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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장 May 10. 2019

[단편소설] 정의의 집행자

잃을 것이 많으면 복수가 어렵다

잃을 것이 많으면 복수가 어렵다. 복수는 리스크를 감당해야 한다. 상대에게 정신적인 피해를 입히는 복수를 하든, 폭력을 동반한 복수를 하든, 그것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걱정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파괴돼도 상관없다면? 복수가 상당히 쉽다. 나에겐 그래서 쉬웠다. 모두 파괴해 버리기로 했다.


삶의 무의미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리고 괴로워했다. 그리고 얻은 결론은 이것이다. 삶은 우연이며 목적이 없고 의미도 없으며 가끔 행복하긴 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양의 고통에 비하면 티도 나지 않는다. 기대되는 미래도 없다. 그래서 나는 불필요한 노력을 수십년간 더 할 필요없이 인생에 종료버튼을 누르기로 했다.


그런데 황천 가기 전에 나도 뭔가 좋은 일 하나 정도는 하고 가고 싶었다. 나는 이렇게 가도 세상이 좀 더 좋아질 수 있게 뭐라도 하고 싶었다. 곰곰히 생각하자 한 사람이 떠올랐다. 내가 몇 년 전 다녔던 중소기업의 사장. 내 인생에서 만났던 최악의 인물. 나를 비롯해 여러 사람을 괴롭게 했던 인물. 이 인간도 같이 황천으로 데리고 가야 겠다고 결정했다. 쓰레기 하나는 내가 치우고 가야겠다는 공익적 결심을 한 것이다.


먼저 그 회사가 아직 그때 그곳에 있는지 검색해봤다. 아직 거기에 그대로 있었다. 다행이다. 일처리에 드는 노력이 조금 줄겠다. 사람을 맨손으로 때려죽이기는 쉽지 않고 내가 불리하게 될 수도 있으니 무기를 사용하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손도끼를 검색했다. 혹시 사기가 힘들지 않을까 걱정도 했었는데, 이게 웬걸 너무 쉽다. 그냥 여느 인터넷 쇼핑하듯이 살 수 있었다. 나는 날이 예리하고 어느정도 중량이 있어서 맞았을 때 뼈까지 부러뜨릴 수 있어 보이는 것으로 구매했다. 예상 배송일은 이틀 뒤 수요일 이었다. 그래서 난 그 다음주 월요일 오전으로 날짜를 정했다. 그 날 오전에는 그 놈도 사무실에 있을 것이다. 월요일 아침에는 항상 임원회의를 했었고, 끝나고 각자 사무를 보다가, 점심을 같이 먹는 것이 그들의 일정이었다. 


일단 다니던 직장은 개인적 사정으로 그만둔다고 전화했다. 아주 예의없는 퇴사였지만 다 끝내기로 결심한 마당에 꼭 해야할 일에만 몰두하고 싶었다. 월요일이 올 때까지 남은 날은 이미지 트레이닝에만 몰두했다. 판교 테크노밸리까지 가는 길, 주차, 코트에 손도끼를 숨겨 7층까지 올라가기, 다른 사람이 들어가는 틈을 노려 사무실 안으로 진입, 대표이사실로 이동, 문을 박차고 들어가서 공격. 그 놈의 사망. 창문 열고 나도 낙하. 끝. 만약 자리에 없다면 바로 돌아서서 건물 밖으로 나올 것. 그리고 다음 기회를 노려 다시 올 것. 수십번을 생각했다. 


월요일은 금방 왔다. 시간은 언제나 빨리 간다. 모든 것이 이미지 트레이닝한 대로 흘러갔다. 사람들은 은근 주변에 무심하다. 7층에 도착한 후, 들어갈 수가 없어서 핸드폰을 보는 척하며 적당한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나에게 신경도 안쓴다. 누구지? 하는 표정뿐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누군가가 사무실 입구쪽으로 걸음을 옮기길래, 나도 그쪽을 따라갔다. 그 사람이 들어가고 문이 잠기기 직전에 나도 문을 열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사무실 공간 구성은 그대로였다. 지체하지 않고 대표이사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동 중 사무실 통로에서 모르는 얼굴 두 명을 마주쳤으나 나를 특별히 제지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관심도 없어보였다. 누구의 손님이겠거니 하는 눈치였다. 비서의 앞을 지날 때 나를 보고 어? 하며 무슨 말을 하려 했으나 난 이미 대표이사실 문을 열었다.


그 놈은 컴퓨터로 뭔가를 보고 있었다. 문앞에 있는 대표이사는 나를 보고 얼굴은 생각나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어? 자네? 갑자기 뭔가? 


나는 대답하지 않고 품에서 손도끼를 꺼내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제서야 그 놈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뒷걸음질 치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 놈은 역시 죽을 운명이었다보다. 뒷걸음질 치며 스스로 구석에 몰렸다. 나는 손도끼를 그 놈의 머리쪽으로 휘둘렀다. 그 놈이 팔로 막아 팔에 도끼가 박혔다. 도끼를 빼내자 피가 튀어 올랐다. 그 놈은 주저 앉아 자신의 팔뚝을 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어느새 대표이사실 문 앞에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다. 하지만 이 광경을 보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다시 도끼를 들어 그 놈의 머리를 찍었다. 팔을 보며 비명을 지르고 있던 그는 이번엔 막을 새도 없었다. 머리에 도끼가 박힌 채로 그는 풀썩 쓰러졌다. 나는 한쪽 발로 그의 얼굴을 밟고 정수리 근처에 박힌 도끼를 뽑았다. 피가 튀고, 바닥에도 피가 번졌다. 나는 다시 도끼를 들어 그의 얼굴을 가로로 찍었다. 살이 짓이겨지고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도끼를 다시 뽑아 손에 들었다. 내 몸에도 피가 많이 튀어 미끌거리는 느낌이다. 대표이사실 문 쪽을 바라봤다.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는 핸드폰으로 촬영을 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신고를 하고 있는 듯했다. 상관없었다. 나는 오늘 이후의 삶을 기대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문 쪽에 서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창 쪽으로 이동했다. 완전히 열리지 않는 창이라서 적당한 크기의 창문의 유리를 도끼로 깨버렸다. 그리고 뛰어내렸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내가 살아버렸다. 빌딩 주변에 큰 나무들이 있었는데, 거기에 걸려서 바닥으로 떨어지지도 못했다. 가끔 아파트에서 투신한 사람들이 살았다는 기사를 보곤 했는데 내가 딱 그 꼴이 났다. 나무에 걸려있는걸 경찰관과 소방관이 내려줬다. 부상은 찰과상과 타박상 뿐이었다. 죽고 싶었는데 살아있으니 허탈하다. 지금은 수갑을 찬 채 경찰차 뒷자리에 앉아 경찰서로 이송되고 있는 중이다. 살인도 초범이면 형량이 10년 정도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던데, 나는 이제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10년을 보내야 할 수도 있겠다.


잠깐. 이것은 신의 계시인가. 내 손으로 직접 정의를 실현하라는 계시? 그렇다면 좋다.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이번 건이 마무리되고 나면 두번째 정의를 실현하도록 하겠다. 쓰레기 같은 인간들은 내가 일부분 청소하고 간다. 엇? 나에게도 인생의 의미와 목표가 생겼다. 이제부터 세상을 조금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이 내 인생에서 유일한 의미다. 목표은 쓰레기 처단 그 자체다. 두번째 정의 실현은 한명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떠오르는 사람이 여럿이다. 우선순위 정리가 필요하겠다. 정의를 실현시킬 생각에 갑자기 신이 나려고 한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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