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 착각

그래도 비가 와서 괜찮아요

by 여미

어젯밤에 비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방안에 누워 빗소리에 어울리는 음악을 틀고, 조용히 소원을 빌었습니다. 비가 오게 해 주세요. 내일 아침은 빗소리가 나를 깨우게 해 주세요. 그렇게 소원을 빌고 잤더니, 진짜로 비가 온 거예요. 그것도 엄청 많이, 세차게 왔어요. 빗소리가 정말 나를 깨웠어요. 너무 행복해서 한참을 눈을 감고 소리를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내 다른 소원은 하나도 안 들어주면서 고작 날씨 하나 원하는 대로 바꿔주는 것은 쉽네요. 그에게 연락이 오게 해 주세요. 그가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게 해 주세요. 나를 만나고 싶다고, 고백하게 해 주세요. 항상 이런 말들을 속삭이면서 잠에 들곤 했는데, 그 소리는 여전히 들리지 않았나 봐요. 앞으로도, 그 소원은 안 들어줄지도 몰라요.


그래도 괜찮아요. 오늘은 비가 내렸으니까요.


비를 좋아하는 이유는, 모든 것을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이에요. 하늘이 온통 회색이 되고, 축축해진 바닥을 걷다 보면 내 슬픔이 날씨로부터 온다고 착각하게 되잖아요. 오늘은 비가 오니까, 흐리니까, 충분히 슬퍼해도 조금은 울적해도 괜찮으니까. 자꾸 이렇게 생각하게 만드니까요.


이번 주말은 카페에 가서 글을 쓰지 않았어요. 비가 오니까, 기분이 좋아져서 빗소리가 잘 들리는 방 안에서 계속 머물고 싶었어요. 샤워를 하고, 집 근처 카페에서 커피만 사들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어요. 나 혼자만 있는 집에, 창문을 열어놓고 빗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에요.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멈추게 된다면 내가 좋아하는 그를 영원히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이 밀려오는 거예요. 나는 그와 사랑을 할 거예요. 그래서 바로 취소했어요. 카드 결제도 빨리 취소하면 바로 환불되잖아요. 그래서 소원도 급하게 취소했으니 빠르게 원상복구 되었을 거예요. 시간은 멈추면 안 돼요. 너무 빨리도, 느리지도 않게 진득하게 흘러가야 해요. 그가 나에게 다가오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테니까요. 언제 도착할지는 몰라도, 그래도 오고 있다면, 그렇게 된다면 기다릴 수 있어요.


사실 내가 뭐라 안 해도 시간은 이렇게 흘러가요.

여전히 그는 연락이 없고, 나를 좋아한다고 말을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오늘은 비가 내렸으니까요.


글 여미

커버 사진 여미

여미의 인스타그램 yeomi_writer

yeoulhan@nate.com


좋아해요.

비도,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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