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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장 Dec 18. 2019

[단편소설] 연애의 신이 맺어준 인연 #2

방콕에서 만나게 된 그녀와 그

사랑의 신, 결혼의 신, 이혼의 신, 이별의 신은 연애의 신의 이야기를 유심히 듣더니 의견을 내놨다. 종합하면 이랬다. 이 정도 상황 만들어줬으면 이 다음부터는 알아서 하는게 맞긴 한데, 아무래도 일로 엮이게 만들어서 조금 헷갈릴 수도 있었겠다고. 그녀와 그의 론칭 프로젝트가 끝나면 그 때 즈음으로, 운명처럼 상황이 펼쳐지게 되는 기획을 한번 더 해보는게 어떻겠냐고.


연애의 신은 아쉽기도 하고 기왕 시작한거 좀 더 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다음 기획에 착수했다.


방콕 아속역 사거리


12월 30일 태국의 방콕. 저녁 7시경 그는 아속역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 때 그의 등을 누군가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그녀다. 이제 당신도 알 것이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연애의 신이 기획한 것이다. 느낌이 통하는 남녀의 만남에 우연은 없다. 모두 필연이다. 그러니 그냥 지나치지 말지니. 그건 그렇고, 그들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어? 선예 과장님? 여기 웬일이에요?” 그가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저 휴가 왔어요. 저 뒤에서부터 봤는데 긴가민가 해서 말을 걸어볼까 말까 하다가 아님 말지 뭐 라는 생각으로 등에 노크를 해봤는데 맞네요” 그녀는 활짝 웃었다. 그는 이미 해가 저문 방콕에 그녀의 웃음으로 다시 해가 떠오르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라는 가사가 괜히 있는게 아니구나 라고 생각하며. 


“지훈 과장님도 휴가?” 그녀가 물었다.


그는 올해 남은 연차를 다 털어서 혼자 4일 전에 왔다. 오늘이 마지막 밤이다. 내일 오후 12시 비행기로 돌아간다고 말하며 그녀의 일정을 물었다. 그녀는 혼자 3일 전에 왔다고 했다. 급하게 예약하고 오느라 친구들과 일정을 맞추진 못했다고. 그랬는데 여기서 아는 사람을 만나 정말 반갑다고. 방콕에서 2019년의 마지막 날까지 보내고 새해 첫날 돌아간다고 했다. 


두 사람은 세 달 전에 서로를 잠 못들게 했던 그 당사자들을 방콕에서 만나자 설레임으로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워했다. 방콕의 하늘 아래 며칠이나 같이 있었는데, 이제서야 만나게 되다니 너무 아쉬웠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만난 것이 그래도 다행이고, 이것이 운명이라면 운명이라고 그 둘은 생각했다.


“저 저녁 먹으러 가던 중인데 같이 가실래요?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는 마사지 받고 나와서 배고프던 참에 잘 됐다며 같이 가자고 대답했다. 그는 이 순간만은 신은 나의 편이라고 생각했다. 맞는 생각이었다. 연애의 신이 돕고 있었으니. 그녀도 그 질문이 그렇게 반갑고 좋을 수가 없었다. 서울에선 매일 생각하면서도 연락한번 하기도 그렇게 부담스러웠는데, 이역만리 타국에서는 식사제안이 이렇게 자연스럽다니. 좋고도 좋도다. 아름다운 저녁이로다.


그는 방콕에 올 때마다 갔었다던 수다 레스토랑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아속역 사거리에서 그랜드쉐라톤 수쿰윗 쪽으로 걸어가다가 왼쪽 골목으로 들어가니 금방이었다. 그들은 가게 바깥으로 내놓은 테이블에 앉았다. 똠양꿍, 푸팟퐁커리, 얌운센, SINGHA 맥주 두병을 주문했다.


방콕 수다 레스토랑 간판


“방콕으로 온 이유가 뭐였어요? 선택지는 많았을텐데” 그녀가 물었다.

“저는 방콕을 몇번 와봤는데 언제나 내 마음속 넘버원 휴가지랄까요. 그래서 또 왔어요. 항상 여름인 것이 좋고, 친절하고 나긋나긋하고 특유의 나른하고 여유있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좋아요. 이곳은 나와는 다른 시간 관념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도시인걸 느껴요. 그래서 내 마음까지 편안하게 만들어 줘요” 그가 곰곰히 생각하며 느리게 말했다.

“확실히 이곳도 서울만큼 큰 도시지만, 서울만큼 조급한 느낌이 들지 않는 건 사실이네요” 그녀가 말했다.


“또 음식이 맛있고, 다른 나라들보다 낮은 가격에 좋은 호텔에 묵을 수도 있고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워요” 그가 말했다.

“저는 이번이 첫 방콕인데, 정말 그렇더라구요. 저는 제가 이곳 음식이 이렇게 잘 맞을 줄 몰랐어요. 수영장 선베드에 누워있으면서 내가 유럽에 왔다면 이 가격에 이러고 있진 못했겠지 라는 생각도 하고. 이곳 수쿰윗에 있을 때는 현대도시 같다가도, 짜오프라야 강변쪽에 가면 강 양옆으로 왕궁과 사원이 보이면서 방콕의 옛날 모습과 생활상도 보이고. 그 간극이 사람을 설레게 하더라구요” 그녀가 말했다.


“특히 짜오프라야 강변에서 노을질 때와 왓아룬이 보이는 야경이 예쁘죠. 저는 이렇게 제가 좋아하는 바이브를 갖춘 도시가 방콕인데, 여기가 항상 여름이라서 이 바이브가 딱 완성되는 느낌이에요. 제가 꼽는 최고의 계절은 단연 여름이거든요” 그가 계절 이야기를 꺼냈다.

“저도 최애가 여름인데. 여름 정말 좋지 않아요? 건강하고 싱싱한 녹색 잎으로 반짝이는 나무를 보는게 좋아요. 바람이 불면 나뭇잎들끼리 부딪히면서 쏴아아 하는 소리가 나는 것도 좋아요” 그녀가 말했다.

“강렬한 태양도 좋고요” 그가 말했다.

“쏟아붓는 비도 좋고요” 그녀가 말했다.

“계절 전체에 깃든 넘치는 에너지가 좋아요” 

“약간 선선해지는 밤도 좋고요” 

“그런 밤에 이렇게 야외에서 저녁먹는 것도 좋고요” 그가 말했다.

“긴 하루도 좋아요. 방콕의 12월은 해가 짧은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지난 9월 첫 만남 이후 매일 그가 그리웠던 것이며, 여기서 날씨 이야기만 해도 재미가 있고 통하는 기분이 들자 역시 이건 그냥 넘길 인연이 아닌건가, 혹시 여기 방콕에서 만난 것 자체가 운명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이렇게 만난 일까지 그냥 넘기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즐거운 대화와 함께 식사를 다 마칠 때 즈음이 되자 시간은 9시경이 됐다. 

“이 시간 이후 계획이 뭐에요?” 그가 물었다.

“오늘은 쉬엄쉬엄 보내기로 해서 일정을 잡아둔건 없어요? 지훈 과장님은요?”

“저는 마지막 밤이 조금 아쉬워서, 카오산로드에 한번 더 가고, 카오산로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블루스 바에 가려고 했어요. 같이 가실래요?” 그가 물었다.


“신나는 밤으로 계획해 놓으셨구나. 근데 진짜 저도 같이 가도 되요? 저는 같이 가고 싶긴한데, 혹시 혼자만의 시간 보내고 싶은걸 제가 괜히 방해하는건 아닌가 싶어서요” 그녀가 말했다.

“아휴 전혀 아니에요. 저는 지금 선예 과장님이 같이 가자고 대답하시길 바라고 있었어요. 같이 가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다행이다. 그럼 같이 가요” 그녀가 웃었다. 그는 그녀의 아름다운 웃음에 황홀하면서도 혹시 오늘 이후 이 웃음을 또 못보게 된다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너지는 기분도 동시에 들었다.


그녀는 그와 더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됨에 가슴이 부풀어 터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일단 지금 여기, 즐거운 밤에 집중하기로 마음먹는다.



-3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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