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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Oct 29. 2020

고통의 순간이 지나면 내게도 평화로운 나날이 오겠지

1890년 4월 말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최근에 다시봤다.  

아직 앳된 얼굴의 샬롯(스칼렛 요한슨)은 누구나 뒤돌아볼만한 미모와 젊음을 가졌지만 행복하지 않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풍기는 무미건조한 분위기가 아름다운 그녀 주위를 뒤덮고 있다. 십대 후반에 이 영화를 처음 봤었다. 끝까지 다 본 것조차 기억나지 않을만큼 별다른 인상이 없었던 영화였다. 그렇게 애매하게 남아있던 영화들을 다시 보게 될 때가 있다. 넷플릭스에서 이 영화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젖었다. 마치 옛날에 잃어버린 채 잊고 있던 조그만 열쇠고리를 다시 찾은 것처럼. 그날 밤, 평소보다 일찍 이불속에 들어가 이어폰을 꽂고 하얀색 재생 버튼을 눌렀다.



화면 속 살롯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 시절엔 보지 못했던 장면들이 보이고 듣지 못했던 대사들이 들렸다. 샬롯이 덩그러니 누워있던 하얀 침대, 도쿄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호텔의 커다란 유리창, 너무 밝고 넓은 호텔방, 그 공간을 채우는 깊은 적막. 그 모든 것이 샬롯의 외로움을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잘 웃지 않는다. 샬롯이 텅 빈 눈빛으로 도쿄 거리를 헤맬 때 나도 그녀를 따라 그곳을 떠돌았다.  



사진작가인 남편을 따라 낯선 일본 땅에 왔지만 지금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할지 샬롯은 난감하다. 어둠 속을 끝없이 유영하는 기분. 나 역시 어둠 속을 헤매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지금 내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이 맞는지, 끝이 있긴 한 건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을 때. 나를 뺀 모든 사람들은 다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내 인생은 평범한 것조차 어렵게 느껴지는 그런 때. 한 번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고흐는 1890년 7월 29일에 세상을 떠났다. 같은 해 4월에 고흐가 테오에게 말했다. 




고통의 순간이 지나면 내게도 평화로운 나날이 오겠지



고흐는 이미 건강 상태가 매우 악화돼 있었고 계속 발작을 일으키는 등 정신적으로도 심하게 고통 받고 있었다. 1881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니 1890년은 화가로 활동한 지 9년째 되던 해였다. 37세에 불과한 젊은 나이기도 했다. 한 번 꼬이기 시작한 삶은 다시 제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인정 받고 싶다는 욕구, 화가로서 주목받을 만한 작품을 남기고 싶다는 열망, 순수하고 솔직하게 인생을 받아들이고 누군가와 그것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갈망. 이 모든 것들이 고흐에겐 더 없이 힘든 일이었다. 어둠 속을 헤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고흐는 캔버스를 포기하지 않았다. 



반 고흐, <꽃피는 아몬드 나무(Almond blossom), 1890, 반 고흐 미술관



고흐가 1890년 2월에 그린 <꽃피는 아몬드 나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옅은 하늘색을 배경으로 아몬드 나무가 크림색 꽃을 피우고 있다. 아직 미처 피어나지 못한 꽃봉오리도 보인다. 아몬드 나무가 뭔지 몰라 찾아보니 꼭 벚나무처럼 생겼다. 하얗고 탐스러운 꽃을 가득 매달고 있는 예쁜 나무였다. 고흐는 1890년 1월 31일, 동생 테오 부부가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는다. 테오는 형의 이름을 따서 아들의 이름을 빈센트라 지었다. 고흐는 조카가 생긴 기쁨에 그림을 그리시 시작했고 그렇게 완성된 그림이 바로 이 작품이었다.  




아몬드 나무는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은 2월에 꽃을 피운다고 한다. 따뜻한 햇살이 충분하지 않아도 건강하게 피어나는 아몬드 나무 꽃을 보며 고흐는 조카를 떠올렸나 보다. 곧 다가올 봄을 상징하는 아몬드 나무를 그린 이 그림은 새로운 생명에게 딱 어울리는 선물이었다. 봄이 한창일 때 그린 꽃들과는 분명 다른 의미가 이 그림 속에 담겨있다. 살이 에일듯 추운 겨울의 고통을 지나 아직 봄이오지 않았지만 힘차게 꽃을 피우는 아몬드 나무는 고흐에게도 위로가 되었으리라. 실제로 고흐는 아몬드 나무를 좋아했었다. 힘든 시기를 지나 평화로운 나날을 누릴 수 있기를 마음 속 깊이 바랐던 고흐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서 샬롯은  위스키 광고를 찍으러 일본에 온 영화배우 밥(빌 머레이)을 알게 된다. 밥 역시 외롭긴 마찬가지다. 그는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일본에서 혼자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다. 샬롯과 밥은 낯선 타국에서 서로의 처지에 공감하는 유일한 친구가 된다. 샬롯은 어느 날 밥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요. 너무 막막해요.” 



그런 그녀에게 밥은 말한다. 



“당신은 잘 해낼 거요. 걱정하지 말아요.” 



샬롯은 여전히 위태롭고 어느 밤엔 불안에 사로잡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혼자 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숱한 밤을 그렇게 보냈었다. 퉁퉁 부운 눈을 비비며 일어난 다음 날 아침까지도 어젯밤의 슬픔과 불안은 베개와 이불에 옅게 묻어 있다. 천천히 눈을 들어 또다시 시작된 아침을 바라본다. 방 안을 비추는 따스한 햇살은 주인의 슬픔 따윈 아랑곳 않고 언제나 즐거운 강아지처럼 천진난만하다. 또 그렇게 속아 넘어간다. 그래, 힘든 시간이 지나면 좋은 날들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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