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동물보호센터에서 봉사를 하면서 유기견 아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사진을 찍어 홍보하던 시절, 블랙이도 그중 하나였다. 블랙이의 이름은 내가 지었다. 아마 인연이 되려고 그랬나 보다. 녀석은 어릴 때 보호센터에 들어와 보호센터에서 성장했다. 처음 내가 사진을 찍을 때는 무서운지 고개를 숙이고 피해 다녔는데 이내 적응을 하여 보호센터의 터줏대감이 되었다.
우리는 봉사를 갈 때마다 블랙이의 이름을 부르며 놀아주었고 사진도 찍어 올리곤 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입양을 가는 동안에도 녀석은 입양을 못 가고 있었다. 까만색 털의 아이라 그랬을까?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녀석의 보호기간은 계속 연장되었다는 것이다. 그 사이 개린이가 된 블랙이는 다른 아이들과 자주 다투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이런 거였다. 녀석은 일명 ‘오지라퍼’였다. 즉, 모든 것에 일일이 간섭을 하고 다닌다. 하지만 유기견으로 버려지고 보호센터까지 들어오게 된 아이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겠는가. 그런 아이들에게 간섭하며 깐족되니 싸움이 일어나는 거였다.
결국 블랙이는 입양을 가지도 못하고 말썽만 일으키자 안락사 명단에 오르게 되었다. 블랙이를 만났을 때는 개인봉사자였지만 블랙이가 명단에 올랐을 땐 제제프렌즈를 설립한 후였다. 그동안 정이 들만큼 들었던 우리는 블랙이를 구조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땐 몰랐다. 우리가 블랙이를 1년 7개월이나 임시 보호하게 될 줄은 말이다. 그때 구조의 무거움도 동시에 알게 되었다. 구조란, 유기견을 발견하여 제보하거나 신고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신고, 제보이고 발견이다. 구조의 진정한 의미는 좋은 가족을 만나게 해주는 것까지다. 그 사이에 필요한 임시보호, 예방접종, 중성화 수술 등 모든 것을 다 책임지는 것이 구조라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 집 탐라제주는 블랙이를 받아주었다. 그때는 우리 애들도 나이가 어려 조금 더 유연했던 것 같다. 다만 블랙이가 자기보다 두세 달 어린 주주를 밀착 마크하는 경향이 있었다. 주주는 워낙 쫄보라 그런 블랙이에게 대항하지 못했다.
블랙이를 입양 보내려고 다양한 홍보를 했다. 인스타는 물론 플리마켓에 나가서도 홍보했고, 때로는 블랙이를 데리고 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그땐 홍보 방법도 잘 몰랐고 절실함도 많이 없었던 것 같다. 안되면 우리가 키워야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과 똑같이 돌봐주었다. 블랙이를 순서는 다섯 번 째이지만 밥도, 산책도, 잠자는 것도 모두 우리 아이들과 똑같이 대했다. 아마 블랙이도 우리 집 아들이라 생각했을 것이고 우리 집 애들도 가족이 하나 더 늘었나 보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냥 그렇게 살았다. 간간히 블랙이 소식을 전하며 여전히 가족을 찾았지만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해외입양단체와 연이 닿았다. 쾌활한 블랙이를 보더니 입양이 가능하겠다고 판단 내리셨다. 블랙이는 사실 쾌활하고 머리도 좋아 말귀를 잘 알아듣는다. 덩치도 9kg대로 그렇게 큰 편은 아니었다.
블랙이의 해외입양이 결정된 후 주주의 반란이 일어났다. 주주 역시 2살을 되었는데 이젠 블랙이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둘은 싸웠고 둘 다 상처가 남고 말았다. 지금도 주주의 얼굴에는 블랙이가 남긴 상처가 희미하게 남아있다. 우리는 말한다. 블랙이의 흔적이며 그는 아직도 우리 곁에 있다고.
이젠 정말 블랙이를 보내야 했다. 우리 집보다 훨씬 나은 환경으로 말이다. 다섯 번째 순서가 아닌 첫 번째 순서로 사랑을 독차지하는 그런 곳이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블랙이는 외동으로 입양을 갔다.
블랙이가 입양 가는 날, 내가 김포공항까지 이동시키기로 했다. 그 이후의 일정은 해외입양단체에서 맡아주시기로 했다. 김호정은 제주공항에서 블랙이를 보내면서 그야말로 대성통곡을 했다. 사실 김호정이 나보다 훨씬 블랙이를 이뻐하고 더 많이 챙겨주었다.
블랙이와 김포공항에서 이별을 해야 했을 때 나 역시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우리 블랙이. 이동차량에 실려 멀어지는 블랙이를 보며 가슴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감정이 올라왔다. ‘꺼이꺼이’ 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공항에서 꺼이꺼이 올라오는 눈물을 겨우겨우 삼키면서 블랙이를 보냈다.
이후 블랙이가 엄마를 만난 모습이 담긴 사진이 전해졌다. 블랙이의 새로운 이름은 ‘바비’라고 했다. 그 후로도 사진이 또 한 번 전해졌는데 우리와 함께 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의 늠름하고 멋진 모습이었다. 어디서든 우리 모두 행복하게 살자. 우리 블랙이 여전히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