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utumn Nov 01. 2020

소년이 소녀에게 - 7

비밀이야.


소년 -


굵은 빗줄기에도 아랑곳 않고 그 애가 놀라서 달려 나갔다. 날개에 빗방울을 이고 이리 뚝 저리 뚝 휘청이며 비 사이를 헤쳐 날아가는 나비마냥. 하늘에서, 바닥에서 튀어 오른 물방울이 향하는 곳은 온통 그 애다.

안 붙잡을 테니까, 아무것도 안 물을 테니 비가 좀 잦아들면 가.


주말 이틀 동안엔 오만가지 생각이 몰려와 김 서린 겨울 유리처럼 머릿속에 끼었다. 그 어떤 것도 선명한 것은 없었다. 남동생과 시답잖은 농담에 시시덕 댈 때도, 공부를 하려 책상 앞에 앉아 펜대를 굴려봐도 마음은 그 애라는 콩밭을 서성였다. 사실 편견 같은 것이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 애가 거기에 왜 있었을까. 그러다 문득 엄마의 얼굴이 스쳐 지났다. 우리 엄마도 남들 보기에는 그렇겠구나. 아닌데. 마음이 아픈 것도 몸이 아픈 것처럼 치료가 필요할 뿐인데.


엄마는...정신병자가 아니야.


비가 온 다음날은 역시나 운동장이 빗물에 찰박인다. 체육시간엔 여느 때처럼 익숙하게 플라타너스 길로 향하고 나는 그 애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옆에서 주철이가 뭐라고 떠들던 말던 내 얼굴 앞으로 제 손바닥을 위아래로 흔들던 말던.

 쉬는 시간에 조회대 돌계단 스탠드로 걸어가는 그 애를 따라갔다. 놀라게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 애는 돌계단에 앉아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 어느새 곁에 와있던 나를 발견하곤 두 눈을 번쩍 뜨며 깜짝 놀란다. 매번 그렇게 놀라는 그 애를 보면 어쩐지 귀엽다.


-잘 들어갔어? 비 많이 왔었는데.

우산을 쓰는 게 의미 없을 만큼 그렇게 튀어 오르는 빗방울 맞는 거 내가 다 봤으니까.

다른 사람들과 섞이는 것이 조금은 어렵다는 그 아이. 의아했다. 나랑은 이렇게 조잘조잘 말도 잘하면서. 그 말갛고 순한 눈동자에 구름을, 하늘을 담고 그렇게 나를 잘도 마주 보고 있으면서. 나는 그런 네가 이상해본 적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내 손을 잡으라고 말하고 싶었다.

-엄마가 아프셔. 2년쯤 된 거 같지 아마도..?

나와 있는 시간이 불편해지기 시작한 건지 바닥에 온통 시선을 내리깔고 돌바닥이나 발로 툭툭대는 그 애에게 내 얘길 들려줬다. 눈동자가 도로록 굴러 내게로 향하는 게 느껴졌다. 그 꽁꽁 닫은 마음에 조금은 틈이 생긴 걸까.


한참을 나를 응시하던 그 얼굴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체육선생님의 호각소리가 들리고 사방에 흩어나는 꽃가루 같던 아이들이 삼삼오오 플라타너스로 모여든다. 그 애와 나도 그곳으로 돌아간다. 이제 등 뒤로 꽁꽁 숨겼던 그 애의 손을 찾아 잡고, 서로의 비밀 얘기에 또 다른 이야기를 이어갈 게다.



이전 06화 소년이 소녀에게 - 6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