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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장 Apr 28. 2019

[단편소설] 너를 결혼시킬 초능력 #2

어떻게 될 지 안다해도 상관없어

“좋아. 그럼 우리의 사귐을 기념하며” 지훈은 이 말을 하면서 미소 띤 표정으로 유나의 눈을 봤다. 그리고 잔을 한번에 비웠다.

유나도 당황스럽지만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지훈을 바라보다가, 지훈이 잔을 내려놓자 천천히 소주잔을 비웠다. 그 모습을 지훈도 지그시 바라봤다.


“이제 갈까?” 지훈이 물었다.

“그래 가자. 벌써 11시가 넘었구나. 너도 내일 출근하지?”

지훈은 출근해야 한다고 말하며 냄새가 베는 것을 막기위해 비닐백에 넣어둔 유나의 옷을 빼 그녀에게 건냈다. 그리고 자신의 옷도 꺼내 입었다. 

계산은 지훈이 했다. “담엔 내가 살게” 유나가 말했다.

“지금 그 말은 굉장히 친구사이처럼 느껴지네?” 지훈이 웃으며 말했다.

“지훈아 맛있게 잘 먹었어”

“오 이건 좀 연인같다”

둘은 가게 밖으로 나왔다.


“걸어갈거지?” 지훈이 물었다.

“응 난 가깝잖아. 여기서 걸어가면 한 5분?”

“데려다 줄게”

“아이구 갑자기 이러지마. 지금 불과 몇시간만에 남친모드로 전환된게 나 아직 적응 안된단 말이야”

“그러니까 해야지. 그래야 빨리 적응되지. 그래야 2개월이 편할거 아냐”

“알았다, 알았어. 가자, 가”


초여름의 밤공기를 마시며 둘은 걸었다. 선선한듯 하기도 하고 시원한듯 하기도 한 밤이었다. 둘은 서로 딱히 무슨 말을 해야할지 생각이 나지 않아서 그냥 걸었다. 가까이 붙어 걸어가니 자연스럽게 손이 스쳤다. 예전에는 손이 스치면 둘은 의식적으로 거리를 살짝 넓혔는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어쨌든 오늘부터 연인이니까. 연인은 손이 스친다고 떨어져서 걷지는 않으니까.


몇 걸음 더 걷고나서 또 손이 스치는데 지훈이 유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 유나의 마음에 뭔가 쿵하고 울림이 왔다. 놀랐지만 싫지 않았다. 사실 계획하고 손을 잡은 것이 아닌 지훈이가 스스로에게 더 놀랐다. 어느 순간 손을 잡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순식간에 지배하는 동시에, 이성보다 감성이 손을 먼저 움직였다. 


“우리 10대도 아니고 손잡는데 며칠 쓸 필요는 없잖아. 시간도 없는데” 지훈은 심장이 쿵쾅거리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 얘기했다.

“너 오늘 이거 다 계획하고 나온거 아냐?” 유나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지훈의 큰 손이 자신의 손을 감싸자 포근하고 안전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진작에 손은 한번 잡아볼 걸 하는 아쉬운 마음마저 들었다.

지훈이 갑자기 깍지를 끼며 손을 잡는 방법을 바꿨다. 서로의 살이 닿는 면적이 넓어지자 둘은 손을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짜릿했다. 마치 오늘 손잡는 것만 기다려온 사람들 마냥. 마음속으로 이 순간을 즐겼다.


어느새 둘은 유나의 집 앞에 도착했다. 

“같이 와줘서 고마워. 어서 들어가” 유나가 말했다.

지훈은 대답대신 유나를 살짝 포옹했다. 그리고 나서 다시 몸을 떨어뜨리고 유나를 보며 말했다. “2개월동안 재미있게 지내자” 그 말을 하고 싱긋 웃었다. 유나는 ‘아 그래 이 놈 웃을 때 천진한 소년 같은 매력이 있었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인다.


“토요일에 만날까?” 지훈이 물었다.

“응. 그래”

“뭐 하고 놀지는 생각해 보고 알려줄게”

“오케이. 나도 생각해볼게” 유나도 뭐 재미있는거 없을까 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제 들어가” 지훈이 말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너 먼저 가”

“그래 그럼 들어갈게” 지훈은 등을 돌려 걸었다. 조금 뒤 뒤돌아보니 유나가 아직 자신을 보고 있다. 그는 손을 흔든다. 유나도 손을 흔든다. 이 두사람은 오늘 밤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조금 헷갈리기도, 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미쳤구나. 미쳤어. 제 정신이 아니네” 민찬이가 지훈의 잔에 맥주를 따라주며 말했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너의 15년 짝사랑이 갑자기 30대 중반에 결실을 맺을 줄은 몰랐다. 야…그리고 너 전 여친들 다 결혼한거 말이야. 내가 놀릴라고 초능력이라고 한건데 그 말을 그때 써먹냐”

민찬이는 지훈과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로 절친한 사이다. 민찬은 퇴근 시간을 한시간 정도 앞두고 급하게 할 말이 있다는 지훈의 연락을 받았다. 그들은 낙원상가 뒤 아구찜집에서 만났다. 그들은 직장이 가까워 종종 종로에서 만나 저녁을 먹곤 했다.


“왜 그때 듣고 보니 초능력 맞는 것 같더만. 계획하고 한 말은 아니었어. 갑자기 하게 된 말이었지. 한번 내뱉고 나니까 그 말이 나를 끌고 가더라고. 그 말에 맞는 행동과 말을 하도록”

“네 짝사랑이 이끈거겠지. 워낙에 숙성된 마음 아니겠냐. 위스키야 뭐야. 숙성을 십년넘게 하고 말하냐. 넌 앞으로 맥주 마시지마. 위스키만 마셔”

“너 어째 반응이 좀 그렇다?” 지훈은 약간 섭섭했다. 잘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건데.


“아니, 지훈아. 나는 네 연애에 기본적으로 항상 응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근데 이번 건은 그냥 좀 걱정이 돼서 그래” 민찬이가 맥주를 한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어떤 점이?”

“너 결혼 생각 아직 별로 없잖아. 그리고 아기도 별로 안 좋아 하잖아. 그런데 유나는 결혼도 하고 싶고, 아기도 좋아하는 사람이야. 너랑은 애초에 다른 사람이라니까” 민찬이가 말했다.


“그래서 두 달만 만나기로 했다니까?”

“야 사람맘이 그렇게 되디? AI도 아니고 입력된 기간이 지나면 갑자기 마음이 삭제되냔 말이야. AI도 두 달 사귀면 없던 사랑도 싹트겠다”

“두 달 예쁘게 사랑하면서 만나면 그걸로 된거 아닌가? 헤어져도 그 때의 행복한 기억이 앞으로의 인생을 힘나게 해줄 수도 있잖아” 지훈이 말했다.

“그건 20대에 하는거야. 30대 중반은 그렇게 하는거 아니야. 이 나이에는 그렇게 시도하면 안돼. 이젠 책임을 질 줄 알아야지. 옛날처럼 만났다가 어라 아니네? 그럼 잘지내. 안녕. 이럴 때가 아니야”


지훈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민찬이의 말을 곱씹으며 그의 말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훈은 이 상황이 후회되진 않았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날부터 지훈은 유나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 때는 유나가 남자친구가 있었고, 지훈도 유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순애보 타입도 아니었다. 한쪽이 연애를 하고 있으면, 다른 한쪽이 안하고 있었고, 그렇게 엇갈리다보니 어느새 15년이 흘렀다. 지훈의 마음속 여러 방 중 한방은 여전히 유나가 차지한 채로. 


그러다가 15년만에 둘 다 연애를 하지 않고 있는 시기가 찾아왔다. 지훈은 너무 멀리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다. 지금에 집중하고 싶다. 유나와 연인으로 하는 데이트를 상상해본 적이 많았다. 그것이 현실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지훈에게는 의미가 있었다.


유나도 같은 날 저녁, 혜원이를 만나 지난 밤에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헐. 대박” 혜원이는 유나가 한마디 할 때마다 이 말을 했다. 놀란 표정이었지만 표정에는 웃음이 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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