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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장 May 06. 2019

[단편소설] 너를 결혼시킬 초능력 #4

다 너 결혼시킬라고 하는거야

“야! 갑자기 뭐야. 놀랬…음??” 유나가 억양은 소리지르는 것처럼, 하지만 속삭이는 톤으로 말하는데 또 지훈이 다가와 뽀뽀했다. “쪽” 

“이렇게 사람 많은데 누가보면 어쩌려…”

“쪽”

“이 녀석 참 방탕하구만” 유나는 이 말을 하고 맥주를 한모금 마셨다. 지훈도 시선은 강에 둔 채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이게 다 너 결혼시킬라고 하는거야” 지훈이 말했다.

“한번 더 해봐” 유나가 말했다. “쪽” 지훈은 유나의 말에 따랐다.

“좀 더 길게” 유나의 말에 지훈이 천천히 다가와 천천히 입술을 포갰다. 유나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지훈의 입술이 닿자 안정과 흥분을 함께 느꼈다. 그리고 왜 인지 모르겠지만 뭐든 지훈이와 함께 더 해봐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지훈은 자신의 팔로 유나의 허리를 슬며시 감아 유나의 몸과 자신의 몸을 밀착시켰다. 입술과 혀가 조금 격렬해졌다. 그렇게 몇 초가 흘렀을까. 둘은 슬로우모션처럼 천천히 떨어졌다. 


“너 뽀뽀 좋아하는구나?” 유나가 말했다.

“응. 좋아하지”

“나도 좋아하니까 앞으로 많이 하도록 해”

“응”

둘은 마주보고 배시시 웃었다.


첫 데이트는 둘이 택시를 타고 유나의 집 근처로 돌아와, 지훈이 유나의 집까지 데려다 주는 것으로 끝이 났다. 굿바이 키스와 함께. 둘의 마음은 불과 며칠 전만해도 그냥 친구사이었다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부풀었다.


유나와 지훈은 독특하게 시작한 연애와 제한된 시간으로 영화 같은 연애를 하는 중이라고, 누구에게도 일어나지 않고 자신들에게만 일어난 불꽃 같은 연애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들의 연애는 여느 커플과 다르지 않았다. 마음껏 표현하고 서로를 아꼈다.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않았던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서로를 이해해줬다. 여러 식당과 극장, 공연장에서 시간을 함께 보냈다. 한번 진도가 나간 스킨십은 후퇴가 없었고, 몸의 대화는 뜨겁고 격렬했다. 


서로가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됐고, 상대는 여자주인공 남자주인공이 됐다. 사랑에 한번도 상처받지 않아본 사람들처럼 사랑에 빠져들었다.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왜 쓰라린 기억을 품고도 또 다시 기꺼이 사랑에 빠지는가? 그 때 만이 내가 세상에서 주인공이 된 기분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지훈과 유나의 연애는 시작부터 슬픔을 잉태하고 있었으니, 그것은 두 달의 제한시간이었다. 연애 시작 후 두 달이면 태어나길 잘했다며 스스로 이번 생을 축복하고 싶을 정도로 행복감이 차오르는 시기인데, 이들은 그 때 이별이 기다리고 있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시간이 박제되길 바랄 정도였지만 야속하게도 시간은 흘러갔다. 


하지만 둘은 실제 마음을 이야기하진 못했다. “우리 이제 얼마나 남았지?” “와 시간이 엄청 빠르네” 같은 의도를 쉽게 짐작할 수 없는 대화를 통해 아주 간접적으로 마음을 전했다. 그 둘은 가끔 헷갈리기도 했다. 상대가 지금 두 달 간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건지, 정말로 마음이 있는지. 


***


약속한 두 달에서 일주일이 남게 됐다. 지훈과 유나는 이 만남을 연장하는 것을 얘기해 봐야하는지, 아니면 이미 결말까지 정해두고 시작한 것이니, 결정할건 없고 그냥 두면 되는지 고민되기 시작했다.


“하…..” 지훈이 카페에서 팔꿈치는 테이블에 양손은 이마에 올린 채 고개를 약간 숙이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걸 왜 시작해서, 왜 스스로에게 힘든 상황을 만들어주는건가 나는 도대체가 이해가 안간다” 민찬이가 말했다.

“도저히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어서, 사고처럼 사랑에 빠지게 돼 버리는 마음. 그런거 모르니?”

“몰라”

“낭만없는 놈”


“그래서 어쩔거야?”

“유나도 나를 사랑…아니 좋아하는걸까?”

“너 말만 들어서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

“아…그 눈빛은 사랑에 빠진 여인의 눈빛이 맞는데”

“에이 그런걸 어떻게 알아? 그리고 너네 지금 나름 역할극 하고 있는 거라고 한다면, 유나가 의외로 명연기자일 수도 있잖아”

“으아아…모든 용기가 날아가는 말이구나”


“근데 난 지금이 오히려 용기 낼 타이밍이라고 본다” 민찬이는 그때 와는 다른 입장을 취했다. “그 때는 너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또 장난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오늘 네 말을 듣다보니까 너 지금은 진심같아. 진심은 상대도 알게 돼있어. 유나도 알거야 아마” 민찬이가 이어 말했다.

“아까는 유나가 명연기자라며?”

“아휴. 그거는 농담처럼 하는 말이었고. 딱 두 달 되는 날이 언제야?”

“5일 뒤”


“유나가 얼마나 좋아?”

“많이”

“계속 만나고 싶어?”

“응. 헤어지기 싫어. 유나가 없는 건 상상도 하기 싫어”

“그럼 계속 만나자고 해봐. 이런데 어떻게 헤어지냐. 네 초능력이 진짜로 있다고 치고, 네 초능력 때문에 너는 결국 유나랑 헤어지고 유나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걸 지켜봐야만 하는 운명이라고 할지라도, 지금 눈 앞의 사랑을 네 스스로 차버릴 필요는 없어”

“지금은 초능력이고 뭐고 상관하고 싶지 않아. 단지 유나를 잃고 싶지 않을 뿐이야. 영원히 잃고 싶지 않아” 지훈이 말했다.


***


유나는 지훈과의 이별이 약속된 4일 전 혜원을 만났다. 유나는 말을 많이 하지 않고 혜원이가 앞에 있는데도 잠깐씩 자기만의 생각에 빠지곤 했다.

“지훈이 생각해?” 혜원이 물었다.

“정확히는 지훈이랑 4일뒤면 헤어지는구나 라는 생각”

“많이 아쉽겠다”


“사람 마음이 참 묘하구나 싶어. 이렇게 두 달 만에 마음이 커지고, 좋아하게 되고 말이지. 며칠전에는 얘랑 결혼해서 같이 사는 상상도 해봤어” 유나가 말했다.

“지훈이가 말하는 그 초능력에 의하면 너와의 결혼은 불가능한거 아냐?” 혜원이 농담 섞인 어조로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지훈이한테 더 만나자고 해봐. 독심술사도 아니고, 말을 해야 알지. 그리고 지훈이도 같은 생각일 수도 있잖아” 혜원이 말했다.

“더 만난다고 해도 문제야. 지훈이랑은 평생 연애만 하다 죽을 수도 있는데? 걔 초능력 때문에”

“그 초능력이라는 것 때문에 우리의 생각이 자꾸 어떤 굴레 안에 갇히게 되는 것 같은데, 사실 그거 다 우연일 수도 있잖아”


“그럴 수도 있지만 내가 걔 잘 알잖아. 결혼은 관심도 없고, 결혼도 안 했으면서 자기는 딩크족이라는걸 내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많이 들었잖니” 유나가 말했다. “초능력은 없다고 가정해도, 지훈이 생각이 아직 바뀌지 않았다면 우리가 계속 만난다고 해도 마흔 돌파할 때까지 연애만 하고 있을 수 있다고. 근데 난 그건 싫어. 난 좀 더 멀리 보는 관계, 안정적인 관계를 원해” 유나가 이어 말했다.


“잠깐만, 잠깐만. 궁금한게 있는데, 너 지훈이랑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있긴 있어?”

“응. 아까 내가 상상해봤다고 했잖아. 괜찮겠더라고.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가까이 있던 사람을 왜 여태 못 알아봤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유나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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