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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장 Dec 19. 2019

[단편소설] 연애의 신이 맺어준 인연 #3

삶은 유한하니까.

두 사람은 Grab으로 차를 불러 카오산로드로 이동했다. 밤의 카오산로드는 예나 지금이나 시끌벅적 했다. 사람들과 펍에서 크게 틀어놓은 음악이 거리를 꽉 채웠다. 어떤 이들은 길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이 흥겨운 분위기에서 그는 행복하면서 동시에 초조해지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하고 있어 행복했고, 같이 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 초조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더 정확히는 그녀도 같은 마음임을 확인하고 싶었다. 이번에는 혼자만의 착각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다. 어렵게 온 기회를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았다.



“좀 뜬금없지만 저 선예 과장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그가 걸으면서 그녀의 귀 쪽에 얼굴을 가까이하며 말했다. 이 말을 꺼내는 그는 자신의 심장소리가 거리의 음악소리보다 크게 들리는 듯하다.

“여기서요? 지금?”

“네. 여기서 지금 얘기하는게 그나마 덜 부끄러울 것 같아서요”

“뭐길래 그래요? 그녀가 웃으며 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가슴도 이미 쿵쾅거리고 있었다. 날 좋아한다고 말해. 말해줘. 지금 말해줘. 그녀의 속마음이었다.


“저 선예 과장님 좋아해요” 그가 말했다.

그녀가 미소지었다. 그녀의 마음속은 폭죽이 터지고 있다.

“고마워요. 저도 지훈 과장님 좋아해요” 그녀가 말했다.


세상에 이렇게 솔직하고 군더더기 없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 스스로도 놀라웠다. 너무나도 단순한 표현이었지만 그 둘은 알았다. 이 말들에 더 이상 더 할 것도 뺄 것도 없음을. 이것으로 충분했다.


“저 하나 더 말하고 싶은거 생겼어요” 그가 말했다.

“말해주세요”

“한국 돌아가면 선예 과장님에게 사귀어 보자고 얘기하고 싶어요. 그런데 그날이 오기전에 오늘 여기 방콕에서 연인으로도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그래서 그런데… 오늘밤은 우리 연인이 되는건 어때요?

그녀가 그의 손을 슬며시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좋은 생각이네요” 둘은 손을 잡고 카오산로드를 걷기 시작했다.


광란의 럭키비어를 지나 어디를 갈까 둘러보고 있는데 호객꾼이 다가와 라이브 바에 가겠냐고 물었다. 그와 그녀는 좋다고 했다. 둘은 호객꾼의 안내로 3층에 위치한 roof bar라는 가게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가게의 가수가 어쿠스틱 기타를 치며 The calling의 <Wherever you will go>를 부르고 있었다. 둘은 자리에 앉아 LEO 맥주 2병을 주문했다.


“좋아하는 밴드 있어요?” 그가 물었다.

“저는 OASIS 좋아해요”

“OASIS 좋죠. 여기 노래 신청도 가능한가 봐요. OASIS 노래 신청해볼까요?” 그가 어떤 손님이 가수에게 쪽지를 건네는 모습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머 정말이네요! 나도 하고 싶어요. 어떻게 해야 되지?”

“잠시만요” 그가 카운터로 가서 종이와 펜을 가져왔다.

그녀는 종이에 OASIS – <Don’t look back in anger>를 적어 가수에게 건네고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가수는 Hoobastank의 <The reason>, 4 Non Blondes의 <What's Up>, Mr.Big의 <To be with you>까지 불렀다. 그리고 그녀가 신청한 노래의 코드 진행이 기타로 연주되기 시작했다. 


Slip inside the eye of your mind 

첫 소절이 시작되고 그녀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도 노래를 따라 불렀다. 영국인으로 보이는 손님 몇 명은 일어나서 저것이 춤인지 흥을 표현하기 위한 동작인지 헷갈리게 하는 몸짓을 하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지훈과장님도 이 노래 아시네요?” 그녀가 그도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는걸 보고 물었다.

“저도 좋아하는 노래에요” 그가 대답했다.

And so Sally can wait

이 가사가 나올 때 즈음에는 바의 모든 손님이 노래를 하고 있었다.


“아 좋다. 여기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지훈 과장님이랑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오아시스 노래를 같이 부르고 있다니. 저 오늘 밤은 꽤 오랫동안 추억할 것 같아요” 그녀가 말했다.

그는 그녀의 러블리한 말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의 뺨에 입을 맞췄다. 그녀는 미소짓더니 그의 뺨에 입을 맞췄다. 둘은 서로의 눈을 보며 웃었다.


둘은 세곡의 노래를 더 듣고 가게를 나왔다. 10분정도 걸어서 Adhere the 13th blues bar에 도착했다. 사람이 많아서 이미 두 명이 있는 작은 테이블에 의자만 더 두고 앉았다. Chang 맥주 2병을 주문했다. 밴드는 <Sweet home Chicago>를 연주하고 있었다.



“이런 느낌 좋아요” 그가 말했다.

“어떤 느낌이요?”

“음악을 몸으로 듣는 느낌이요. 귀로도 들리고, 소리가 공기를 울려서 그 진동이 몸까지 전해지는 느낌이요”

그녀는 눈을 감았다. 몸으로 음악을 느끼며 고개를 까닥였다.

“지훈과장님도 눈 감고 들어봐요. 더 잘 느껴져요”

그도 눈을 감았다. 그의 입술에 부드럽고 따뜻하고 달콤한 느낌이 스쳤다. 그는 놀라 눈을 떴다.

“입술로도 음악이 들리지 않았어요?” 그녀가 웃으며 물었다. 

“입술로 음악을 들은건 오늘이 첫 경험이에요” 그도 그녀를 보며 웃었다. 


둘은 라이브 공연이 끝나는 12시까지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음악을 이야기하고, 발로 리듬을 맞추고, 환호하고, 좋아하는 술을, 그 술이 좋은 이유를, 여름밤의 낭만을, 낭만의 이유를 이야기했다. 인연과 인연이 주는 기쁨에 대해 말했다. 둘은 서로를 알면 알수록 더 깊이 알고 싶었다. 각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좋았고 그것을 존중했다. 


“그러고보니까 숙소가 어디인지도 아직 안 물어봤었네요. 아마도… 수쿰윗 쪽?” 그가 가게 밖 인도에서 물었다.

“맞아요. 우리 만났던 아속역 사거리에서 멀지 않아요. 홀리데이 인 수쿰윗 이에요”

“오 정말요? 저랑 한두 블록 밖에 차이 안나네요. 저는 노보텔 수쿰윗 20 이에요. 저도 호텔 예약할 때 홀리데이 인을 후보에 뒀었어요”

“만약에 그랬으면 우리 조식 먹다가 만났을 수도 있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랬으면 더 좋았겠다” 그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가 이어 말했다. “나는 오늘 밤이 정말 좋아요. 우리 인생에서 그 많은 시간과 장소 중에, 지금 여기 선예 과장님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도시 방콕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해요. 제게 큰 기쁨이에요. 고마워요” 그는 진심이었다.

“오늘 밤 잊지 말아요. 우리에게 아름다운 밤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요” 그녀가 말했다.


그는 Grab으로 홀리데이인 수쿰윗으로 가는 차를 불렀다. 차는 5분 뒤 즈음 가게 앞에 도착했다. 둘은 차 안에서 손을 잡고 각자 창밖을 바라봤다. 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이지만 남은 이 밤이 이렇게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늦은 밤의 방콕은 악명높은 교통체증이 풀려 수쿰윗까지 금방 이동했다.


홀리데이인 호텔 앞이다.

“덕분에 즐거웠어요. 꿈 같은 밤이었어요. 선예 과장님, 여기 방콕, 함께한 시간, 식사, 대화, 음악, 전부 다” 그가 말했다.

“저도에요. 우리가 하루라도 빨리 더 용기를 내지 못했던 날들이 너무 아까워요. 그 날들이 있어서 오늘이 더 좋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말했다.

“들어가세요”

“먼저 가세요. 저는 바로 여기 들어가기만 하면 되고, 지훈과장님은 좀 걸어가야 되니까 가는 모습 볼게요”


“혹시… 괜찮으면 우리 이 근처에서 칵테일 한잔만 더 하고 갈래요?” 그는 아까 돌아오는 차에서부터 생각했던 말을 했다.

“저는 내일 늦게 일어나도 괜찮아서 더 놀다 들어가도 돼요. 근데 과장님은 내일 비행기 시간 맞춰서 공항갈 수 있겠어요?” 그녀는 그가 바라던 말을 해줘서 기뻤다. 그리고 그의 내일 일정이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저는 괜찮아요. 오늘은 별로 안 피곤해요” 그가 말했다.

“좋아요. 그럼 우리 조금 더 놀다가요”


“그럼 우리 저기 보이는 Titanium bar 갈래요?”

“음… 우리 그러지 말고… 이런 얘기해도 되려나” 그녀가 말했다.

“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요. 제 방에 맥주 몇 캔 사둔게 있는데 거기서 마시는게 어때요? 편하기도 하고 조용하게 얘기할 수도 있고” 그녀가 조금 망설이며 말했다.

“아 저는 좋은데… 괜찮겠어요?” 그가 대답했다.

“우리 오늘은 연인이잖아요. 그래서 괜찮을 것 같은데요?”


두 사람은 근처 세븐일레븐에서 안주와 물만 사서 들어가기로 했다. 안주를 고르며 뭘 먹을거냐고 묻기도 했지만 사실 신경은 온통 호텔방안으로 들어가고 나서 어떤 일이 생길 것인가였다. 그는 어떨결에 그녀의 제안을 수락하긴 했지만 들어가서 정말 술만 마셔야 할지, 뭐라도 더 시도해봐도 될지 감이 오질 않았다.


그녀도 즉흥적으로 한 제안이라서 이게 잘하는 짓인지 헷갈렸다. 괜히 가벼워 보이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방에 들어가면 어떻게 해야하지. 그가 스킨십의 진도를 더 나가면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확실한건 이것이었다. 둘은 들어가서 가벼운 음주와 함께 대화만 해도 좋고, 농밀한 스킨십이 있어도 괜찮았다. 어떤식으로든 서로를 더 깊게 알고 싶을 뿐. 그래서 그들은 약간의 혼란스러움이 있었지만 이미 결정된 사항을 뒤엎고 싶지 않았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얼떨결에 계산까지 하고 편의점 밖으로 나왔다.


“맞다. 잠깐만요. 껌 사려고 했는데. 금방 갔다올게요” 그는 이 말을 하고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금방 계산을 하고 나왔다.

“샀어요?” 그녀가 물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호텔로 들어갔다.


그녀의 방이 있는 15층으로 올라갔다. 방 문을 열고 카드키를 꼽자 방의 조명 몇개가 켜졌다. 방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사온건 여기 둘게요” 그는 소파 앞 테이블에 물과 안주가 들어있는 비닐백을 올렸다. 그녀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와서 그의 옆에 앉았다. 

“뭐 마실래요?” 그녀는 SINGHA 맥주와 LEO 맥주를 하나씩 꺼내 양손에 들고 물었다. 그녀는 그의 대답을 듣기 위해, 그는 대답을 하기 위해 서로의 눈을 본 순간, 둘은 자석이 붙듯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다가가 키스했다. 따지 않은 맥주캔은 이미 소파 한쪽으로 굴러가 둘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했다. 둘은 한참동안 키스에만 열중했다.


오분 정도가 흘렀을까. 둘은 서서히 서로에게서 입술을 떼고 상기된 얼굴로 상대의 얼굴을 마주했다. 

“우리… 할래요?” 그가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혹시… 갑자기 현실적인 생각이 들어서 그런데… 콘돔 있어요?” 그녀가 물었다.

그는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서 3개 들이 작은 콘돔 상자를 꺼냈다. 그녀는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

“아까 다시 들어가서 산게 콘돔이었어요?” 그녀는 손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혹시 몰라서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끄러운 듯 웃었다.

“잘했어요. 칭찬해 줄게요” 그녀는 그의 티셔츠를 벗긴다.

그도 그녀의 원피스 단추를 풀어 벗겼다. 브래지어의 후크를 풀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콘돔 3개를 다 썼다.


이 이야기는 당신을 위한 이야기다. 지금 이 사람이 내 인연이다 싶은 사람이 있는가.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제대로 본게 맞다. 그거 연애의 신이 기획한 것이다. 믿어도 좋다.


내 소개가 늦었다. 나는 지구의 모든 일을 관장하는 최고신이다. 얼마전 연회에서 연애의 신에게 들었던 얘기를 해주는 거다. 당신들이 더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에. 인간은 삶이 유한하잖나.



-<연애의 신이 맺어준 인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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