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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장 May 08. 2019

[단편소설] 너를 결혼시킬 초능력 #5

영원히 봉인된 초능력

지훈과 유나가 만난지 60일째 되는 날이자, 이별이 약속된 날은 월요일이었다. 지훈은 이날은 꼭 만나야 된다면서 이미 2주전에 연남동에 있는 타이 음식점을 예약까지 해뒀다. 타이음식은 둘 다 좋아하는 음식이니까 마지막 만찬으로 적당할 거라면서.


약속시간인 저녁 7시 30분에 딱 맞춰 도착한 유나는 직원의 안내를 받기도 전에 테라스 좌석에 앉아있는 지훈을 발견했다. 지훈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의자 등받이에 기대서 팔짱을 끼고 밖을 내다보고 있다. 유나는 다가오는 직원에게 괜찮다는 손짓을 하고 지훈에게 걸어간다. 유나는 그의 머릿속이 궁금하다. ‘나처럼 고민하고 있을까?’ 유나는 생각한다.


유나가 지훈의 앞자리에 앉았다.

“어, 왔어?” 지훈이 유나를 보며 미소짓는다. 미소에 애수가 녹아있다.

“무슨 생각 하고 있었어?” 유나가 물었다.

“벌써 여름이구나. 금방 두 달이 지났구나. 내가 좋아하는 여름이 나에게는 몇 해가 더 남았을까. 이런 생각하고 있었지”

“너 오늘 좀 센치멘탈해 보여”

“여자친구랑 헤어지는 날인데 신날 수는 없잖아? 일단 주문부터 하자” 지훈은 애써 밝은 억양으로 말했다.


둘은 똠양꿍, 뿌님 팟퐁커리, 얌운센, 라이스 두개를 주문했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오늘 서로에게 있었던 일을 묻고 대답했다.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갔지만 둘은 대화보다는 대화에서 상대의 진짜 속마음을 캐치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오늘을 어떻게 마무리 할지 마음의 결심을 할 수 있는 결정적 힌트를 찾고 싶어서 말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서로의 마음을 알기 위해 너무 애쓰다보면 오히려 전혀 감이 안 올 때가 있다. 지훈과 유나가 딱 그랬다.


“우리가 시간이 좀 더 많았다면 방콕에 같이 놀러가도 좋았을텐데” 지훈이 커리와 밥을 자기 접시에 덜면서 말했다.

“나중에 가면 되지. 그때는 뭐…숙소는 따로 잡아야 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되긴 하지만 나는 연인일 때 같이 가고 싶었거든”

“…그래? 왜?”

“몇번 말해서 너도 알고있을텐데, 방콕은 내가 많이 좋아하는 도시거든. 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가고 싶었어. 좋아하는 장소에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가고 싶었지”


“너 나 좋아해?” 유나는 그릇에 덜어놓은 똠양꿍을 스푼으로 괜히 뒤적이며 물었다.

“우리가 약속한 기간만큼은 사귀는 사이니까, 그 기간에는 당연히 여자친구인 너를 좋아하지”

“그렇구나”

“너는 나 좋아해?” 지훈이 커리와 밥을 섞으며 물었다.

“나도 너처럼 그렇게… 그만큼 좋아해” 유나가 말하고 나서 물 한모금을 마셨다. 지훈은 커리와 섞은 밥을 먹지 않고 스푼을 내려놨다. 그리고 물을 마시고 시선을 테라스 밖으로 옮겼다.

“다 먹었어? 그럼 가자” 유나가 일어나서 빠른 걸음으로 계산대로 갔다. 지훈도 옷과 가방을 챙겨 따라 나섰다.


“잘 먹었어” 지훈이 말했다.

“시작하는 날은 너가 샀으니까 마지막날은 내가 사고 싶었어”

“차 마시러 갈까?”

“그래”


지훈과 유나는 근처 카페로 갔다. 연남동의 카페는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에도 사람이 많아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다. 유나는 카모마일 티, 지훈은 페퍼민트 티를 주문하고, 카페 안쪽 자리 2인용 테이블에 앉았다.


“헤어지기에 좋은 분위기는 아니네” 지훈이 농담과 진담이 섞인 말을 했다. 유나는 그 말에 지훈을 보며 살짝 미소만 지었다. 그 사이 진동벨이 울렸다. 지훈이 음료를 가지고 자리로 돌아왔다. 한동안 둘은 별다른 말없이 카페의 풍경과 커피를 뽑는 바리스타와 대화를 하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나랑 헤어지고 나서도 잘 살아” 1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유나가 말했다.

“왜 다신 안 볼 것처럼 말하고 그래” 지훈은 섭섭하다는 말투다.

“우리가 연인 관계로 만나는 건 마지막이 맞지”

“그렇긴 하네”


“이제 오늘이 지나면 나는 이제 너 다음에 사귀게 될 남자랑 결혼하는 거지?”

“응. 내가 8명을 다 그렇게 결혼시켰으니까, 너도 그렇게 될거야. 너는 9번째 사례가 되겠지” 지훈이 장난스럽지만 어딘가 아쉬움이 묻어나는 말투로 말했다.

“앞으로 결혼해서 잘 살게” 유나가 말했다.

“응. 그래야지. 그러려고 내가 너랑 사귀었는데. 결혼식 때 나 꼭 불러”

“올거야?”

“당연히 가야지”

“우리 완전 헐리우드 스타일인데?” 유나가 농담하며 피식 웃었다.


“우리 이제 그만 헤어지자” 농담 이후로 거의 5분동안 말이 없던 유나가 입을 열었다.

“그래 다음에는 친구로 만나자” 지훈이 우물에서 물을 긷는 것처럼 끌어올리듯 말을 꺼냈다.

“응. 먼저 들어가. 난 여기 좀 더 있다가 갈게” 유나가 오른손을 들어 살짝씩 흔들며 작별의 제스처를 취했다.

“너 먼저 가. 너 남겨두고 가기가 좀 그런데?”

“나도 너 남겨두고 가면 마음이 좀 이상할 것 같아서 그래. 너도 좀 그렇겠지만 오늘은 내 말대로 해주면 안될까?” 유나가 부탁했다.

“…알았어. 그럼 먼저 들어갈게. 이따가 조심히 들어가” 말을 마친 지훈이 일어섰다. 출구쪽으로 몇 걸음 옮기다가 유나를 돌아봤다. 유나도 지훈을 보고 있었다. 지훈이 손을 흔들었다. 유나도 엷은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었다.


지훈이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되자 유나는 가늘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이대로 끝인건가. 그래도 친구로는 남기로 했으니까 끝은 아닌건가. 하지만 이제 지훈이와 친구로 지내는건 싫은데. 내 마음은 이미 선을 넘어버렸는데. 같은 생각을 하며 앉아 있었다. 그리고 카페에 걸려있는 그림을 잠시 응시하다가 갑자기 가방을 챙기며 일어섰다. 출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걸음은 점점 빨라져 문에 다다를 때 즈음엔 거의 뛰다시피 했다.


그때 출입문을 열고 지훈이 들어왔다. 몇 걸음 앞에 있던 유나와 마주쳤다. 유나도 지훈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지훈이 다가와 유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유나야 나랑 다시 만나자. 나 이제는 너 없이는 안돼. 두달 연애고 뭐고 그런거 이제 그만하자”


“아니, 오늘은 내가 말할래” 유나가 고개를 젓더니 지훈을 보고 말했다. “지훈아 나랑 다시 사귀자. 그리고 너 덕분에 나는 이제부터 사귀게 나는 남자랑 결혼하게 돼있거든. 그래서 넌 나랑 결혼하게 될거야. 어때?”

“나도 그러고 싶었어” 이 말과 함께 지훈이 유나를 포옹한다. 그리고 유나의 귓가에 이야기 한다. “나 너 좋아해. 우리가 두 달 동안 계약연애 했던 것과 상관없이 좋아해. 그리고 사실은 사랑해”

“나도. 지금부터 나도 널 사랑할래”

둘은 카페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참을 안고 있었다.


***


인천공항 근처 네스트 호텔의 어느 룸이다. 지훈과 유나가 들어온다. 지훈은 캐리어와 짐을 방 한곳에 두고는 침대에 대자로 눕는다. “아이고 힘들다” 지훈이 말한다. 유나도 침대에 지훈의 팔을 베개삼아 누우며 지훈과 똑같은 억양과 톤으로 말했다. “아이고 힘들다”

“유나야, 오늘 결혼식 치르느라 정말 고생 많았어” 지훈이 말했다.

“지훈이 너도 고생 많았어”


“나 가끔 생각해보면 되게 신기하게 느껴져. 우리가 계약 연애 시작했던게 올해 늦봄이었잖아. 지금은 12월 말이고. 6개월도 안되는 시간에 결혼까지 하다니. 생각할 때마다 새삼 놀라워” 지훈이 시선은 천장으로 두고 말했다.

“나도 그래. 근데 난 운명이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해. 너와 나는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거야. 신입생 때 처음 만났을 때부터. 넌 그때부터 나를 사랑하게 될 운명이었고. 나는 그로부터 15년 뒤에 너를 사랑하게 될 운명” 유나가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좀 더 낭만적이다” 지훈이 고개를 유나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근데 네 초능력 진짜 발휘가 되긴 됐네?” 유나가 말했다.

“그러게 말이지. 그리고 이제 영원히 봉인된 초능력이 됐지” 지훈이 말했다.

둘은 침대에 누워서 하핫 하고 웃었다.





<너를 결혼시킬 초능력>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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