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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장 Feb 07. 2019

[단편소설] 연애의 결말

선택에는 무수히 많은 변수와 에피소드들이 뒤엉키고, 예측은 소용없게 된다

<7월 22일. 낯선 사진>

금요일 저녁이었다. 우리가 만난 2년동안 금요일 저녁 데이트는 규칙처럼 자리잡았다.

“나 태국사진 보내줘.” 소은이가 말했다. 

“응, 사진이 많으니까 집에 가서 와이파이 연결해서 보내줄게” 내가 대답했다. 


소은이에게는 네 달 전 같이 5박 6일 태국여행을 했던 사진들이 없다. 그 후 그녀 혼자 떠난 두 달 간의 유럽여행 중에 휴대폰을 잃어버렸고, 휴대폰의 데이터는 백업해두지 않았으며, 그래서 태국여행뿐만 아니라 2년간의 우리 추억도 깨끗하게 날아갔다. 디지털이란 이렇게도 냉정했다. ‘소은이는 나랑 헤어져도 지울 사진이 별로 없어서 좋겠네’ 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사이가 지금 같았더라면 나는 태국에 같이 가지 않았을 것이다.


소은이와 나는 네 달 전 둘 다 회사를 그만뒀다. 소은이는 조직생활에 대한 염증, 나는 이직이 이유였다. 그리고 퇴사기념 여행을 태국으로 떠났다. 4월 초의 태국은 엄청나게 더웠고, 소은이는 엄청나게 사랑스러웠다. 돌아와서 나는 며칠 뒤 출근을 했고, 소은이는 2주 뒤 60일간의 유럽여행을 떠났다. 나는 다시 현실로의 복귀, 소은은 비현실로 떠났다. 그리고 두 달 뒤 한국에서 다시 데이트를 하고 있는 우리는 그새 많이 변했다. 어쩌면 자신이 누구인지 더 자세히 알게됐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집에 돌아와 소파에 털썩 앉았다. 휴대폰을 열어 태국 여행 사진을 찾았다. 소은이가 없는 동안에는 사진을 별로 찍지 않아서 스크롤 한번에 사진첩은 4월의 태국으로 이동했다. 소은과 나는 마치 다른 사람들 같았다. 무슨 사진을 이렇게 많이 같이 찍었을까. 왜 이렇게 밝게 웃고 있을까. 서로의 사진도 많이 찍어주고, 재미있는 포즈와 표정도 하고 있었다. 요즘에 만나면 카메라 앱을 한번도 실행시키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너무도 낯설고 어색했다. 다른 커플의 데이트 사진을 보는 느낌이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사진 많이 찍지 말걸’ 사진을 한장씩 볼 때 마다 가슴이 아렸다. 



소은에게 휴대폰 메신저로 10장씩 총 50장을 보냈다. 보내는 사진이 더해질수록 슬픔도 커져서 50장만 보내고 멈췄다. 내심 소은에게 다음에 또 같이 가고 싶다는 말이 나오길 바랐다. 하지만 소은이는 아무 말도 없었고, 메신저의 숫자 1만 없어질 뿐이었다. 리액션의 부재는 나의 용기까지 가져가 버렸다. 같이 또 가고 싶다는 말을 메신저에 썼다가 지웠다.



<7월 29일. 프레임>

우리 둘 다 회사에 다니고 있을 때는 문제없었다. 어쩌면 우리 둘다 돈을 버는 것이 존재의 목적인 조직에 있다 보니 서로의 생각이 이토록 차이가 있는지 미처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사회초년생때의 생각과 달리, 회사는 자아실현을 하는 곳이 아니었다. 나를 고용한 자본가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우리는 일하고 있었고, 각자의 행복은 회사에 근무하는 시간이 아닌, 그 외의 시간에서 찾았다. 그러다가 그녀는 프레임에서 탈출해버렸고, 나는 프레임은 유지했다. 그러고 나서 두달이 지나자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파리에서 1년 정도 살고 싶어.”

“왜 파리에서 살고 싶은 거야?”

“그건 잘 몰라. 예전부터 생각했던 거야. 더 나이 먹으면 못할 것 같고.”

“가서 뭐 할지는 생각해 봤어?”

“생각뿐이지 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가면 뭐든 되지 않을까?”

“그래도 좀 더 찾아보고, 확실하게 할 일을 정해두고 가는게 낫지 않아? 내가 언뜻 뉴스에서 듣기로는 프랑스도 젊은이들이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해서 불만이 많다던대.”

“난 제대로 된 직장을 얻기 위해서 가는게 아니야”

“그럼 그 1년동안 뭘 얻고 싶은건데?”

“얻으려고 하는게 아니야. 그냥 그러고 싶은거야.”


그냥 그러고 싶다라. 인간에게 그냥 그러고 싶다는게 있기나 한가. 섹스라면 또 몰라도. 심지어 섹스도 생물학적 종족번식의 욕구로 설명할 수가 있을텐데 말이다. 아마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설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 이해 못 할 사람에게 이유를 설명하는 것도 곤혹스러운 일이니까.


나는 테이블 앞의 그녀를 본다. 앉아있는 그녀를 본다. 이야기하는 그녀를 본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그녀를 본다. 나와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는 그녀를 본다. 내가 알던 그녀가 맞나 싶다. 우리가 이렇게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나. 이렇게 다른 사람을 2년이나 만났구나. 


낯설다. 나는 너의 있는 그대로가 좋고, 그녀도 나의 있는 그대로가 좋다고 말했던 것 모두 정말로 있었던 일인가 의문이 들 정도다.


“제일 걱정되는건 오빠야.”

그래도 내 생각은 했나보다. 그런데 무슨 뜻이지? 걱정된다니? 내가 혼자 기다리게 될 것이 걱정된다는 것인가? 내가 기다릴 것이라고 생각하는건가? 아니면 나와 헤어지는 사건 자체가 걱정되는건가? 헤어지고 싱글이 될 자신이 걱정된다는 것인가? 뭐가 걱정된다는 것이지? 난 지금 왜 화가 나는 것일까. 나의 계획에서 벗어난 일들이 마구 일어나고 있기 때문일까. 나와 파리의 대결에서 내가 선택받지 못한 것에 화가 나는 것인가. 나를 두고 갈 생각을 할 정도로 나를 사랑하지 않음을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알아버렸기 때문일까.


나는 같이 가고 싶다고 말했어야 하는 것인가. 그러나 나는 빈말이라도 마음에 없는 말은 못하는 사람이다. 내가 파리에 가서 뭘 할 수 있겠는가. 식당에서 설거지 하는 일도 구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을 하고나서 그녀는 말이 없다. 한참 생각하던 내가 입을 뗀다. 말보다 한숨이 먼저 나왔다.

“너가 파리에 가면 우리의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 수 있어” 우리가 헤어질 수 있다는 말을 완곡히 했다.

“그보다 본질적으로 우리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나 방향이 문제라면 문제지 않을까?” 그녀가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반박할 것이 없었다. 나는 안정을 통한 행복을, 그녀는 변화를 통한 행복을 추구하고 있었다.


“오빠 나는 이 땅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걸 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해. 아이들은 태어나고 싶다고 한적도 없는데, 내 마음대로 낳아 놓고 자 인생은 선물이란다. 마음껏 즐기렴 이라고 말하는 건 너무 이기적이야. 나는 아이들이 살만한 곳에서 아이들을 기르고 싶어.”


1년만 있고 싶다더니 속마음 어딘가에는 거기서 계속 살고 싶은 생각도 있었나보다. 아이에 대한이야기로 생각이 넘어간걸 보니 말이다.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하다니 확실히 용기있는 여성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감히 생각도 못하고 있다. 항상 인생을 전쟁처럼 느끼며 살아왔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르며 입시전쟁에 돌입했고, 대학 입시전쟁, 스펙쌓기 전쟁을 거쳐, 취업전쟁을 통과, 생존전쟁으로 넘어갔는데, 또 결혼과 함께 육아전쟁으로 넘어가자고? 심지어 육아전쟁은 거의 20년이다. 요즘엔 30년이 되기도 하던데. 


나는 또 하나의 전쟁을 병행할 수는 없다. 나중엔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어찌됐든 나의 결론도 같았다. 이 땅에서 아이를 키우기는 싫다. 사실은 낳기도 싫은 것이지만.


“응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해”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은 일부분에 대한 동의였다. 출산에서부터 거부감을 나타내면 왠지 갑작스레 헤어짐이 찾아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고객님, 저희 폐점시간입니다”

“네? 10시…인데요?”

“네. 저희는 10시까지 영업입니다”


아직 그녀와의 대화가 작은 결론도 나지 않았는데 카페가 문을 닫는다니, 오늘 밤이 지나면 남겨둔 생각의 차이만큼 그녀와 더 멀어져 있을까봐 두려웠다. 다른 곳에 이동해서 계속 이야기를 하기에는 어차피 오늘안에 답이 안나오는 주제였다. 카페에서 일어서서 자연스럽게 지하철역쪽으로 향했다. 내가 걱정했던 만큼 벌써 멀어진 것일까. 그녀의 손을 잡기가 어색했다. 일부러 소은이의 손을 잡았다. 그물을 빠져나가는 물처럼 잡았던 손이 빠져나갔다. 항상 하던 가벼운 입맞춤도 없이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7월 30일. 응원>

그녀가 파리에서 살고 싶어하는 것도 새로운 도전이라고 한다면, 한편으로는 그 도전을 응원하고 싶은 것도 진심이다. 남들과 비슷한 선택들을 하면서 자신의 인생이 달라지길 바라는 것은 지나친 착각이다. 회사원의 기본은 출근해서 오너나 자본가의 일을 열심히 해주다가 퇴근하는 것인데, 여기서 삶이 달라봐야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어떤 기업에서 일하든 그 일은 근로자 자신의 일이 아니다. 이 일이 정말로 즐겁다면 그건 노예가 천성에 딱 맞는 것 아닐까. 남의 일 잘 되게 뼈빠지게 일하는 것이 즐거울리 없다. 


다른 선택들을 해야 다른 결과들이 나온다. 그리고 또 하나,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리스크가 크면 보상도 크다. 리스크와 보상을 계산하는 것 자체가 그녀의 현재 생각과는 안 맞을 수도 있지만. 



<8월 6일. 얇고 투명한 벽>

인생에서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나서 사랑이 식은 것일까, 사랑이 식으니 인생의 방향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모르겠다. 


소은이와 저녁을 먹었다. 이야기도 많이 하고 손에 펜으로 타투처럼 그림을 그리면서 놀았지만, 우리 사이에 얇고 투명한 벽이 있는 듯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 거리감을 서로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서로 노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소은이 나를 예전만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느꼈다. 그러면 나는 소은을 처음처럼 좋아하는가? 


아니다. 


처음처럼 설레이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좀 더 안정적이고, 가볍지 않게 좋아한다. 2년이 지나면서 자연스러운 변화일 수도 있다. 그런데 완만한 언덕을 내려가듯 스무스하지 않고, 계단에서 발을 헛디디며 구른 것처럼 충격이 전해진다. 직장에서 일도 하고,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도 있고, 여자친구도 있고, 혼자지만 프라하로 여름휴가도 곧 떠나는데, 뭔가 쓸쓸함이 마음에 스미는 요즘이다.


이제 우리는 예전만큼 같이 사진을 찍지도 않고, 서로를 찍지도 않고, 헤어질 때 가벼운 입맞춤도 하지 않고,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소은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사랑하는 마음이 점점 없어져, 어느 날 문득 사랑이 담겨있던 창고를 열어보니 그것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된 것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 아마 시간이 다 가져갔을 것이다.



<8월 19일. 그녀의 결심>

“오빠 나 얘기하고 싶은거 있는데”

“응, 어떤 얘기야”

저녁 식사를 같이 하고 근처에 있는 대형 커피 체인점에서 나는 아메리카노를 소은이는 카페라떼를 마시고 있었다.

“나 파리에 갈거야”

“음…결정했구나”


“파리에서 유학하고 있는 내 친구 있다고 했잖아”

“채경이?”

“응. 그 친구 집에서 같이 지내기로 했어”

“좁지 않을까?” 내가 물었다.

“사실 그 친구 남자친구가 브라질 유학생이었는데, 같이 살고 있었거든. 근데 최근에 자기 나라로 돌아갔대. 그래서 둘이 지내기는 괜찮은 집이야”

“흠…그래” 나는 몸을 뒤로 젖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팔짱을 꼈다. 채경이네 커플은 헤어지지 않았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소은이는 내 생각이 궁금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뭐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

“이미 결정 다 했는데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가 중요한가…”

“그래도 말해봐”

“나는…너가 파리에 가고 싶다면 그러는게 맞다고 생각해. 나는 파리가 아니니까… 네가 간절히 원하는걸 나는 줄 수가 없어. 그래서 잘 결정했다고 생각해” 나는 느리고 신중하게 말했다.


“우리는 어떻게 하지…?” 소은이는 딱히 답을 바라지 않는 혼잣말 같은 질문을 했다. 나도 이렇다 할 답은 없어서 아메리카노만 홀짝거렸다. 예전에는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시간이 지난 지금은 너무나 불확실하게 보인다.


소은이는 선택으로 인해 발생하게 될 일들도 다 생각해봤는지 궁금하다. 얻게 될 기회, 잃게 될 기회, 새롭게 얻은 행복, 잃게 될 행복, 감당할 자신만 있다면 뭐가 문제겠나. 아마 가게 된다면 나와의 관계는 잘 풀릴 것 같지 않다. 좋아 죽겠을 때도 1년간의 부재는 만만치 않을텐데, 이렇게 미지근할 때라면 나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나는 성인군자가 아니고, 도 닦는 사람도 아니다. 속단할 수 없지만, 앞으로 생각이 많아질 일들이 닥쳐올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인생이 참 어렵다.



<8월 21일. Mon Amour>

소은이 생일선물로 줬던 파버카스텔 펜으로 오늘 일기를 썼다. 이 펜에는 이니셜 대신 Mon Amour라고 각인을 해서 선물을 줬는데, 프랑스어로 ‘내 사랑’이라는 뜻이라고 했었다. 요즘에는 입으로 꺼내지 않는 단어인데, 이렇게 펜에 떡하니 써 있으니, 새삼 많은 것이 달라졌음을 또 느낀다.


매일 잠자기 전에 전화를 하고 끊을 때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매일 했었다. 소은이는 가끔 했으나, 그 말을 하지 않을 때도 나도 사랑하지만 말하기는 부끄럽다는 뉘앙스였는데, 요즘에는 못들은 척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말한 내 자신에게 굉장히 민망함을 느끼곤 한다. 이러다보면 이 생각이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소은을 사랑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그 대답은 지금도 바로 할 수가 있다. 내 대답은 NO. 


나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나도 사랑받는 기분을 느끼는 것이 좋은 것이지 나 혼자 일방적인 것은 필요 없다. 그러고보니 소은이는 요즘에 나에게 보고싶다라는 말도, 내 사랑이라는 애칭도 쓰지 않는다. 나는 섭섭함을 느낀다. 


소은이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매일 곰곰히 생각해보고 있다. 예전처럼 설레는 관계로 돌아가려면 우리 둘 다 노력을 많이 해야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보다 본질적으로 과연 회복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은 또 생각해 볼 문제다. 


우리의 과거가 많이 그립다. 계속 만나도 그 때 그 과거가 펼쳐지지 않을 것은 당연하지만, 그 아름다웠던 기억속에 같이 있었던 사람까지 실제로 내 곁에 없다면, 깊은 슬픔을 느낄 것이다.



<9월 3일. 선택의 문제>

소은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 중 많은 부분을 소은도 생각하고 있었고, 내가 느끼는 것들을 소은도 느끼고 있었다. 파리에 갈 준비를 하고 있는 과정도 들었다. 나도 이런 이야기들을 해봐야지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마침 소은이가 이야기를 꺼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서로가 생각하는 미래와, 우리의 관계, 가치관 등등. 이야기를 하면서 화가 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속 시원했다. 


모든 것은 선택의 문제다. 지나고 나서야 그 때 그렇게 하길 잘했어 라든지, 그 때 그렇게 결정해서 아주 망했어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슬프게도 한가지 선택에는 무수히 많은 변수와 에피소드들이 뒤엉켜서, 선택 전에 아무리 예측해봐야 도무지 미래는 알 수가 없다.



<11월 19일. 출국>

“이제 가야겠네” 내가 말했다.

“그래야지”

체크인을 마치고 우리는 잠깐 체크인 카운터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휴우” 그녀가 한숨과 함께 일어났다.


소은과 출국장 앞에서 가벼운 포옹을 했다. 오랜만의 포옹에서 어색함이 느껴진다. 사랑한다는 말을 그렇게 많이 했건만 지금은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가 다른 사람임을 발견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냥 사랑이 끝난 것이다. 


“조심히 가. 가서 재미있게 잘 지내고. 밥도 잘 챙겨 먹어. 건강도 챙기고”

“나… 하고 싶은거 하면서 잘 지낼게. 오빠도 하고 싶은거 해. 글도 쓰고…”


누가 말한 적은 없지만 우리 둘 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차곡차곡 이별을 준비했다. 그래서 우리의 말엔 이 시간 이후에 대한 약속이 없다. 이런 화법은 뱉고 나면 슬픔이 밀려온다. 이별할 날짜를 정해두고 그 날까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갑작스런 충격보다는 완만한 하강을 택했다. 아마 오늘 이후로 그녀를 만날 일이 없을 것이다. 지금은 같이 있지만 미래엔 이별이 있다.


“이제 들어가” 나는 출국장 입구를 보면서 말했다.

“오빠 먼저 가”

“멀리 가야 되는 사람이 먼저 가야지”

“아니야. 여기까지 데려다 줬는데 오빠 먼저 가” 그녀가 말했다.

“그래 알았어. 그럼 잘 가” 나는 손을 들어 흔들었다. 코가 시큰해지는걸 느꼈다.

“오빠도 잘가” 그녀도 손을 들어 인사했다.


나는 등을 돌려 걸었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가 나를 보고 있어도 슬프고, 그녀가 이미 출국장안으로 들어가서 보이지 않아도 슬플까봐.


참 행복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그 순간들은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그 기억들은 정말 예쁘게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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