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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실력'이란 존재하지 않는 허상

by Simon de Cyrene

변하는 사회에서 어떤 교육이 필요한 지에 대해 논하기 전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실력'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좋은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실력이 탁월한가? 좋은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최소한 입학성적에 큰 차이가 많이 나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보다 실력이 탁월할 것이란 게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잠깐만, 전 세계 모든 대학들은 같은 기준으로 학생들을 선발하진 않지 않나? 그렇다면 어떠한 기준으로 선발한 사람이 더 '실력'이 뛰어날까?


우리는 여기에서 '실력'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은 실력이 있는 사람들인가? 그렇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은 본인의 전공 범위 안에서,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실력은 탁월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반드시 회사생활을 하는 '실력'이 뛰어나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데 있다. 이는 연구를 하는데 필요한 '실력'과 회사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실력'은 다르기 때문이다.


연구를 하는 데는 아주 작은 디테일에도 집착하고, 명확한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실력이 중요하다. 모든 학문은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학문영역, 심지어 문과에서도 연구를 하는데 필요한 실력은 분명히 다르다. 질적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문항을 구성하고 잘 물어보고, 잘 듣는 실력이 중요하다. 이와 달리 양적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문항을 잘 만들어서 나온 통계를 잘 해석하는 실력도 필요하다. 이론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능력치보다 많은 양의 과거연구와 이론들을 종합해서 자신만의 관점으로 풀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같은 학문영역 안에서도 이처럼 필요로 하는 실력이 분야에 따라 달라진다. 하물며 학문의 영역을 벗어나면 그 차이는 더 커진다. 학문적인 실력이 탁월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서 소수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 것이 요구된다. 그런데 그렇게 고립되어서 상당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자신의 이상이나 생각과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타협하는 데는 약점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회사생활 중 상당 부분은 사람들 간의 관계 형성을 통해 타협해서 결과물을 내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는데 있다.


회사생활이나 사업을 잘하는 데 있어서 깊이 있는 지식이 많은 게 꼭 그 사람의 실력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너무 많은 것을 아는 건 오히려 의사결정을 하는데 비효율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고, 마케팅 영역에서는 연구와 수치, 분석도 중요하지만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직관에 바탕을 둔 의사결정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숫자로 분석을 할 수 있는 영역이 굉장히 넓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기업들이 오직 숫자로만 의사결정을 하지는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만약 그런 게 예측가능했다면 제2의 강남스타일이 어렵지 않게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제2의 오징어게임은 매년 나올 수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한 인터뷰에서 가수 싸이가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적으로 터진 뒤에 다음 곡에서 자신도 모르게 글로벌 메가히트를 만들어야 한단 압박이 있었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고 말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렇다. 우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특정 영역에서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못하거나 성과를 내지 못하는 영역이나 순간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블라인드로 해서 사람의 배경을 보지 않고 오직 실력으로만 사람을 채용해야 한다'는 말은 그럴듯하지만 이뤄질 수 없는 현실에 가깝다. 이 말에서 '실력'은 어떤 실력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그 실력은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회사에서 사람을 채용할 때 그 사람의 실력은 그 사람이 지금까지 축적해 온 과거를 통해 유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교수나 연구자를 임용할 때는 그 사람의 연구실적을 보고, 경력직을 채용할 때는 그 사람이 어떤 일을 어디에서 했었는지를 본다.


그렇다면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학부만 졸업한 사람을 채용할 때는 무엇을 봐야 할까? 학부를 졸업한 사람의 '실력'은 무엇으로 평가해야 하나? 여기에서 문제는 학점이 곧 그 사람의 '객관적인 실력'을 보여주지 않는다는데 있다. 나는 좋은 대학으로 평가받는 대학을 졸업해서, 그보다 더 좋은 것으로 평가받는 대학의 로스쿨에 진학했다. 그런데 로스쿨에서 나는 학부시절 경험해보지 못했던 경쟁과 압박에 직면했다. 어떤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인지에 따라 경쟁이 차원이 달라질 수 있고, 그에 따라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실력의 수준이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대학원에 가서 경험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한 번 생각해 보자. 좋은 대학을 졸업해서 좋은 학점을 받은 것이 곧 그 사람의 '실력', 그것도 회사가 필요로 하는 실력이 있단 것을 의미하는가?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면 회사에서 필요한 실력이 더 탁월할까?


아니다. 학부에서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는 실력과 회사에서 성과를 내기 위한 실력은 완전히 다르다. 학부에서 학점이 낮았던 사람들 중에서 사회생활은 훨씬 잘하거나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은 좋은 학점과 회사생활에 필요한 실력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제는 그러한 실력을 평가하거나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경력직은 그 사람의 이력, 그리고 이전 직장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들을 통한 평판조회를 통해 실력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반면에 학부를 갓 졸업한 사람들은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실질적으로 전무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것은 엄청난 리스크를 수반한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들은 다양한 면접을 본다. 내 첫 직장의 경우 신입사원들을 1박 2일 동안 연수원에 데리고 가서 다양한 면접을 진행했다. 면접관들이 질문하는 면접도 있었지만 회의를 하는 모습을 관찰하기도 하고, 심지어 1-2년 차들이 행사진행요원으로 가서 공식적인 면접관들이 없을 때의 모습들까지 작성해서 제출하도록 했다. 이러한 방식의 면접은 지식적으로는 탁월할지 몰라도 관계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을 걸러내기 위한 시도다.


구글의 경우 1대 1 면접을 부서 사람들 몇 명과 함께 일하게 될 사람들 몇 명이 면접을 보고, 그 사람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해서 의견을 취합한다. 한 사람을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고 평가해서 그 사람이 조직에 적합한 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면접 방식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면접과정을 진행해도 현업에서 실력이 없는 사람들이 채용되는 경우가 항상 있다. 내 첫 직장이나 구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평균적으로는 똑똑한 사람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실력'이라는 것의 실체가 분명하지 않고, 길게는 며칠씩 면접을 봐도 드러나지 않는 지점들이 많기 때문이다.


'인턴'제도는 사실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다. 면접환경에서 몇 번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는 아예 몇 달을 함께 일하면서 그 사람의 실력에 더해서 일상에서의 모습까지 관찰한 뒤에 그 사람을 채용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게 인턴이 아닌가? 그런데 인턴을 해서 채용된 사람들이라고 해서 문제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이처럼 우리가 너무 쉽게 말하는 '실력'은, 특정한 전문분야에서 명확히 정의된 제한된 영역에서는 인정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영역은 대부분 물리적인 지식의 양이나 기술이 수반되는 영역에 국한된다. 그 외의 대부분 영역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실력'은 다양한 스킬 셋이 다양하게 조립되어야 나오는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스펙이 아니라 실력'으로 사람을 채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실현되기는 힘든 것은 이처럼 '실력'은 이처럼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추상적이고 입증이 힘든 영역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실력이 탁월하다고 생각하는가? 축하한다. 그 정도 확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특정한 스킬 셋은 훌륭할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너무 자만하지 않기 바란다. 자신이 특정 분야에서 훌륭한 실력을 갖춘 것은 매우 높은 확률로 그 분야에 그만큼 시간을 많이 할애했기 때문일 텐데, 그건 다시 말하면 당신이 일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필요한 다른 영역에는 시간적 투자를 충분히 하지 못해서 당신에게는 성과를 내기에 충분한 실력은 부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의 모든 논의는 이 지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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