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신을 긍정할 수 있다면

자기가치감 수반성 이론

우울감이나 무기력이 찾아오면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또 예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다. 그동안 참 노력했는데. 그래서 나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자존감 바닥이던 시절보다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돌아간 것만 같다. 그럴 땐 참 견디기 힘들다.


‘지금까지 내가 뭘 한 거지?’

‘좋아지는 건 거북이 속도로 좋아졌으면서 나빠지는 건 한 순간이야?’

‘결국 나는 자존감 낮은 사람이었던 건가?’


진짜 싫다. 이렇게 사는 나도. 자존감 바닥인 기분도. 또 다시 좌절감이 든다.


‘내가 지금까지 헛짓을 한 건가.’


제일 무섭고 짜증나는 마음은 사실 ‘내가 무너져서 못 일어날까봐’이다. 더 나빠질까봐, 내가 다시 회복하지 못할까봐, 내가 느끼기에 자존감이 높은 상태로 돌아가지 못할까봐 두려운 마음이다. 이런 모습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고, 나도 보기가 싫다. 자존감 낮은 나, 자존감 제로인 나, 자존감 바닥인 나는 삶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한 공포다


그런데 말이다. 나라는 사람은 하나의 상태로 고정될 수 없다. ‘자존감 높은 나’로 딱 고정시키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가질 수 있다. 자존감이 높아야 바람직하니까. 그건 어린 시절, ‘외향적이어야 해!’와 같은 절대명제와 똑같은 의미다. 그런데 사실 나라는 복합적인 인간은 하나의 정해진 상태로만 살아갈 수 없다. 환경이 그렇게 두질 않는다.


자존감인 높은 상태인 나만 존재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자존감 높은 나라는 이상적인 모습만 허용하고, 자존감이 낮은 상태의 나는 부정하고 미워한다면, 수많은 나를 어떻게 처리한단 말인가. 그런 나는 없어져야하는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 외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자존감이 늘 높아 보이는 누군가도 자존감이 내려갈 때가 있다. 그 모습을 내 눈으로 보지 못한 것뿐이지, 그 사람도 살면서 순간순간 자존감이 내려가는 때는 찾아오며, 그럴만한 상황에서 나의 자존감은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다. 자존감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며 상태이기 때문에. 자존감이 낮아서(가짜 원인) 내가 못난 것이 아니라, 자존감은 원래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결과 값이기 때문에(진짜 원인)”.


자존감이 내려갈만한 상황이 되면(진짜 원인) 당연히 일시적으로 자존감은 내려간다(당연한 결과).


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


많은 사람들이 자존감은 고정 값이 아닐까 착각한다. 그래서 자존감이 충분히 있는 상황은 잊어버리고 자존감이 내려간 상태만을 보기 때문에 나의 존재 자체가 흔들린다. 나는 역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인 것 같아서. 현재 나의 ‘상태(state)'를 살펴볼만한 힘만 있으면 된다. ‘다 내려놓기’ ‘다 수용하기‘ 이런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상태를 바라볼 수 있는 힘을 키우는 데 집중하면 좋겠다.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자존감이 올라가지 않은 것 같은 나를 탓할 필요가 전혀 없다. 애초에 자존감이 높은 사람 vs. 자존감이 낮은 사람을 구분해서 나와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나를 자존감 높음 vs. 자존감 낮음 이라는 이분법적인 틀에 가두는 부작용이 나를 힘들게 만든다.




자존감을 설명하는 이론 중에 가장 피부에 와닿는다고 느끼는 심리학 이론은 ‘자기가치감 수반성 이론(CSW:contingencies of self-worth, Crocker& Wolfe, 2001)’이다. 이 이론에서는 개인이 자기가치감을 두는 영역에 대한 선택권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사람들마다 자기가치감을 두는 영역이나 조건은 다르기 때문에,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 또한, 자기가치감이 수반된 영역은 전체적인 자존감에도 각자의 고유한 영향을 미친다. 자기가치감을 구성하는 7요인을 제시하였다.


<자기가치감 수반성 이론의 7요인>

1) 외모
2) 경쟁
3) 학업(일)적 자신감
4) 신의 사랑
5) 타인의 승인
6) 도덕성/미덕
7) 가족의 지지


특정 영역에 수반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그 영역에서의 성공여부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되고, 그 영역에서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자존감이 쉽게 변하여 부적응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외모에 자기가치감과 타인의 승인을 80%이상 두는 사람은, 외모가 별로인 것 같은 피드백을 들을 때 존재 전체가 흔들리는 고통을 경험한다.


특정 조건에 따라 자존감을 결정짓는다면, 우월감과 열등감의 시소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나로 살 수밖에 없다. 나랑 견줄만한 상대를 골라 대학 레벨, 외모 레벨, 직장 레벨 등을 비교한다. 나는 왜 이 모양이지(낮은 자존감 상태) vs. 나는 잘났어(높은 자존감 상태) 사이에서 널뛰기하는 동안 내 인생은 흘러간다.


자존감이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자존감은 건강한가? 의 문제로 보면 좋겠다. 내가 보고 싶은 측면만 바라보고 허용하는 편파적인 심판자가 아니라, 내가 가진 모든 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식할 수 있는 그런 객관적인 사람이 되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으며, 애초에 완벽함이란 허구이니까. 그 허구를 쫓기 위해, 허구를 만들어내기 위해 나를 감출 필요는 없기 때문에.




‘나는 자존감이 낮은 것 같아요’ 이런 말이 습관적으로 나온다면 그 순간 잠시 멈췄으면 좋겠다. 자존감이 몇 미터인가? 가 중요한 게 아니라, 현재 나의 자존감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궁금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궁극적으로는 어느 특정영역에 자기가치감을 두고 있지 않더라도, 특정 조건이 없더라도 내가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더 편하다.


자존감이 낮을만한 상황이 되면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정말 일이 엉망진창이 되었는데 “나는 자존감이 높아서 괜찮아” 이것도 큰일이다. 자존감이 낮을만한 상황인데도 괜찮다고 착각하는 것은 현실이탈이며 정신승리다.


자존감이 낮아질 만한 상황이 되면 자존감이 낮아지고, 자존감이 높아질 만한 상황이 되면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당연한 반응이라는 걸 기억하자. ‘아, 나는 자존감이 낮아서 이 모양이야’ 이라고 낙담할 것이 아니라, 자존감을 위협하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대로 있는데 자존감만 높아지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설령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행복회로를 돌리는 것이다. 행복회로는 의미도 없을뿐더러, 나로 하여금 있는 그대로의 팩트를 보지 못하도록 가리는 부작용이 크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행복감이 너무 결핍되어 긍정적인 측면을 바라볼 줄 아는 태도는 매우 건강한 일이지만, 매사에 늘 행복회로를 돌리는 건 위험하다.



글: Chloe Lee

그림: Pixabay, Pezibear

https://brunch.co.kr/@itselfcompany



keyword
이전 07화왜 난 아직도 확신이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