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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장 Aug 09. 2019

[단편소설] 대신 네가 지면 윤회는 없다

인생의 의미? 잘 찾아보게. 행운을 비네.

“끼이익-“

“쾅!”




“이봐, 강지훈이. 일어나게. 갈 시간이네”

지훈은 자신을 깨우는 소리에 깼다. 

삑-삑-삑-삐익-삑-

그의 귀에 기계음이 들린다. 고통은 없다.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본다. 응급실이다. 옆에는 검은 수트를 입은 남자가 서있다.


“가세” 검은옷의 남자가 말했다.

“어딜요? 근데 누구…세요?” 지훈은 아직 상황 파악도 안됐는데 다짜고짜 가자고 하는 검은옷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저승사자네. 오늘은 자네가 죽는 날이고. 나는 데리고 가려고 왔지”

“에헤이. 아저씨 병원에서 그런 농담하면 못써요. 저 보세요. 교통사고 났던 것 같은데 지금 다친 곳도 안보이고 아픈데도 없어요. 오늘 퇴원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검은 옷의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강지훈이, 베개 쪽을 보게.”


지훈의 눈에 처참하게 망가진 모습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이 들어왔다.

“어...엇??? 어??”

그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검은 옷의 남자와 누워있는 자신을 번갈아 쳐다봤다.

“왜? 왜 나에요? 왜 오늘이에요?”

지훈은 저승사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게 네 운명인걸 어찌하겠느냐.”

저승사자는 담담하게 말했다.


“저승사자 아저씨,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요?”

“알고 있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홀어머니가 자네를 키웠지. 그래도 형편은 어려웠고, 자네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어릴 때부터 안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지. 어머니는 고된 노동에 병을 얻어 4년 전부터 병원신세를 지고 있고. 자네는 학비를 아르바이트로 겨우 벌어 학교에 다녔지. 이제 졸업반이자 취준생이고. 그리고 오늘이 왔지”


“잘 아시네요. 아시다시피 저 빠듯하게 먹고 사느라 정신없어서 아직 인생의 의미도 못찾았어요. 그래서 아직 못 죽어요. 담에 다시 와주세요” 지훈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자네 말이 좀 이상하구만. 인생에 의미가 있다고 미리 가정하고 있잖나”


“그럼 의미가 없다고요?”

“자네가 태어난 이유는 인간들의 성욕과 본능, 자손번식의 욕구에 따른 성행위. 그 생물학적 이유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네. 어차피 죽음으로 종결되는 인생인데 의미가 있을리가 있겠는가. 아무리 현생에서 대단한 것을 이룬다고 해도 저승으로 가져갈 수도 없지. 다시 태어나도 이전의 기억은 남지 않네. 각자 삶에 의미가 있다? 인생에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된 인간들이 허무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해” 저승사자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저승사자 아저씨, 난 동의 못해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난 저승에서 일하네. 수만명을 저승으로 인도했어. 나보다 인생과 죽음에 대해 잘 아는 존재가 있겠는가?”

“아저씨도 일만 하다보니 그런거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나보죠”

“그렇게 자신있으면 내기할까?” 저승사자가 제안했다.


“어떻게요?” 지훈이 방법을 물었다.

“내가 자네에게 60년을 더 주겠네. 이 정도면 자네는 한국 남성의 평균 수명보다 오래살게 되는거야. 그리고 나서 데리러 오겠네. 그때까지 내가 납득할만한 인생의 의미를 찾아보게. 자네가 이기면 받게 될 것은 내가 오늘 미리 준 60년이네.”

“제가 지면요?”

“지면 앞으로 절대 윤회 없이 나 저승사자의 종으로 사는거네”


5분이 흘렀을까. 지훈이 말했다. “하시죠” 

“그럼 행운을 비네” 저승사자는 이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강지훈이, 60년 전에 말이야. 그때 자네가 이길거라고 생각했나?” 저승사자가 염라대왕에게 가는 저승길을 걸으며 물었다.

“아닙니다. 저도 사실은 막연했습니다. 단지 당장 죽는게 억울해서 내기에 응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된건가? 놀랍군”

“그날 이 후 인생의 의미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건 알겠더군요. 사랑. 사랑만이 의미가 있다. 사랑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사랑으로 사람을 대하자. 사랑으로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자. 이것을 실천하는 것이 내 인생의 의미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할일은 무수히 많았고, 길은 저절로 열렸습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오늘 자네 영결식이네. 이거 한번 보게” 저승사자가 손거울을 건넸다. 지훈이 거울을 보니 광화문 광장이 보였다. 넓은 광장이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몇 년전 지훈이 표지를 장식했던 TIME지를 가슴에 안고 있다. "나의 친구이자 은인, 안녕히 가시길" "당신의 사랑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게요" "같은 시대를 살아 행복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각자 하고 싶은 말들을 적은 종이를 들고 있다.


지훈은 거울을 저승사자에게 돌려준다. 저승사자가 묻는다. “지훈, 이번엔 억울하지 않은가?”

“그럴리가요. 내 인생은 사랑으로 가득했습니다. 후회없이 노력했습니다. 웃음과 눈물이 있었습니다. 함께 행복하기 위해 힘썼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있으니, 죽었지만 죽지도 않았죠.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도 사랑을 나눠주는 인생을 살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지훈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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