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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반려 질병은 무엇입니까?

천장의 무늬, 이소라 그리고 치료와 치유

by 키튼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오후 4시경이 되면 눈이 아파 왔고, 급기야는 두통으로 전이되었다. 힘들었다. 그때마다 타이레놀을 먹곤 했는데, 금세 두통이 사라지는 듯하더니 이내 다시 시작되곤 했다. 최근에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바로 안구 건조증.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나 에어컨 바람을 오래 쐰 날이면 어김없이 안구가 바싹바싹 말랐고, 안구에만 머물던 통증은 두통으로까지 번졌다. 아마 안구의 통증 때문에 자꾸 인상을 쓴 탓에 두통이 생긴 게 아닐까 한다.

나는 안약을 세 종류나 가지고 다닌다. 항히스타민 안약, 스테로이드 안약, 그리고 인공눈물. 의사씩이나 되어서 무슨 겨우 안구 건조증 가지고 호들갑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건조증이 심한 날에는 눈을 뜨지 못할 만큼 괴롭다.




최근에 <천장의 무늬>라는 책을 읽었다. 저자는 섬유근통으로 추정되는 만성적인 질환과 통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병의 원인도 알 수 없었을뿐더러 약을 먹어도 호전되지 않았다. 그런 그때,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저 가만히 누워서 천장의 무늬들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그녀에게 <천장의 무늬>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을 상징한다.


보통의 사람들이 하는 모든 일이 그녀에게는 고문과도 같았다. 영화관에 앉아서 오랜 시간 영화를 보는 것도, 책을 읽기 위해 장시간 동안 앉아 있는 것도, 좋아하는 체스 게임을 하는 것도 그녀에게는 모두 고역이었다.

고통은 그녀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자리를 잡고 그녀를 마구 뒤흔든다. 질병은 외부로 유출되는 시선을 안으로 거둬들이고, 내면을 응시하도록 만들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질병은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도록 충동질했다. 그런 질문들이 때로는 스스로를 갉아먹고 지치게도 했지만, 세상을 향한 독자적인 시선을 형성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새로운 시선으로 기록된 세상은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가수 중에는 ‘이소라’를 가장 좋아한다. 1995년의 어느 날, 나는 텔레비전을 통해 그녀의 노래를 처음 들었다. 그때 그녀는 검은색 벨벳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큰 드레스에 온몸이 다 가려져 얼굴만 덩그러니 나와 있었다. 그녀는 자꾸만 자신이 행복하다고 이야기했다. 전혀 행복하지 않은 얼굴을 한 채로...

초등학교 3학년 때, 나는 어렴풋하게 ‘행복’이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어떤 것이라고 짐작했다(당시 나의 부모님은 굉장히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어린 나이에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만이 엄마를 웃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이소라의 ‘난 행복해’라는 노래를 처음으로 들었다. 나의 노래 리스트에는


언제나 이소라의 ‘난 행복해’가 있다.


환자들은 왜 진료실을 방문하는 걸까? 물론 병을 치료하기 위해 방문하기도 하지만, 더러는 행복해지기 위해 나아가서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진료실을 방문하기도 한다.

진료실은 저마다 이유가 다르겠지만 삶의 무게를 견디고 있던 환자들이 잠시 그 짐을 내려놓기 위해 오는 곳이다.

“매일 같이 아픈 사람들을 봐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이런 말로 나를 위로해 주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세상에 크게 혹은 작게라도 아프지 않은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어쩌면 일상에서는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오다가 진료실에 들어오는 순간 의사에게 ‘환자’라고 불리면서부터 진짜 ‘환자’가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잠재적 환자’이다. 예외 없이.

두통이 심한 날에는 타이레놀을 먹고 소파에 누워 이소라의 노래를 듣는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못난 것처럼 느껴질 때마다 어김없이 그녀의 노래가 있었다. 그렇게 자기 연민에 가까운 감정에 사로잡혀 있으면 어느새 두통은 한결 나아지곤 했다.


인생은 고해-고통의 바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니 잘 살아간다는 말은 그 고통과 조금은 더 친밀해지는 일일 것이다. 두통이 심한 날에는 잠시 몸을 누인 채 고통이 하고 싶은 말을 듣기 위해 노력해 본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스스로를 다그치고 몰아세워야 하는 요즘, 사람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은 단연 “괜찮다”는 말일 것이다. 어쩌면 모든 현대인들은 “괜찮다”는 말을 듣기 위해 자신만의 반려 질병을 하나둘씩 입양하는 건 아닐까? 결국 나의 반려 질병이 하는 말은 조금 스스에게 관대해지고 멈추라는 말일 것이다.

인간의 정신적 성장은 어느 순간 멈춰버린다. 이후에는 몸만 늙은 채로, 가슴 한 구석에 ‘아이’ 한 명을 지닌 체 살아간다. 투정 부리고 싶은 그 아이는 오늘도 자신 좀 봐달라고 몸 구석구석을 들쑤시고 있다. 나에게 왔다가신 환자분들의 가슴속의 아이들이 조금은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괜찮다”는 말은 얼마든지 해드릴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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