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분식

사막 생물체를 지켜주었던 슬램덩크

by 여미


만남 분식


초등학생 때 자주가던 떡볶이 집 이름이다. 내가 살던 주공아파트 단지의 상가에는 분식집이 세 곳 정도 있었다.

그 중에서 만남 분식은 재료나 가게의 상태가 제일 청결했고, 맛도 맛있었다. 아주머니 홀로 가게를 운영하셨는데, 거의 매일 친구들과 만남 분식의 떡볶이를 먹으러 갔었다. 집에서 혼자 먹을 생각으로 포장을 주문 할 때면, 항상 아주머니는 내게 물어보셨다. ‘엄마 심부름이니?’ 사실 엄마가 시켜서 온 적은 거의 없었지만, 나는 얼떨결에 ‘네’라고 대답을 했더니 떡을 몇개 더 얹어주시는 것이였다. 그 이후에 나는 늘 엄마 핑계를 대며 떡볶이를 포장해서 혼자 다 먹었다. 가끔 떡을 담기 전에 ‘달게 해주세요’라고 말을 하면 아주머니는 납작한 주걱으로 하얀 설탕을 떡볶이 위에 더 뿌려주셨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어린 초등학생은 입안에서 단맛을 상상하며 행복했었다.


그 가게 안에는 누군가가 그림으로 그려놓은 그림이 한 장 걸려있었다. 만화 ‘슬램 덩크’에 나오는 캐릭터 일러스트였는데, 연필소묘로 정성스럽게 표현이 되었다. 날짜와 서명이 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 까지는 자세하게 보지는 않았다. 하얀 벽지 위에 그 그림이 유독 눈에 띄었고, 그 떡볶이집 분위기와 슬램 덩크의 그림은 뭔가 조화롭지 않아보여서 기억에 오래 남았었다.


내가 중학생이 되던 해, 우리 가족은 아파트 재개발 때문에 옆 동네로 이사를 갔다. 아파트가 재개발 되면서 자연스럽게 상가에 있던 모든 가게도 이사를 가거나 사라졌다. 몇몇 친구들은 지방으로 이사가는 편도 잦았기 때문에 ‘만남 분식’도 먼 동네에 이사를 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얀 설탕이 뿌려진 떡볶이가 가끔 먹고싶어질 때마다 ‘만남 분식’의 행방이 궁금해졌었다.


그로부터 3년 후, 중학교 3학년 때 그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동네에 있는 만화학원이라는 곳을 처음 다녔다.

미술이라는 것을 처음 배워보기도 했고, 소심하고 낯도 많이 가려서 늘 혼자서 조용히 그림을 그리다가 갔다. 그 곳 선생님은 대부분 애니메이션과를 진학하여 재학중이던 대학생 청년들이었다. 선생님들은 모두 친절했고, 성격도 유쾌했다. 사실 그림 자체를 그리는 시간보다 선생님이 내가 그린 그림을 고쳐줄 때 옆에 앉아 이런 저런 일상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시간이 훨씬 더 재밌었다.


선생님 중에 유독 활발하고 유머러스한 ‘송쌤’이라는 분이 계셨다. 모든 학생들과 잘 지냈고, 자신감이 넘치고 그림도 개성있게 잘 그리셨다. 조용했던 나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 선생님의 밝고 유쾌한 모습들을 좋아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다같이 그 선생님의 학교에서 주최하는 캐릭터 공모전에 나가기로 했다. 나는 ‘사막’을 주제로 모래와 선인장 등을 캐릭터화 해서 그렸는데, 학원 친구들이 내 그림을 보더니 모두 비웃는 것이였다. 일반 적으로 예쁘고 멋있는 그림이 아닌, 사물이나 식물에다가 표현을 했던 것이 우스꽝스러웠는 지, 저마다 내 그림을 보고 무시를 하거나 놀려댔다.


바로 그 때, 송쌤은 처음으로 불 같이 화를 냈다.


야, 여울이 그림이 니네들 보다 더 개성있고 잘 그렸거든?


니넨 이런 생각이나 해봤어?
그런 식으로 놀리는 거 아니야. 무시하려고 학원다녀?


송쌤이 그렇게 크게 화내는 모습을 처음 봤다. 다른 선생님들도 계셨지만, 순식간에 정적이 흘렀고, 아이들은 그 이후로 내 그림을 보고 놀리지 않았다. .

송쌤은 배송비를 아끼라며 학생들의 그림도 오토바이에 싣고 직접 제출해주셨다. 결과는 그 누구도 상을 받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때 그 선생님이 정말 멋있어보였다. 나와 말도 몇 번 나누지 않은 송쌤은, 나의 장점을 계속 살려주려고 노력하셨다.


공모전 사건 이후로, 나도 송쌤한테 내 이야기를 더 많이 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초등학교 때 살던 동네와 송쌤이 살던 동네가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곳의 상가에 있었던 ‘만남 분식’을 좋아했었다는 말을 하니 송쌤은 웃으면서 이렇게 이야기 했다.


거기 우리 엄마가 하던 가게야

머릿 속이 하애지면서, 순간 그 가게 안에 걸려있던 ‘슬램 덩크’의 그림을 떠올리게 되었다. 내가 떡볶이를 먹으며 바라보던 그 그림의 주인은 바로 나한테 지금 그림을 알려주고 있는 송쌤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 수 있을까? 나는 너무 신기해서 지금 만남 분식은 어디에 있냐고 물어보니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영업을 다시 하고 있었다. 만남 분식 사장님이 떡볶이를 팔아서 송쌤도 키우고 대학도 보냈다고 생각하니 뭔가 기분이 묘했다. 나는 떡볶이를 맛있게 먹었지만, 만화가의 꿈을 품은 한 아들의 어머니의 노고가 스며들어가 있었고, 그 연결 고리안에서 선생님은 나의 꿈까지 지켜주고 보호해주었다니. ‘만남 분식’은 정말 특별한 ‘만남’을 선물해주는 곳이었던 걸까.


나의 ‘사막 생물체 캐릭터’를 뺏어들고 ‘니네들이 뭘 알아! 게맛을 알아?!’ 라고 대신 소리쳐주었던, 송쌤의 모습이 서른이 된 지금까지도 눈 앞에 아른 거린다. 그때 내 그림을 좋아해주고 자신감을 주었던 단 한사람으로 인해 입시를 잘 치뤄서 애니메이션과에도 진학했고, 더 큰 대회에서 상도 받고, 그림 에세이 책도 냈다는 것을, 송쌤은 알까?


14년 전, 송쌤이 마지막으로 알려주었던 그 ‘만남 분식’의 위치가 아직도 그 곳에 있다면,

그리고 아직도 하얀 설탕을 뿌려주는 송쌤의 어머니이자 사장님이신 아주머니가 웃으면서 나를 반겨준다면,

내 기억속에서 멋있었던 송쌤의 모습을 꺼내어 감사한 마음을 꼭 전달드리고 싶다.


글 여미

yeoulhan@nate.com

여미의 인스타그램 yeomi_writer


송항준 선생님, 제 사막 생물체 캐릭터 기억 나시나요?

이제는 제 그림을 ‘만남 분식’에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


여러분에게 특별한 만남은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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