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결혼의 이유. 1
본격적으로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리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결국 연애도, 결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데 그에 앞서 우리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사람에게 사랑이 '하면 좋지만 없어도 되는 것'이라면 이 시리즈는가 갖는 의미는 '명품을 살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사람에게 사랑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이 시리즈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본격적으로 연애와 결혼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하기 전에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완벽하게 객관화해서 살펴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가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본성'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면 그 논의는 크게 인간은 타고나기를 선한 존재라는 성선설, 악한 존재라는 성악설과 백지상태로 태어나서 성장과정의 영향을 받는다는 성무성악설이 있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서양에도 존재한다. 그리고 그 뿌리는 창조론으로 대표되는 기독교적 세계관과 진화론으로 대표되는 진화론적 세계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창조론적 세계관은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한 존재임을 전제로 한다. 인간이 신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결국 인간이 선하다는 것이 아닌가? 반면에 진화론적 세계관은 인간의 최대 관심은 본인 생존이라고 전제하기에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로 전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이론들이 인간을 완전히 선한 존재나 악한 존재로 본단 것은 아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모든 이론은 기본적으로 인간 안에 선한 면과 악한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다만, 어느 것이 우선되느냐에 따라 인간이 하는 행동과 내리는 결정이 달라지게 된단 차이점은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선한' 것은 무엇이고 '악한' 것은 무엇인가? 그 이론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악한 것은 자신이 최우선이고 다른 것은 후순위에 둔다는 관점에서 이기적이란 것을 의미하고 선하단 것은 이타적인 면이 그 안에 타고나게 있단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선한 존재로 태어나서 이기적이 되는 걸까? 아니면 이기적으로 태어나서 선하게 되는 걸까?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답을 제시하긴 힘들지만 이 문제는 연애, 결혼과 사랑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는 '선한 존재'에 대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결국 '사랑'이 담겨 있어서 인간이 만약 선한 존재로 태어난다면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사랑'은 남녀관계에서의 사랑을 의미하는 '에로스'적인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우리는 친한 사람들이나 가족들과의 관계에서도 사랑을 느끼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사용하는데서 알 수 있듯이 광의의 '사랑'은 궁극적으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우호적인 감정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조금만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답을 내릴 수 있다. 만약 인간이 악한 존재로 태어났다면 인간은 대가 없이 이타적인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없을 것이다.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어도 누군가를 도와줘야겠단 생각이 들어 돕고 난 후에 도움을 받은 사람보다도 도움을 준 사람이 더 따뜻함을 느끼는 모습은 인간이 누군가를 돕거나 무엇인가를 줄 때 느껴지는 긍정적인 기운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만약 인간이 자신의 생존이 최우선시되는 존재라면 이런 감정은 느껴져서는 안 된다. 이는 진화론적 관점과 성악설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에게 무엇인가가 현실적으로 돌아올 때만, 자신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돕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기들을 생각해 보자. 혹자는 아이들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것을 보면 인간은 악하게 태어난 것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아이들과 어른 중 누가 더 이타적이고 순수한가? 만약 인간이 악하게 태어나 이기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면 어른이 더 이타적이어야 한다. 이는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면 어른들은 누군가에게 이타적으로 해주는 게 궁극적으로 자신의 이익으로 돌아온단 것을 알기 때문에 이타적인 모습을 갖게 되지만 아이들은 그저 이기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씩 아이들이 더 본질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적지 않게 경험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이기적인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평균을 내면 어른들이 훨씬 더 이기적인 것으로 보이는 것도 현실이 아닌가? 여기에 더해서 우리는 우리가 보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미 어른을 보면서 학습된 부분들이 많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아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부모의 모습을 미러링 한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와 같은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아이들은 타고나게 이기적인 게 아니라 이기적인 어른들의 모습을 보고 따라 하면서 이기적이 된다고 해석하는 게 더 합리적일 것이다.
이와 같은 점에 비춰봤을 때 인간은 선하게 타고나지만 살아가면서 이기적인 모습들을 습득하게 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현실에서는 이러한 구분을 하는 게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은 모든 사람들은 어쨌든 선한 모습과 악한 모습, 조금 더 쉽게 표현하면 이타적인 면과 이기적인 면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접하는 어른들의 모습과 환경적인 요인들로 인해서 이기적인 면이 훨씬 더 커지기 때문에 이러한 구분이 현실에서는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이 '본질'이고 가장 중요한지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다르다. 만약 인간에게 생존이 가장 중요해서 이기적인 것이 본성에 가장 부합한다면 인간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돈을 많이 가질수록 행복해질 것이고, 그렇지 않고 인간에게 이타성이 본성에 우선적으로 깔려 있다면 인간은 '관계'와 '사랑'이 가장 중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에게 돈이 필요 없다거나 관계와 사랑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모두 어느 정도는 이기적이고 이타적이고, 자신의 생존도 중요하기 때문에 인간에겐 돈도 중요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초점은 '무엇이 더 중요한가?'이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하버드에서 85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인간의 행복에 대한 연구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 연구팀은 1938년에 허버드 학부생 2학년 생 268명과 빈민가에 살고 있던 같은 연령대의 456명, 총 724명과 그들의 후손까지 총 1,300여 명을 대상으로 행복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이 연구를 이끌고 있는 4번째 팀장인 Robert Waldinger에 의하면 지금까지 그들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은 의지할 사람이 있는 경우 더 건강하고 만족도 높은 삶을 살고, 인간관계가 심혈관 질환과 관절염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인간에게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준다. 이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인간은 '사랑'이 반드시 필요한 존재란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지만 돈이 필요 없거나 중요하지 않단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에게 돈은 매우, 매우 중요하다. 와튼 스쿨의 선임 연구원 Matthew Killingsworth이 미국에서 7년간 연구해서 2021년에 발표한 연구에 의하면 돈이 주는 행복은 50만 달러(약 6.5억 원)까지는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하지만 그가 2020년에 발표한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돈을 갖는 것 자체가 주는 행복지수보다 돈으로 무엇을 하는지가 행복지수에 더 영향을 줬다는 사실은 돈 자체보다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개인의 행복에 더 큰 영향을 줬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약 인간에게 생존 자체가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면, 인간의 행복은 무엇을 하는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고 돈 자체를 소유하게 됨으로써 행복이 계속해서 높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연구들은 돈에서 인간이 느끼는 한계효용은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갈수록 줄어든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돈 자체가 인간에게 행복을 선물해 주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우리가 갖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우리에게 행복을 선물해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연구들을 종합해 보면 인간에게 돈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계', 또는 '사랑'이다. 우리가 돈을 무제한으로 벌 수 있다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안다. 내가 돈을 번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있는 돈을 내 주머니로 옮긴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사람은 모두 돈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돈을 그렇게 쉽게 주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돈을 벌기 위해서는 상당한 힘과 노력과 시간이 소요되는데, 문제는 그러다 보면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24시간을 사는 현실에서는 돈을 버는데 쓰는 에너지와 사랑하고 관계를 형성하는데 쓰는 에너지를 분산시킬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은 이 지점에서 고민하고, 관계나 사랑보다 돈과 현실을 선택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관계나 사랑보다 돈과 현실을 보고 결혼을 결정하기도 한다. 그런 선택을 비판할 수는 없다. 돈과 현실도 중요하니까. 하지만 그게 정말 '최선'의 선택인지에 대해서는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의 본성과 행복에 대한 연구들은 모두 인간에게는 관계가, 사랑이 중요하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을 뿌리 끝까지 추적하면, 인간은 결국 사랑을 해야 하는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포기하는 건 행복하기를 포기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