들 앞에서 너무 긴장을 많이 해서. 불안해해서.
-그렇구나. 지금 내가 옆에 있는 것도 불편해, 그럼?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하면  애가 멀어질  같고, 아니라고 하자니 거짓말이고. 불편하긴 하지만 다른 아이들만큼은 아니라고 할까? 니가 멀어지는  싫은데. 그러고 보니 다른 아이들처럼 니가 불편하고 어색하진 않았어. 어쩐지 처음부터. 그건  이상한 일이야.
 


 결국 대답 못하고 발로 애꿎은 돌바닥만 퍽퍽 쳤다. 그렇게 볼이나 부풀리고 입을 비죽였다. 그러다  애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엄마가 아프시다고. 엄마가 혼자 마음의 벽을 만든  2년이 되어간다고.  벽이 허물어지길 기다리며  함께 병원에 가주고 있다고. 쓸쓸한 표정을 매달고 피식 웃는데 미소가  슬펐다. 커다란 눈에 눈물이 없어도 사람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애를 보며 느꼈다. 그러면   애의 머리칼이 부스스 내려와 눈을 덮고 바람에 헝크린다. 울지 말라고  눈을 가려주는  같았다.


 그러고 보니.. 2년이라면, 나도 꼬박 2년을 다녔는데  우린  번도 마주치지 못했을까? 그러다가 이제서야, 같은 반이 되고 서로를 알게  이제서야 그곳에서 마주쳤을까? 그것도  신기한 일이다.


 나는 그렇게 그냥  애를 바라봤다. 이상하다. 다른 애들과 있을 때처럼 긴장되거나 불안하지 않더라. 민정이 이외에 이런 사람은 처음인  같았다. 의사 선생님 말처럼 괜찮다 괜찮다 해서 괜찮아진 걸까, 지금까지 걸어온 시간들에 감정이 마모가 되어 그런 걸까. 그게 아니라면 너와 내가 가진 공통점을  눈이, 다른 아이들과 있을 때면 덧없이 뛰어대던  심장이 알아본 걸까.


 한참을 그렇게  아이를 바라보는데  애도 나를 보고 작게 웃었다. 오늘도 바람 속엔 플라타너스 냄새가 짭짤하게 들어있다. 체육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가 메아리를 만들면 우리는 슬슬 일어나서 엉덩이에 묻었을 흙을 대충 털고 다시 플라타너스로 돌아간다. 어쩐지 일주일 새에  성큼 키가 커버린  같은 모카빵 복실이의 뒷모습을 나는 그렇게 따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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