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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Nov 01. 2020

소년이 소녀에게 - 8

통증.


소년 -



 애는 책을 좋아했다. 눈을 감고 상상하는 것을 기억이 나지 않는 아주 어릴 적부터 좋아했는데, 책을 읽으면 마음껏 배경이라던지 주인공의 얼굴 따위를 마음대로 상상해볼  있어서 좋다고 했다. 평소에  한 장만 읽어도 바로 꿈속에 드나드는 나였으면서도 부러 그 애 맘에 들려, 저도 좋아한다고 작은 거짓말을 했다.  덕에 도서관에 가서 16 인생에 부족한 잠을 모두 채웠다. 그래도 기분 좋은 침묵 속에 팔랑팔랑 책장 소리며, 오래된 시간 담은  냄새며, 가끔 한 번씩 졸고 있는 나를 보고 작게 웃는 그 애며, 좋지 않은 게 없었다.  애가 앉은 소파  창문으로 깔깔대는 아이들이 지나가고, 산책하는 강아지의 웽웽대는 꼬리까지 보고 나면 마지막으로 빨간 노을 구름이 내렸다.


앞으론 자주 오겠지 둘이서.


주말엔 친구들이나 동생 녀석과 보내던 시간을  애와 함께 보내느라 학교에도 같이 갔다.  가지고 하는 거는  좋아하는 나라서 그 애는  심심하겠지만 아무래도 같이 있고 싶으니까 함께 가자했다. 내가 이끝에서 저 끝까지 내달리며 공을 차면  애는  지켜보고 살풋 웃다가  책을 몇 장 읽다가,  모습을 사진에 담기도 하고 그랬다.


그러다 가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  때문이었나, 웃을  희미하게 패이는 보조개 때문이었나.


그래,  애는 특별했다. 주변 친구들과는 다르게 조금 느리고, 조금  가리워져있고, 조금   아래 깊은 곳에 닿아있었다. 쉽게 말하지 않고, 쉽게 내색하지 않고, 쉽게 싫어하지 않았다.  특별함에 처음부터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도 특별하다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가리지 않고, 쉽게 판단하지 않아서 저를 정의의 사도쯤으로 생각했던 걸까?  애에게 내가 가장 필요했던  순간에, 나도 모르게 눈을 돌려버렸다. 모두가 그 애를 구석으로 몰아세우고 있는  순간, 나는 함께 구석에 몰리는 게 두려웠다. 나도 어쩔  없는 뻔한 16살의 어리석은 애송이였을까?  애의 눈빛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실망감, 나에 대한 실망감뿐이었다. 

어차피 너도 똑같아. 다른척하지 말라고.

교실 밖으로 향하는  애의 눈빛이 느리게 느리게  눈을 떠나갔다.  눈빛에 원망을 잔뜩 담아 내게 내려놓고 그렇게. 달려가는  애를 붙잡지도 못하고 창밖으로 바라보는데 누가 명치께라도 때린 것처럼 가슴에 통증이 일었다. 집에 돌아와 손으로 문질문질 해봐도 통증은 한참 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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