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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장 Dec 03. 2018

[단편소설] 신은 나를 버렸다

당신도 생각해보라. 내 삶이 의미있어 보이는가?

저 경멸의 눈빛은 아무리 마주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화살 수십개가 날아와 가슴에 박히는 기분이다. 오늘도 지하철역 이동통로 한쪽에 버려진 쓰레기처럼 구겨져서 앉아있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경멸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던 청년과 눈을 마주쳤다. 그의 눈빛은 금세 당황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그는 시선을 돌렸다. 당황스러웠겠지. 저 인간은 왜 저러고 사나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을 텐데. 


내가 비록 노숙인으로 살고 있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사랑받고 존중받고 싶은 마음이 나의 내면 어딘가에 있다. 그래서인지 경멸의 눈빛은 여전히 나에게 상처를 남긴다. 


평소에는 대부분 힘없이 고개를 늘어뜨리고 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기력이 없어서 이기도 하지만, 고개를 들기에 부끄럽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나의 더러운 모습을 보는 것이 부끄럽다. 그리고 만에 하나 혹시라도 내가 알던 사람들이 나를 알아볼까봐 두렵다. 당신도 생각해보라. 당당히 고개를 들고 있던 노숙자를 본적이 있는가. 그들도 아마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경멸의 눈빛을 받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오랫동안 생각했고 준비했다. 마지막으로 필요했던 것을 오늘 낮에 손에 넣었다. 지체할 것 없이 오늘 밤 죽기로 결심했다. 태어남은 정하지 못했지만 죽는 날은 내가 선택한다. 더 이상 죽음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나의 존재는 이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살아 있다고 좋아할 사람도, 죽었다고 슬퍼할 사람도 없다. 


나조차도 내 삶의 의미를 모르겠다. 각자의 삶에는 의미가 있다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당신도 생각해보라. 내 삶이 의미있어 보이는가? 굳이 의미를 찾아보자면 지나는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아 나는 저렇게 안돼서 다행이야’라는 생각이 들게 하며 위안을 주는 정도? 신은 나를 버렸다. 잊었거나.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게 아쉽다. 지금 이런 생각이 텔레파시처럼 누군가에게 닿으면 좋으련만. 외롭다.


노숙인이 장래희망인 사람이 없는 것처럼 나도 노숙인이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니다. 지금 내 꼴을 보면 믿기 힘들겠지만 나도 한 때는 사장님 소리 들으며 일했다. 근데 인생이란게 참 묘하기도 하지. 궁지에 몰려서 어쩔 수 없는 선택들을 하다보니 어느 날 길로 나앉게 됐다. ‘그래, 일단 며칠만 밖에서 지내자’라고 생각했는데 그 후로 이렇게 10년을 살았다. 


일이 잘 될 때 형님 동생하며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은 나의 사정이 안 좋아지자 냉랭해졌다. 옛날에 사이가 돈독했던 사람들은 코빼기도 안보이던 놈이 갑자기 연락해서 도와달라고 하니 황당해하는 눈치였다. 따지고 보면 다 내 잘못이다. 곁에 있던 소중한 사람들을 몰라봤고, 내 주변에 떨어진 콩고물 주워먹으려고 알짱거리던 하이에나 같은 놈들에게 곁을 내줬다. 어쩌겠나. 나의 사람보는 눈이 그것 밖에 되지 않았다. 이제 와서 되돌릴 수도 없고.


사람들은 나 같은 노숙인을 보면서 적어도 한번쯤은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사는 거지? 뭘 먹고 살지? 저러다 죽는거 아니야? 라고 말이다. 인간은 매우 연약한 존재지만 또 의외로 생명이 끈질기다. 생명을 유지하는데 최소한의 조건 정도만 맞춰주면, 너무 힘들지만 신기하게도 또 이게 살아진다. 그리고 이내 노숙인의 생활도 익숙해진다. 그렇게 익숙하게 힘든 날들이 이어진다.


나 같은 노숙인을 먹여 살리는데 당신이 낸 세금이 쓰이는 걸 안다면 당신의 기분이 혹시 나쁠까. 미안하지만 당신이 낸 세금은 나에게도 일부 쓰였다. 가끔 공무원들이 와서 생필품도 주고, 먹을 것도 준다. 지난번 겨울에는 침낭을 준 적도 있다. 엿 같은 일도 꾹꾹 참으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더우나 추우나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의 일부를 세금으로 냈을텐데 미안하다. 당신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다. 덕분에 힘들었던 날들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고맙다. 


봉사단체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노숙인 쉼터에 왜 가지 않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겠다. 노숙인 쉼터는 길에서 생활하는 것 보다 몸은 훨씬 편하게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규율과 규칙이 너무 많아서 지내기가 힘들다. 군대에서 제일 힘든게 훈련보다 자유의 박탈인 것과 비슷하다. 


나도 정말 너무 힘들 때에는 그런 단체나 시설을 이용한 적이 있는데 길거리의 자유가 익숙한 나에게는 그 안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규율을 지키며 단체생활을 한다는 것이 힘들어서 오래 있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아침에 세상 모든 것이 다 지겹다는 표정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나 퇴근하고 나서 또 지옥철을 타러 가는 모습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당신들도 참 애 많이 쓴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꿈도 회사의 규율에 맞춰 부속처럼 일하는 것은 아니었겠지. 말도 안되는 지시에 따르는게 꿈이 아니었겠지. 부당한 대우를 참는 것이 평생의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겠지. 윗사람이나 갑의 비위를 맞추는게 기쁠리 없겠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시키는 일, 해야만 하는 일을 매일 수십년을 해야 하는 것도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면 당신의 인생도 쉽지는 않겠다고 생각한다. 


한 인간으로 매일 자기 밥벌이를 하는 것보다 성스러운 일이 있을까.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내는 것,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훌륭하다. 당신 너무 실망하거나 슬퍼하지 마라. 당신은 오늘도 잘 하고 있다. 정말 대단하다. 난 이미 틀렸지만.


노숙하면서 먹는 것을 해결하는 것은 의외로 쉽다. 노숙인들이 먹는 모습을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하는 이유는 보통 사람들이 먹는 시간에 먹지 않고, 하루 세끼를 전부 먹지도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까 말했듯이 지자체에서 도와주기도 한다. 구걸을 한 돈으로 편의점에서 사먹기도 한다. 주변에서 노숙하는 사람들과 돈을 모아 소주와 안주를 사서 시간에 관계없이 술판을 벌일 때도 있다. 


식당을 이용할 때는 이런 방법을 쓴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오후 3시에서 4시사이에 식당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일하시는 분께 “밥 좀 주세요” 라고 말한다. 그러면 거의 대부분은 식재료를 담는 투명한 비닐이나 손님들이 포장해서 가져가는 플라스틱 용기에 밥과 김치, 반찬을 잔뜩 담아서 준다. 그렇게 받은 밥과 반찬을 가지고 나와서 벤치가 있는 곳이나 지하철 지하통로나 공원에 가서 먹는다.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감사했어요. 이제 나 때문에 불편할 일은 없을 겁니다.


가장 힘든 것은 계절이다. 한여름과 한겨울은 정말 견디기 힘들 정도로 괴롭다. 나는 옷가지를 따로 보관할 수 있는 곳이 쓰레기통에서 주운 가방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는 옷을 거의 다 입고 있는다. 그래서 여름엔 더워 미치고 겨울엔 추워 미친다. 


더 힘든 계절은 겨울이다. 겨울에는 지하철 역사 지하상가에서 일하는 분들이 안 입는 겨울 점퍼를 주기도 하고, 공무원들이 내복과 침낭을 주기도 하지만 계속 추운 날씨에 밖에 있으니까 몸에 한기가 떠나질 않는다. 추위가 뼈까지 얼려버린 기분이다. 항상 오들오들 떨고 있다. 난방이 잘 되는 실내가 너무 그립다. 겨울이 되면 따뜻한 온돌방에 누워서 한숨 자는 것이 소원이 된다. 노숙하기 전에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랐다. 따뜻한 나라의 노숙인들은 아마 나보다는 조금 더 편할 것이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겨울이 없으니까.


“아저씨, 아파요?”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고개를 드니 5살 정도 된 여자아이가 있다. 내가 투명인간이 됐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없지만 이렇게 가끔 어린 아이들의 눈에는 발견된다. 나를 사람 대 사람으로 봐주는 아이들의 눈에만.

“응. 괜찮아요. 안 아파요” 아이가 놀라지 않게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소희야 가자. 길에 앉아있는 아저씨들 한테는 말거는거 아니라고 했지” 아이의 엄마가 2미터 정도 앞에서 아이를 부른다.


아이가 나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나도 손을 흔들었다. 아이의 엄마는 10미터 즈음 더 걸어가더니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내 아이의 손을 닦았다. 엄마가 아이에게 뭐라고 얘기하고 있다. 기존에 했던 인사교육을 또 한번 하는 듯하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가사가 반복되는 노래가 있었던가.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들은 나를 사랑할 수 있냐고.




시간이 몇시쯤 됐나. 저 쪽 편의점에 걸린 시계를 보니 저녁 9시가 조금 넘었다. 이제 슬슬 움직여볼 때다. 일단 지상으로 올라가서 박카스를 사먹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 몇 달간의 사전조사를 통해 결정한 빌딩으로 이동할 것이다. 굳이 박카스를 먹어야 되는 거냐고? 그냥 얼마전부터 계속 먹고 싶었다. 가끔 구걸을 해서 박카스 살 정도의 돈은 있다. 여태까지는 혹시나 쓸데가 있을까 싶어서 남겨둔 돈이 있었으나 이제 몇시간 지나면 이 돈은 나에게 무용한 것이니 먹고 싶은걸 먹는데 쓰기로 한다.


거의 3시간 만에 자리에서 일어나 지하철 통로에서 지상으로 나가는 계단을 오른다. 지하철 출입구를 나와 길에 있는 컨테이너 노점으로 걸어간다. 노점 음료 냉장고에 박카스가 있는지 본다. 주인이 가게 안에서 나를 보고 소리지른다.

“어이 남의 장사 망치지 말고 저리 가!”


나는 사 먹을 것이므로 냉장고를 열어 박카스를 꺼낸다. 이 모습을 보자 주인이 가게에서 뛰어 나온다.

“야 너 임마. 내가 가라고 얘기했어 안했어?” 가게 주인은 먼지떨이개로 나를 쿡쿡 찌르며 소리친다. 이 사람도 나를 손으로 직접 만질 자신은 없나보다.

“이거 사먹을 거에요”

“야야 됐고. 됐으니까 빨리 꺼져. 너 때문에 손님 안오잖아! 꺼지라고!” 주인은 먼지떨이개를 머리위로 들어올리며 때릴 것 같은 포즈를 취한다.


나는 돈을 꺼내려고 주머니에 넣었던 오른손을 빼고, 왼손에는 박카스를 들고 돌아선다. 이 사람이 내가 지금 죽으러 가는 길인 걸 알았다면 나에게 이렇게 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음료를 권하며 나를 말렸을지도 모른다. 가게 주인을 미워하지는 않기로 한다. 몇시간 안 남은 인생에서 누굴 미워해서 뭐하겠는가.


박카스 뚜껑을 열고 한모금씩 음미하면서 을지로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래. 이런 맛이었지. 오랫동안 먹고 싶었던걸 먹으니까 좋다. 누가 내 상황을 안다면 지금 내가 굉장히 슬플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잘못 생각했다. 사실 마음이 가볍다. 나는 삶에 지쳤다. 오늘은 지침을 종료하는 날이다. 다만 피떡이 된 내 몸을 치워야 할 사람들에게 무척 미안하다.


내가 인생을 마감하기로 한 건물은 을지로에 있는 제이엠 타워다. 선택한 기준은 경비에 빈틈이 있을 것, 사무공간으로 쓰이는 건물이라서 밤이 되면 사람도 잘 없고, 건물 주위에도 사람이 많이 돌아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제이엠 타워는 내가 생각한 기준에 잘 부합하는 건물이다. 이곳으로 마음을 정한 후에는 직장인들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 즈음 이 건물 1층에 있는 테라스 있는 식당과 카페를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리고 오늘 낮에 카페 테라스 테이블에 누군가가 두고 간 회사 출입증을 주웠다. 그 출입증은 지금 내 바지 주머니에 있다. 아직 출입카드가 유효했으면 좋겠다.



사람이 많은 종로와 을지로를 걷는데도 나는 전혀 불편함이 없다. 내가 길을 걸으면 길이 열린다. 사람들이 알아서 피해간다. 노숙인으로 살면서 이거 하나는 편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시에 슬프다. 아무도 가까이 오지 않는 그 외로움을 아는가. 아무도 찾지 않는 무인도가 된 것 같다.


제이엠 타워는 통유리로 된 건물이라서 가까이 가면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오늘도 로비의 리셉션 데스크에는 두명의 직원이 야간 근무를 서고 있다. 두명 다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보고 있는 듯하다. 스마트폰을 보고있나 보다. 나는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고 회전문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로 이어지는 출입구의 가까운 곳에 몸을 숨긴다. 그들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뭔가에 집중하고 있다. 


나는 빠르고 자연스러운 걸음으로 출입구로 걸어가 카드키를 찍었다. 다행히 열린다. 통과해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누구도 마주치지 않길 바라고 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가 꼭대기 층을 누른다. 엘리베이터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출입구에 카드키를 찍는다. 계단을 올라 옥상에 도착했다. 


고층 건물의 옥상에서 바라본 서울의 야경은 아름답다. 서울에서 이렇게 탁 트인 기분을 느껴볼 수 있다니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행운이다. 건물의 가장자리 난간으로 가서 주변의 불켜진 빌딩과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두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당신들에겐 오늘 얼마나 다양한 일들이 있었을까. 얼마나 많은 기쁨과 슬픔들이 있었을까. 


건물의 네 면을 각각 가보며 사람들의 통행이 없는 곳으로 낙하할 곳을 정했다. 난간을 넘어 건물의 가장자리에 선다. 발가락이 있는 부분은 건물 바깥으로 나갈 정도로 좁다. 두 팔을 뒤로 해서 난간을 잡는다. 몸은 앞으로 기울여 무게 중심을 옮긴다.


고단한 인생이여 안녕. 난 이제 해방이다. 

눈을 감고 난간을 잡고 있는 손에 서서히 힘을 푼다.


“멈춰!”

멀리서 소리가 들린다. 나한테 하는 소리인가. 

드르륵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멈춰!!” 아까보다 크고 선명하게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난간을 꽉 잡는다. 뒤를 돌아보니 한 청년이 허리를 굽히고 무릎 위에 손을 얹고 헐떡거리며 나를 보고 있다.


“아저씨 잘못이 아니에요! 죽지 마요”

멀리서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자동문이 열린다. 사람들이 옥상으로 쏟아져 나온다. 청년, 아가씨, 아저씨, 아주머니, 학생, 복장도 나이도 성별도 다른 사람들이 옥상에 차기 시작한다.


“괜찮아요. 다시 할 수 있어요!”

“우리가 도와줄게요!”

“많이 힘들었죠? 이제 아저씨 마음 알아요!” 

“도와주고 싶어요. 운이 없었을 뿐이잖아요”

“당신도 소중한 사람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한마디씩 소리친다.


“여길 어떻게 알고……?” 내가 그들에게 물었다.

“아저씨 이야기가 들렸어요. 마음으로 들렸어요” 야근하다가 뛰어온 듯한 포멀한 옷차림을 한 여자가 말했다.


“신은 당신은 버렸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당신을 버리지 않을 거에요. 어서 내려오세요” 한 남자가 다가와 난간을 잡고 있는 내 손에 자신의 손을 올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의 눈빛과 표정이 따뜻하다.


나는 속절없이 눈물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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