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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장 May 04. 2019

[단편소설] 너를 결혼시킬 초능력 #3

지금을 즐겨, 아가씨

“우리 유나 아주 기특해. 내가 최근에 너한테 들었던 이야기 중에 제일 마음에 든다. 시터이모님께 제발 두시간만 더 아기 봐달라고 애원한 보람이 있어” 

혜원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혜원이는 유나의 첫 직장 동기로 나이도 같고 말도 잘 통해서, 지금은 유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됐다.


“미안. 내가 너무 급작스럽게 얘기했지. 아직도 나는 너가 아기가 있다는게 잘 실감이 안나서, 시터이모님한테도 부탁해야 하는걸 생각도 못했네” 유나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야. 이런 기쁜 소식은 되도록 빨리 듣는게 좋지”

“나 잘 한 거 맞나?”

“엄청 잘했지. 백번 잘했지. 아주 정답이야”

“하…그런가? 나는 어젯밤에는 이것 참 재미있는 제안이구만 이렇게 생각했거든. 근데 오늘 아침에 출근하다보니까 조금 후회되더라고” 유나가 턱 부분을 매만지며 말했다.


“후회될게 뭐 있어? 난 지훈이 걔 예전부터 괜찮게 봤었어. 그 정도면 외모 괜찮지, 성격 괜찮지, 직장 괜찮지. 빠질거 없는데, 사귀어 준다고 자기가 스스로 나서면 그런 기회는 덥석 물어야지. 아무렴. 나는 심지어 너랑 지훈이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적도 있었다니까”

“근데 두 달 만나고 나서 다시 친구로 돌아가기로 했잖아. 진짜인지 거짓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훈이의 초능력이 발휘돼서 내가 결혼할 능력을 얻게 된 다음에 말이지” 유나가 말했다.


“응. 그렇지. 근데?”

“그 때가 되면 친구도 아닌 사이가 될까봐 좀 무서워. 지훈이랑 친구로 잘 지내왔는데, 친구를 잃게 될 것 같단 말이야” 유나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그야말로 사서 걱정하고 있구나”

“사람이면 이 정도 걱정은 되지않아?”


“생각해봐 유나야. 남자여자 친구사이가 영원할 것 같아? 몇 년 지나면 어찌될지 몰라요. 1년동안 연말에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카톡 하나 보내는 사이가 될 수도 있다니까. 그러면서 조만간 보자고 하면서 대화를 마무리하고. 그 다음 연락은 또 내년 연말이 되는 그런 그냥 아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지금은 너네 둘이 미혼이라서 남자사람친구네 여자사람친구네 뭐네 하고 있는건데, 예를 들어 지훈이가 결혼했다 쳐. 지금처럼 너랑 둘이 만날 수 있을까? 내가 와이프면 아주 둘 다 가만 안 둘 것 같은데?” 혜원이가 흥분 섞인 어조로 말했다.

“흠. 틀린 말은 아니네”


“아기까지 태어나면 밖에서 약속잡는건 진짜로 손에 꼽게 된다고. 내가 이건 기혼자로서 현실 조언 해주는거야. 날 봐라. 그리고 내 남편을 봐. 우리 부부가 어디 예전 남자사람친구 여자사람친구 만나디? 연락할 틈도 없어. 지금 애가 울고 있는데 한가하게 무슨 남자사람친구 찾고 있겠어” 혜원이 말했다.

“너 참 설득력 있네”


“그리고 너도 생각해봐. 너가 남편이 있어. 그런데 남편한테 솔직하게 옛날에 15년 알던 남자사람친구랑 둘이 만나서 술한잔 하고 오겠다고 말할 수 있어? 못 할걸. 쉽지 않을걸.”

“흠”

“그리고 두 달 뒤에 헤어지고 그냥 친구로도 못지내게 됐다고 쳐. 그럼 넌 지훈이의 초능력인지 뭔지 믿을 순 없지만 여하튼, 바로 다음에 만나게 될 남자랑 결혼하는 능력을 얻을 거 아니야? 넌 전혀 손해볼게 없어요. 어디로 가든 다 득밖에 없어” 이렇게 말하는 혜원이는 연애 컨설턴트라도 되는 사람 같았다.


“어쨌든 너는 이 상황 찬성이라는 거네?”

“아주 대찬성이지. 지금을 즐겨, 아가씨. 오지 않은 상황을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너 말 듣고나니까 괜한 걱정했나 싶기도 하고?” 유나는 마음이 조금 놓인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결혼하고 애 낳고 하면서 생각했던게 있어. 결혼 전에 따지고 재면서 더 많은 사람 만나지 못한 거. 그 사람들과 재미있는 순간들을 만들지 못한 거. 그럴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거. 이게 아깝더라고”

“오케이. 좋아. 지훈이랑 두 달 동안 재미있게 지내야겠어”

“최선을 다해서 재미있게 보내! 데이트도 많이 하고! 달달한 말도 많이 하고! 키스도 많이 하고! 섹스도 많이 하고!


유나는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 지훈이에 대해 생각했다. 얘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제안을 한건지. 지훈이는 연인으로 어떤 사람일지. 어떤 말을 하는 연인일지. 키스는 어떻게 할지. 섹스는 어떻게 할지.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지훈이가 보낸 카톡이었다.


‘나 민찬이 만나고 집에 가는 중이야. 퇴근했지?’

‘응. 나는 혜원이 만나고 집에 들어가는 중. 민찬이랑 무슨 얘기했어?’

‘너랑 두 달 사귀기로 한 얘기 ㅋㅋ’

‘읔 ㅋㅋㅋㅋ 민찬이는 뭐래?’

‘삼십대 중반에 책임감을 갖고 만나야지 그게 뭐냐고 설교를 좀 하긴 했는데 ㅋㅋ 어쨌든 재미있게 만나보래 ㅋㅋㅋ’ 지훈은 약간의 거짓을 섞어 답했다.

‘오 민찬이 어른인데?ㅋㅋㅋㅋ’

‘그러게 갑자기 어른 코스프레를 하더라고 ㅋㅋㅋ 혜원이는 뭐래?’

‘혜원이는 완전 대찬성 ㅋㅋㅋ 이 얘기 듣기만을 고대한 사람마냥 ㅋㅋㅋ’

‘역시 배혜원 마음에 들어! ㅎㅎㅎㅎ’


***


그로부터 이틀 후 첫번째 데이트날인 토요일이 왔다. 지훈이가 제안한 데이트 코스는 고속터미널에 있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서래마을에 가서 저녁을 먹고, 반포한강공원에가서 강변 야경을 보면서 맥주를 마시는 것이었다.

“오늘 데이트 코스 좋다” 유나가 반포대교 분수쇼 야경이 보이는 무대형 계단에 앉으면서 말했다.


“첫 데이트 코스는 뭐가 좋을까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 너가 좋다고 했던 곳을 가는게 좋겠더라고. 그게 아무래도 실패가 없을 것 같아서”

“오 내 남자친구 기억력 좋네”

“은근히 좋지. 이래 봬도 다 기억하고 있다고” 지훈이 캔맥주를 따서 건네며 말했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고속터미널은 도착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엉키면서 복잡하지만 거기에서 주는 에너지가 있어서 좋다고 했고. 서래마을은 적당히 여유로우면서도 세련된 느낌이 좋다고 했고. 반포대교는 뭘 저렇게 다리에다가 요란스럽게 치장을 해놨을까 하면서도 그 묘한 촌스러움이 오히려 계속 바라보고 있게 한다고” 지훈은 말하면서 자신의 캔맥주도 땄다.


둘은 말없이 맥주를 홀짝이며 강과 다리를 바라봤다. 말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았다. 여백으로 하는 대화 같았다.

“너는 강을 볼 때 어떤 점이 좋은거야?” 지훈은 문득 언젠가 유나가 강을 보고 있는게 좋다고 했던 것이 생각나서 물었다.

“음…낮에 보는 한강은 시원시원해서 좋아. 이렇게 강폭이 큰 강이 대도시를 가로지르는게 박력있어 보이거든. 그리고 밤에 이렇게 강을 보고 있으면 센치멘탈 해지는 내가 좋아. 나는 어디서와서 어디로 가는건가 생각도 해보고. 몇백년전 이곳에 살던 사람들도 이렇게 강을 보고…음??!”

“쪽”

지훈이 강을 보며 얘기하고 있는 유나에게 갑자기 다가와 입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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