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utumn Nov 01. 2020

소년이 소녀에게 - 10

다시 시작된 이야기



소녀 -


침대에 처박혀 아무것도 듣지 않고, 먹지 않고, 보지 않은 게 며칠이나 되었을까. 밖에서는 엄마 아빠의 걱정하는 소리도 들리고, 화면에 그 애의 이름 찍어 드륵대는 핸드폰 소리도 들리고, 민정이가 왔다는 소리도 좀 들리는 것도 같은데.

그 애를 원망하며, 아빠를 원망하며, 결국은 바보 같은 나를 원망하며 시간을 흘렸다. 차라리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볼까도 생각하고. 그랬더니 밉고도 미운 모카빵 복실이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눈가가 뜨거워졌다.

일주일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내 감정도 잔잔한 호수처럼 차분해졌다. 약통을 발견하고 뒷말을 해댔을 애들도 조금은 이해가 갔다. 이상한 애가 평범하지 않은 무언가를 들고 다녔으니 무섭기도 했겠다.


그리고 돌고 돌아 결국 생각의 끝에 닿는 건 그 애다. 불안함에 미안함에 흔들리던 그 동공을 모른 척해 봐도 결국은 그렇게 닿는다. 그 애도 나와 같은 어린 애일뿐이다. 애초에 다른 애들과 특별히 다른 걸 원했던 내가 잘못인 것 같기도 하다. 나 때문에 불편해질 그 애를 생각하면 차라리 이게 잘 됐다싶기도하다. 마음을 달리 먹으니 모든 게 편안해졌다. 이제 병원에도 다시 가고.. 글쎄,,, 학교로 다시 돌아가는 건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애를 그렇게 마주치기 전까지는.


언제부터 그곳을 찾아왔던 걸까. 병원 문 입구로 이어지는 돌계단에 앉아있는 그 애를 보자 눈 앞에 뜨뜻한 무언가가 그렁그렁 올라왔다.


-미안해

니가 미안해할 일이 아니야. 내가 너였어도 그렇게 했을지도 몰라.

-미안해.

그 애는 연신 미안하다 한다. 입술은 뭘 한 건지 피딱지를 매달고 상해있는 얼굴로 그렇게 다른 말도 못 하고. 순해 터져가지고는.


우리 집 강아지처럼 그렇게 내 뒤만 졸졸 따라오기에 딱히 생각나는 곳이 없어서 학교로 향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면서도 누구 때문에 제일 좋아하게 된 곳. 그곳에서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좀 나눠봤다. 더러는 꺼낼 수 있고, 더러는 꺼낼 수 없는 그런 말들이 공기 중에 흩어졌다.

-내일부터는 학교 나올 거지? 

불안한 마음 잔뜩 담아 그렇게 묻는데 잘 모르겠다고 말할 수가 없더라.

-나 학교 가면 뭐해줄 건데?
-글쎄.

눈알 굴려 뭘 해줘야 하나 대답 찾는 그 애를 보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진짜로 뭘 해달라는 게 아니잖아. 나가겠다는 대답을 그렇게 한 거지. 역시 모카빵 복실이는 우리 집 복실이처럼 바보 같고 순하다.

내일... 그래 내일, 꼭 보자, 복실아.

이전 09화 소년이 소녀에게 - 9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