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결혼의 이유. 14
스킨십에 대한 글도, 영상도 많은 시대다. 그리고 그 메시지들은 놀랍게도 천편일률적이다. "스킨십은 매우, 매우 중요하다"라는 게 그 요지다.
맞다. 연애와 결혼에 있어서 스킨십은 매우, 매우 중요하다. 나도 개인적으로 스킨십을 좋아하고,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 우리는 스킨십이 중요하다고 말하기 전에 스킨십이 왜 중요한지를 생각을 해봐야 한다. 온라인에 넘쳐나는 스킨십에 대한 콘텐츠들은 대부분이 그 표현을 '속궁합'으로 단순화시킨다. 그리고 마치 두 사람의 성기 모양과 성관계가 타고나게 맞아야만 하는 것처럼 말한다. 과연 그럴까?
물론, 그러한 물리적인 요소도 스킨십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나도 스킨십 때문에 이별을 통보한 적이 있다. 함께 아는 지인들도 많았기 때문에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만남을 시작했지만 그 만남이 오래가지 못했는데 그건 우리가 입을 맞출 때마다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내 입 안으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그 친구가 이를 닦지 않거나 했던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고, 당시에는 그게 너무 힘든데 말은 못 하겠어서 이별을 통보한 적이 있다. 어렸을 때의 일인데, 나는 나중에서야 속이 좋지 않으면 그런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처럼 상대와의 관계에서 물리적이고 생물학적인 요소가 관계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게 절대로 극복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내가 만약 다시 당시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나는 솔직하게 말을 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상대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스킨십의 차이도 노력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지점들이 있다. 설사 그 차이가 100% 극복되진 않더라도 그런 부분들이 극복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스킨십에 그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런 관점은 "쾌락"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물론, 스킨십은 엄청난 자극을 가져오고 쾌락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쾌락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하는 것이 위험한 것은 쾌락으로 인해 오는 자극은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지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물리적인 요소들이 잘 맞는다고 해도, 조금 더 적나라게 말해서 지금 당장 속궁합이 완벽한 것처럼 느껴져도 그 스킨십에서 느껴지는 쾌락은 10년 후에는 그 강도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부부들 중 1/3은 섹스리스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이런 설문조사에 보수적으로 답하는 경향이 있고, 거의 잠자리를 하지 않아도 섹스리스는 아니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단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부부들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은 실질적인 섹스리스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스킨십과 섹스에서 오는 강한 자극, 쾌락을 스킨십과 섹스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스킨십과 섹스 자체가 목적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 스킨십과 섹스에 대한 글과 영상들에서 흔히 나오는 이야기만 들어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남자는 과정은 생략하고 곧바로 끝까지 가버리려고 한다거나 귀찮으니까 그냥 과정은 생략한다는 건 스킨십과 섹스를 목적으로 보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닌가?
그런데 스킨십과 섹스는 사실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좋은 수단이다. 우리는 다양한 스킨십을 통해 말이나 다른 행동으로 느낄 수 없는 상대의 마음을 느낄 수 있고, 모든 형태의 스킨십은 그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이어야 한다. 그럴 때야 비로소 두 사람은 스킨십을 사랑의 표현으로 느낄 수 있고, 스킨십을 통해 자신이 존중받고 사랑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스킨십을 쾌락이나 목적으로 접근하는 순간 상대는 나의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상대의 마음이 불편하고, 싫다고 하는데 한 번만 자자고 빌거나 심지어 화를 내는 건 결국 상대를 나의 성적인 욕구와 욕망을 해소할 도구로 밖에 취급하지 않는 게 아닌가? 그 사람이 본인의 어머니나 여동생, 누나에게 남자가 그렇게 해도 그 남자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그건 그 남자가 자신의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일 텐데, 적지 않은 남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도구로 전락시킨다.
우리나라에서만 스킨십과 섹스가 도구로 전락한 것은 아니다. 그런 경향성은 전 세계 어디나 어느 정도는 보인다. 하지만 그런 경향성은 아시아에서 유독 강하게 나타나는데, 그건 아마도 아시아권 국가에서는 어렸을 때 가족 안에서 자연스러운 스킨십이 많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만 해도 부모님은 물론이고 조부모님과 포옹한 기억도 거의 없고, 이는 아시아권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 그럴 것이다.
우리가 만약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자연스럽게 서로를 아끼는 모습을 스킨십으로 봤다면, 부모님이 사랑의 표현으로 안아주고 뽀뽀를 자주 해줬다면 우리는 스킨십을 다르게 받아들이고 접근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 아시아권 국가들에서는 어렸을 때 스킨십으로 사랑을 표현하거나 느끼는 경험이 적은데, 사춘기를 지나면서 남자들의 성적욕구가 폭발하면서 스킨십이 대부분 경우 사랑을 표현하는 과정과 방법이 아니라 목표로 설정되어 버린다.
그런 현상이 아시아권 국가들에서 더 많이 나타나긴 하지만, 전 세계 어디에서나 그런 사람들이 있는 건 쾌락과 자극은 명확한 반면 사랑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랑이 '이타심'의 발현이라면 그 공식은 스킨십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상대를 사랑한다면, 스킨십으로 표현하는 사랑은 상대가 편안하게 느끼고 존중받고 소중하게 느껴진다는 느낌을 받도록 해줘야 한다. 그렇다면 스킨십을 하는 과정에서는 서로가 서로의 반응을 보면서 불편해하는 지점은 피하고, 편해지는 부분을 늘려가는 게 '사랑의 표현으로서의 스킨십'일 것이다.
처음에는 작은 스킨십에만 편안함을 느끼겠지만, 그렇게 서로를 존중해 주는 시간이 길어지면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자신의 몸을 조금 더 편하게 상대에게 내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사실 섹스는 그 신뢰의 끝에 있어야 하는데, 이는 아무리 피임을 확실하게 하더라도 새 생명이 태어날 가능성은 항상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 대해 남자들이 특히 잘 모르는 부분이 있는데, 여자들은 항상 임신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속에 있다. 여사친이 많고, 나를 오빠가 아니라 언니처럼 대하는 지인들이 많았던 덕분(?)인지 여사친들의 첫 경험과 결혼 후의 성생활도 한 번씩 듣게 됐는데 그 두려움은 아이를 갖지 않으려는 기혼자에게도 있더라. 내가 들었던 얘기들에 의하면 첫 경험이 황홀하고, 완벽했으며 100% 만족스러웠던 경우는 없었고 대부분 사람들은 두려움과 긴장감 속에 첫 경험을 했더라.
남자의 경우 자신의 욕구와 욕망이 워낙 크고, 자신이 임신을 하는 게 아니며, 임신이 될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해서 이 지점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처음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 않나? 그런데 섹스는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행위고, 여자는 임신을 하는 순간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낙태를 하는 것은 '생명을 죽이는 일'이라는 인식도 우리 안에 전혀 없을 수는 없는 게 또 현실이 아닌가? 그런 상황에서 처음 섹스를 할 때와 하고 나서 그에 대한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을 더욱더 악화시키는 건 우리나라의 '스킨십 없는 가족'이란 문화다. 어렸을 때부터 포옹하고, 뽀뽀하고, 사랑한단 표현을 스킨십으로 하는 것에 익숙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단계도 거치지 않고 섹스로 넘어가게 넘어가게 된다면 그 충격은 스킨십을 사랑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알고 있는 경우보다 몇 십배는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 상대도 스킨십을 사랑으로 표현할 줄 모르다 보니 진도를 빼서 자신의 쾌락만 충족시키려 한다면, 그 경험이 얼마나 끔찍하겠나?
그런 두려움과 긴장 속에 지나간 첫 경험을 이겨내고 경험이 쌓이면서 스킨십을 즐기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스킨십과 섹스에 대한 거부감과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는 더 많이 보이는 듯한 게 현실이다.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연인과 배우자들은 여전히 스킨십을 강요하고, 때로는 스킨십이 없다는 핑계로 바람을 피우기도 한다. 스킨십을 사랑의 표현으로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을 그렇게 대하는 것은 마치 한국어를 배운 적도 없는 외국인에게 한글을 쓸 줄 모른다며 출국조치 시키는 것과 마찬가지 행동이다.
스킨십은 매우, 매우 중요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 그리고 스킨십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을 전달해 줌으로써 연인이나 배우자가 섭섭했던 것을 넘어설 수 있게 해 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스킨십은 연인과 부부 사이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스킨십을 사랑의 표현으로 하지 못하고, 그 자체가 목표로 전락하게 되면 두 사람의 스킨십 빈도는 줄어들 수밖에 없고, 심한 경우에는 스킨십을 강요하게 됨으로써 오히려 두 사람의 관계를 더 망가뜨리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좋은 기억과 경험, 그리고 신뢰가 없는 스킨십은 독이 될 수밖에 없기에 연인과 부부 사이에 스킨십을 되찾기 위해서는 우선 두 사람이 신뢰를 강화하고, 형성해야 한다. 아름다운 스킨십은 그 뒤에 찾아오고, 쾌락 자체가 목적인 스킨십은 유효기간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과 달리 사랑이 표현되는 스킨십을 통해 느껴지는 감정과 느낌은 두 사람의 관계가 견고해질수록 더 깊어지고 아름다워진다.
스킨십은 잘 쓰면 약이 될 수 있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스킨십보단 사랑이, 신뢰가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