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결혼의 이유. 2
인간은 사랑이 필요한 존재인 것은 분명해 보이니 이젠 사랑에 대해 살펴보자. '사랑'은 어쩌면 우리가 가장 많이, 흔하게 듣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상담을 하려 전화를 할 때도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고 말하는 세상이니까. 그런데 나는 'I love you customer'이라는 표현이 쓰이는 나라를 우리나라 외에는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사랑'이란 표현이 자주 쓰이는 만큼 '사랑'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는 희석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사랑한다'는 표현을 반드시 아껴야 한단 것은 아니다. 나는 연애를 할 때도 20대 후반까지는 '사랑한다'는 표현을 잘 쓰지 않았다. 상대에게 호감이 없거나 좋아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기 때문에 함부로 누군가에게 사랑한단 표현을 쓰지 못했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에는 이런 내게 섭섭해하는 사람도 있었고, 짜증과 화를 냈던 사람도 있었다.
돌아보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40대가 된 지금도 내 주위에서 '사랑이 뭘까?'라는 질문에 답을 곧바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을 보면 사랑이 뭔지를 알고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텐데 그걸 20대에 온전히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정말 어리석었다.
내가 당시에 몰랐던 것이 또 하나 있다면 그건 사랑은 사랑해서 사랑한다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사랑한다고 표현함으로써 사랑하게 될 수도 있단 것이다. 물론, 자신의 감정이 사랑인지 욕구나 욕망인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사랑한단 표현을 남발한다면 그것도 문제임은 분명하다. 또 어떤 사람들은 상대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함으로써 상대에게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 하기도 하는데, 그것 또한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상대를 정말 사랑한다면, 상대에 대해 일정 수준 이상의 호감이 느껴진다면 사랑한다는 표현을 아낄 필요는 없다.
문제는 우리 안에는 다양한 호르몬이 작용하면서 감정을 다양한 방향으로 끌고 가다 보니 우리는 사랑을 '느끼는지'를 객관적으로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상대를 생각하면 보고 싶고, 설레이고, 가슴이 뛰면 그게 사랑일까? 아니다. 우린 우리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만나거나, 내일 살 명품 가방이나 차를 떠올려도 똑같은 감정과 생물학적 반응을 경험하는데 그게 사랑은 아니지 않나? 사랑이 어려운 것은 우리가 그걸 특정한 감정적 상태를 기준으로 정의하고 분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이라는 표현을 남녀관계에 주로 사용하는데 사람들은 '사랑'이란 표현을 남녀관계에만 국한시켜서 사용하지 않는다. 현실에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아가페, 친구 간의 사랑을 의미하는 필리아, 부모와 자녀 간의 사랑을 의미하는 스토르게 등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남녀 간의 사랑인 '에로스' 외에도 다양한 사랑이 존재한다. 우리가 인종을 피부색과 혈통에 따라 나누지만 그건 '사람'이란 전제가 깔려 있듯이, 사랑도 그 관계와 대상에 따라 이렇게 분류가 된다는 것은 그게 모두 '사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그 공통점이 뭘까?
모든 형태의 사랑의 가장 큰 공통점은 '이타심'이 들어가 있단 것이다. 생각해 보자. 우리는 언제 누군가를 '친구'라고 여기는가? 우리는 보통 상대를 편하게 여기고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어느 정도 이상 보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친구'라고 말한다. 친구관계보다 이러한 이타심은 부모와 자녀 간에 더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좋은 부모는 아이를 가져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자녀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고, 건강하게 성장한 자녀는 부모에게 좋은 것을 주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타심은, 특히 성인이 되어서 이러한 이타심이 생기는 건 굉장히 놀라운 일이다. 이는 우리는 선하게 태어나더라도 성장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의 이기심을 탑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이기심을 탑재하게 되는 과정은 어렵지 않게 설명될 수 있는데, 인간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현실에서 재화는 한정되어 있단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고 그 재화를 다른 사람이 갖게 되면 자신이 가질 수 없게 된단 것을 배우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학생들을 1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워서 등수를 매기다 보니 공교육체계 안에서 아이들은 항상 내가 다른 사람을 짓밟아야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갖게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경향성은 더 강해질 수밖에 없는데, 이는 내가 다른 사람의 주머니 안에 있는 돈을 내 주머니로 옮겨야 내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사기를 한 번이라도 크게 당해보면 우리는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이처럼 '나의 생존'만을 생각하면 인간은 점점 이기적이 되어갈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놀랍게도 일부 관계에서는 이타심을 갖게 된다. 사랑이 기적인 것은 이처럼 인간이 누군가에게 순수한 이타심을 갖기가 힘들기 때문이고, 개인적으로 사람 안에 선함이 본성에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지 않고서는 인간이 현실적으로 이타심을 갖게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 안에 만약 악함이 내재되어 있다면 인간은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경우에만 상대에게 무엇인가를 줄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순수한 이타심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한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했을 때 사랑은 우리가 누군가에게 갖게 되는 순수한 이타심이라고 할 수 있고, 그 이타심의 크기와 범위가 커지고 넓어질수록 우리는 상대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커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이타심은 우리가 다양한 경험을 하면 할수록 쉽게 생길 수가 없다. 이는 우리는 다른 사람의 순수한 이타심보다는 이타심으로 포장된 이기심으로 인해 이용당하는 경우가 많고, 그런 경험이 반복되다 보면 표면적으로 보이는 이타심을 쉽게 신뢰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사랑에서 '신뢰'가 가장 중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신뢰'란 무엇인가? '신뢰'는 상대방을 믿고 의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누군가를 믿고, 심지어 의지까지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자신의 욕구와 욕망만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나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어디 쉬운가? 여러 일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누군가를 신뢰하는 게 어렵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기적인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고 이용당하다 보면 누군가를 신뢰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데 000도 못해 줘?'란 식의 표현은 역설적으로 상대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이 짧은 문장은 본인이 상대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당신에게 무엇인가를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여기에서 [000]이 시간 약속을 지키거나, 말을 예쁘게 하는 것 정도를 의미한다면 얘기가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000]이 만약 명품 가방이나 선물, 스킨십을 의미한다면 그건 상대에게 무엇인가를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경우에 이 문장은 '그러면 당신은 사랑한다면서 내가 000을 못해 줘도 그것 하나 못 이해해 줘?'라고 반박할 수 있다.
사람들은 남녀관계에서의 '사랑'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물론, 남녀관계에서의 사랑은 다른 관계에서의 사랑과는 분명히 다르다. 남녀관계처럼 뜨겁게 타오르고 상대를 강하게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관계는 많지 않으니까. 그런데 그런 감정은 사실 그 자체로 사랑이 아니라 상대를 갖고 싶다는 '욕구'가 발현되는 것이다. 이 사실은 우리가 정말 갖고 싶은 무엇인가가 생겼을 때 나타나는 현상과 비교해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당신이 정말 여행을 가고 싶은 곳이나 갖고 싶은 물건, 하고 싶은 일을 떠올려보자. 그 생각을 하루가 아니라 1달, 2달 동안하고 있었다면 당신이 그것을 떠올렸을 때 어떤 감정이나 마음이 생길까? 그 감정과 우리가 연애 초기에 누군가와 연애를 시작할 때의 감정은 꽤나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 소유욕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그러한 감정이 생길 때 상대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사람들은 그런 감정이 들면 상대를 배려하고, 상대에게 맞춰주기보다는 상대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데 그게 '이타심'은 아니지 않나? 물론, 연애 초기에는 상대에게 이타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은 많다. 그런데 그것도 완벽한 이타심은 아닌데, 이는 그러한 이타심은 순수하게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를 갖기 위해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의 이타심은 이타심을 도구로 삼아 상대를 소유하려는 이기심이 발현된 현상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감정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감정은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켜서 상대에게 마음의 벽을 허물고 신뢰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데, 그러한 상태는 위험한 면도 있지만 두 사람이 그런 감정 없이는 도달하기 힘든 상태에 갈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사랑의 촉매제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하기 때문에 특히 남녀관계에서 그런 감정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감정이 처음부터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데, 이는 사람에 따라서 상대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신뢰할 수 있게 되고 나서야 상대를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과 현실들을 고려했을 때 사랑이란 결국 '이타심'과 동의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이 이러한 이타심을 경험하는 게 필요한 것은 그래야 이 험한 세상을 홀로 살아가지 않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본인은 사랑 없이도, 연애나 결혼을 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만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그건 본인이 굉장히 강하고 압도적이라고 생각할 때만 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 정도로 강한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잘 나가지 못해서, 아니면 너무 잘 나가는 것을 주위 사람들이 계속 견제를 해서라도 외롭고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게 이기심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우리가 버텨내야 하는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