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
소년 -
그 애는 책을 좋아했다. 눈을 감고 상상하는 것을 기억이 나지 않는 아주 어릴 적부터 좋아했는데, 책을 읽으면 마음껏 배경이라던지 주인공의 얼굴 따위를 마음대로 상상해볼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평소에 책 한 장만 읽어도 바로 꿈속에 드나드는 나였으면서도 부러 그 애 맘에 들려, 저도 좋아한다고 작은 거짓말을 했다. 그 덕에 도서관에 가서 16년 인생에 부족한 잠을 모두 채웠다. 그래도 기분 좋은 침묵 속에 팔랑팔랑 책장 소리며, 오래된 시간 담은 책 냄새며, 가끔 한 번씩 졸고 있는 나를 보고 작게 웃는 그 애며, 좋지 않은 게 없었다. 그 애가 앉은 소파 뒤 창문으로 깔깔대는 아이들이 지나가고, 산책하는 강아지의 웽웽대는 꼬리까지 보고 나면 마지막으로 빨간 노을 구름이 내렸다.
앞으론 자주 오겠지 둘이서.
주말엔 친구들이나 동생 녀석과 보내던 시간을 그 애와 함께 보내느라 학교에도 같이 갔다. 공 가지고 하는 거는 다 좋아하는 나라서 그 애는 좀 심심하겠지만 아무래도 같이 있고 싶으니까 함께 가자했다. 내가 이끝에서 저 끝까지 내달리며 공을 차면 그 애는 날 지켜보고 살풋 웃다가 또 책을 몇 장 읽다가, 내 모습을 사진에 담기도 하고 그랬다.
그러다 가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 칼 때문이었나, 웃을 때 희미하게 패이는 보조개 때문이었나.
그래, 그 애는 특별했다. 주변 친구들과는 다르게 조금 느리고, 조금 더 가리워져있고, 조금 더 저 아래 깊은 곳에 닿아있었다. 쉽게 말하지 않고, 쉽게 내색하지 않고, 쉽게 싫어하지 않았다. 그 특별함에 처음부터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도 특별하다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가리지 않고, 쉽게 판단하지 않아서 저를 정의의 사도쯤으로 생각했던 걸까? 그 애에게 내가 가장 필요했던 그 순간에, 나도 모르게 눈을 돌려버렸다. 모두가 그 애를 구석으로 몰아세우고 있는 그 순간, 나는 함께 구석에 몰리는 게 두려웠다. 나도 어쩔 수 없는 뻔한 16살의 어리석은 애송이였을까? 그 애의 눈빛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실망감, 나에 대한 실망감뿐이었다.
어차피 너도 똑같아. 다른척하지 말라고.
교실 밖으로 향하는 그 애의 눈빛이 느리게 느리게 내 눈을 떠나갔다. 그 눈빛에 원망을 잔뜩 담아 내게 내려놓고 그렇게. 달려가는 그 애를 붙잡지도 못하고 창밖으로 바라보는데 누가 명치께라도 때린 것처럼 가슴에 통증이 일었다. 집에 돌아와 손으로 문질문질 해봐도 통증은 한참 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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