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에서 비행기 티켓을 사준 남성
아빠는 어릴 때부터 내게 “요행(행복을 바람, 뜻밖에 얻는 행운)을 바라지 마라!”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그런 이야기를 지겹게 들으니 ‘로또에 당첨되는 꿈’이나 드라마 처럼 ‘재벌 2세가 나를 사랑하게 되는 일’을 상상하는 일 조차 죄스럽게 느껴졌었다. 요행을 바라는 솔직한 욕망을 꾹꾹 눌러 버릴수 밖에 없었다.
미국에 오기로 결심하기 몇 년 전 우연히 라디오에서 한 배우가 추천한 책 <29살 생일에 죽기로 결심하다>를 읽게 되었다. 책 속 여자 주인공은 본인의 인생에 대해 별 볼일 없다 생각하며 자신의 삶에 신물을 느낀다. 그런 그녀에게 꿈이 생겼는데 그 꿈은 몇 년 후 다가올 자신의 29번째 생일에 ‘라스베이거스’에서 죽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열심히 돈을 모으기 시작한다. 목표를 위해 마음을 비우고 열심히 살게 되자 평생의 숙원 사업이던 체중감량 또한 자연스레 되어지고 결국 자신감을 찾게 된다.
돈을 모으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데 그렇게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세상에 대한 시야 역시 자연스레 넓어지게 된다. 그녀는 그런 시간을 통해 불만족스럽던 본인의 삶에 점점 만족을 느끼게 된다.
그녀의 29번째 생일, 그녀는 드디어 ‘라스베이거스’를 가게 되고, 자살이란 목표 앞에서 생각지 못한 일들을 겪으며 제 2의 인생이 시작되게 된다.
‘말도 안 돼.’
그녀는 요행을 만난것 같았다. 설마 그런 일이 생길까 싶었다. 하지만 ‘내게도 그런 요행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뭐 그렇게 잘 살았다고 그런 운수 좋은 일이 내게 생기겠어? 한심하군. 요행을 바라지 마 신고은!’ 고개를 휘저으며 ‘요행을 바라지 말자!’는 구호를 외쳐보았다. 하지만 책을 통해 용기와 환상을 품게 되었다. 사실 나는 이 비밀스런 마음을 품고 미국으로 향했다.
‘혹시 ... 나도 ... 모르지?’
꿈에 그리던 미국에서의 삶! 그 꿈은 이뤘을지 몰라도 늘 돈이 문제였다.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고 또 궁리해봐도 결국 ‘유튜브’밖에 없었다. ‘유튜브’로 내 삶의 민낯을 공개하는건 부끄러웠지만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방송’을 통해 갈고 닦은 기술을 유튜브에 풀어 나가는 것이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합법적인 식업으로 최선의 일이었다.
관종 유전자를 가진 나는 혼자서 가는 곳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시카고에서의 삶을 틈틈이 찍어 유튜브에 올렸다. 그다지 세련된 모습도 아니고 자랑할 미모도 아닌 것 같아 욕먹을까 겁도 났었다.
안타깝게도 내 유튜브 채널은 유튜브 본사가 정한 기준에 미달하여 수입을 창출 할 순 없었다. 어떤 측면에서는 시간낭비이기도 하였지만 어느새 나의 채널은 내게 ‘대나무숲’ 같은 존재가 되었다. 채널 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니 나의 민낯의 삶이 힘든 사람에겐 ‘당신만 힘든 게 아니다’는 위로를 주기도 하였고 미국에서의 삶이 궁금한 사람에게는 정보를 주고 있었다.
유튜브 영상이 차곡차곡 쌓이니 댓글도 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여러 개의 댓글 가운데 유독 내 시선을 사로잡는 댓글이 있었다.
‘신고은 씨 개콘 나오실 때부터 팬이었습니다. 저도 지금 일리노이에 살고 있는데 제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글자 하나하나에서 ‘긴/급/함’이 오롯이 느껴졌다. 그분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분은 시카고에서 꽤 오래 산 분이셨다. 심지어 그는 내가 다니던 어학원에 대해 누구보다 정확한 정보를 갖고 계셨고 일리노이의 한 대학교 입학처에서 일을 하시는 분이셨는데 어학생인 내게 비자에 관련된 어디서 들을 수 없는 너무도 중요한 정보들을 알려 주셨다.
그는 내게 일단 그 어학원을 나오라고 하셨다. 나는 다행히 곧 하와이로 전학을 가고자 준비를 끝낸 상황이라 말씀 드렸더니 너무나 탁월한 선택을 하였다며 이어 ‘건강한 어학원을 고를 때 꼭 체크해야 할 사항들’을 알려주시며 내가 가게 될 하와이 어학원이 안전한 곳인지 체크해 주셨다. 이미 한 번 어학원 문제로 피가 말랐던 적이 있었기에 그분의 존재가 너무도 든든했다.
그분은 하와이로 떠나기 전에 한 번 만나자고 하셨다. 어려운 상황에서 너무도 큰 도움을 주셨기에 나 역시 직접 찾아뵙고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다가오는 주말 내가 살던 집에서 몇 정거장 떨어진 곳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다.
약속 당일, 우리는 어느 대학교 앞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역 앞에 백인 대학생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학생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저 멀리 동양인 남성 한 분이 보였다.
“신고은 씨! 반가워요. 제가 바로 000입니다.”
미국에서 오래 산 사람 특유의 짧은 머리스타일에 안경을 쓴 그는 머리 스타일 때문인지 나이를 쉽게 가늠할 수 없었다. “신고은 씨!”를 부르는 목소리가 굉장히 컸으며 눈빛이 특별히 다정한 편이 아니었던 게 인상적이었다. 낯선 사람을 처음 만나는 자리라 어색하고 낯설어 살짝 겁도 났는데 오히려 다정하지 않은 그분의 눈빛이 안심을 주었다.
“여기 한국 퓨전 음식점이 유명한데 거기 가요.”
이메일을 주고 받을때 받았던 따뜻함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아 같은 분이 맞나 의심이들 정도였다.
그분이 데려간 곳은 퓨전 비빔밥을 파는 곳이었다. 그는 여러 가지 메뉴를 시켜주며 “이것도 맛있도 저것도 맛있어요. 이거 먹느거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세요.” 라며 나를 배려해 주셨다. 하지만 난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영상을 찍는 것이 무례한 거 같아 카메라를 꺼낼수 없었다. 아마도 둘 다 아닌척 하였지만 잔득 어색하고 긴장했던것 같다.
“제가 힘들 때 고은 씨 개그 보고 참 많이 웃었는데 티브이에서 보이는 모습이랑 실제 뵙는 모습이랑 많이 다르네요.”
그분 또한 유튜브나 방송에서 보였던 내 모습과 코 앞의 내 모습이 다르자 이상하셨던 모양이다.
어색하던 공기가 밥을 나눠 먹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하다보니 슬슬 따스하게 데워졌다. 그분은 나처럼 어학생 신분으로 시카고에 오셔서 지금은 시민권자가 되셨다고 하셨다. 내가 다니던 시카고 어학원에 다닌 적이 있었기에 어학원의 안 좋은 점을 누구보다 잘 알아 빨리 그만두라고 말해주고 싶었다며 그 말을 해주고자 유튜브 아이디까지 만들어 댓글을 남긴 것이라고 하였다. 내 사정을 이해한다는 분을 뵙자 슬슬 긴장이 풀리다 못해 갑자기 왈칵 눈물을 터뜨려버렸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울음이 터져버리다니! 게다가 나를 웃기는 개그맨으로 생각하는 팬 앞에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개그맨은 절대로 슬픈 모습을 들키면 안 된다고 생각하던 나였는데 이게 뭔 일이람... 몹시 당황했다.
“고은씨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그래도 하와이로 가게 되어 다행이에요. 제가 팬으로서 고은씨 응원하고 싶어서 선물을 준비했어요.”
그는 본인이 근무하는 대학교 로고가 박힌 티셔츠 여러 장과 존경하는 미국 코미디언의 DVD 몇 장, 감명 깊게 읽은 책 그리고 편지를 건네주었다.
“이런 선물 안 주셔도 괜찮아요! 만나주신 것만으로 도 감사한데요...”
“제 마음이니까 받아주세요. 그리고 그 편지 봉투는 조심하세요. 고은 씨 하와이에서의 새 출발을 축하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짐이 많을 거 같아서 뭐가 좋을지 고민하다가 현금으로 준비했어요.”
“네?????”
“새 출발 하시는 하와이로 가는 비행기 티켓은 제가 꼭 사드리고 싶었거든요.”
“아니에요! 절대 받을 수 없어요!”
깜짝 놀랐다. 하와이 가는 비행기 티켓이라고? 티켓이 편도로 600불이 넘는데!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닌지 내 귀를 의심했다.
“안돼요!!! 그렇게 큰 선물은 제가 받을 수 없어요. 너무 부담이 돼요.”
“아니요. 제발 받아주세요. 꼭 드리고 싶어요.”
혼란스러웠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그렇게 큰돈을 받아도 되는 건지 나로서는 용납할 수 없었다. 소개팅을 할 때도 처음 보는 남자에게 비싼 밥을 공짜로 얻어먹는것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 차만 마시거나 똑같이 돈을 내던 나인데 어떻게 이런 선물을 받는담? 절대로 받을 수 없었다. 절대로 받을수 없다고 손사레를 치는 나와 절대로 받아야 한다며 봉투를 건내는 그분. 우리는 서로 옥신각신 하며 결국 언성을 높였다. 식당은 점점 우리의 목소리로 채워져 가고 있었다. 식당안에 외국인들이 힐끔힐끔 우리를 쳐다보았다. 나 만큼이나 고집이 굉장히 강하신 분이셨다. 도저히 이 설전이 끝나지 않을것 같아 일단 봉투를 받았다.
집에 오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사실 돈이 궁한것도 사실이었고 팬으로서 소원이니 받아 달라고 하였지만 이런 행운을 누려도 되는 것인지! 머리가 복잡했다.
‘요행을 바라지 마라’
‘맞아. 이것은 요행이야!’
일단 큰돈이니 잃어버리지 않게 집에 가는 길에 동네 ATM 기계에 들려 입금을 하였다.
며칠 동안 마음이 불편해서 제대로 잠이 오질 않았다. 누워서 그날의 만남을 복기하였다. 나의 팬이라는 그 분은 나를 만나기 위하여 세 시간을 운전해서 왔다고 했다. 팬으로서 좋아하는 스타에게 꼭 선물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도 육백불이라니....
‘안 되겠어. 다시 만나야겠어!’
나는 그분께 다시 연락을 드려 하와이로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만나주시길 부탁드렸다. 시카고는 자신이 사는 곳에서 먼 거리 떨어진 곳이라 쉽게 답을 못하는 그분께 꼭 만나야만 한다며 강압적으로 말씀드리자 그제서야 약속을 잡아 주셨다. 나는 돈을 돌려 드릴 계획을 세웠다. 분명히 안 받으실게 뻔하니 선물로 영어 성경책과 함께 편지를 써서 편지 봉투 안에 육백 불을 넣어 돌려 드릴 계획을 세웠다.
약속 당일이 왔다. 그런데!!!! 마침 몸살감기에 걸린 것이다. 아침부터 너무 아파 약을 먹었더니 하루종일 병 걸린 병아리 마냥 잠이 쏟아졌다. 마음 같아선 약속을 취소하고 싶었지만 세 시간이나 걸려 오시는 분께 자초지종을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몸이 아프니 하루가 계획대로 진행되질 않았다. 나의 계획은 아침에 일어나 은행에 들려 받은 돈을 전부 출금하여 편지에 넣고 봉투를 동봉하는 것이었는데 약을 먹고 비몽사몽 하다 보니 어느새 은행 문이 닫는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어쩔수 없이 겨우 기운을 내 ATM 기계로 갔다. 카드를 넣고 600불 인출 버튼을 눌렀다.
아뿔싸!
거래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화면에 뜨는 것이 아니겠는가!!!!!!! 몇 번을 시도해도 결과는 같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눈 앞에 화면조정 시간이 펼쳐졌다.
맞다...
내가 출금 한도를 500불로 해뒀던것이다. 혹시라도 카드를 잃어버려서 돈을 인출당하거나 혹여나 내가 눈이 돌아 돈을 많이 쓸까봐 한도를 낮춰 둔 것이 이렇게 후회될 일로 돌아올 줄이야!
500불이라도 찾자....
500불 인출 버튼을 누르자 백불 다섯장이 아닌 50불과 20불 짜리 지폐를 기계가 뱉어 냈다. 이렇게 모양 빠지는 500불을 차곡차곡 모아 봉투안에 채워 넣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죄송합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하면서 멋지게 돈을 돌려 드리는 게 나의 계획이었는데 백불이 비었다.
일단 늦지 않게 아픈 몸을 질질 끌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분이 먼저 도착해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더운 여름 세 시간이나 걸려 운전을 하고 오셔서 그런지 그분 얼굴에 지친 기색이 가득하였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600불을 넣은 편지봉투를 건내 드리고 집으로 오면 되는 것인데 백불이 비는 이유를 설명해야 할 것 같았다.
‘여기서 또 언성을 높이며 옥신각신 하겠지... 어떻게 말씀드려야하나...’
나는 준비한 선물과 함께 편지 봉투를 건네며 입을 열었다.
“사실 지난번에 주신 돈은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받을 수가 없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그걸 돌려드리고 싶어서 만나자고 하였습니다.”
역시나 그분의 표정이 무척 안 좋아지셨다.
“마음은 감사한데 저는 그렇게 큰돈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꼭 돌려 드리고 싶었어요.”
여기까지는 멋졌다.
“그런데 .... 문제가 좀 있어요... 돈을 주신 날 큰돈이라 잃어버릴까 봐 은행에 넣었거든요. 근데 오늘 출금하려 보니까 출금 한도가 오백 불이라 백 불이 비어요. 그래서 오백 불만 가져왔는데요... 제가 백 불은 다음에 드려도 될까요? 백 불 챙기려는 게 아니라....”
구구절절 내 사정을 말씀드리고 있자니 빚진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 그분을 보니 그분 얼굴엔 서운한 표정이 가득하였다.
“고은 씨. 지난번에도 말씀 드렸다시피 고은씨 코미디가 제가 힘들 때 제게 정말 큰 위로를 줬어요. 고은 씨가 티브이에 안 나와서 궁금해하고 있던 찰나에 우연히 유튜브에서 고은 씨를 봤어요. 그런데 제가 미국에서 처음 겪었던 힘든 일을 겪는 거 같아서 마음이 쓰였어요. 저도 홀로 외국에서 살면서 힘든 시간이 많았는데 그때 저를 위로해주던 친구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마음껏 못 도와줬던 눈에 밟히던 친구들도 있었고요. 그래서 그들이 생각나서 더 고은 씨에게 힘이 되고 싶었던 거예요. 그래서 편지에도 그런 제 마음을 증거로 적어 둔 거였고요. 제발 제 마음을 받아 주세요.”
그는 제발 자신의 마음을 알아 달라며 우는 사자와 같이 부탁을 하였다. 장학금이라고 생각하고 제발 받아달라는 그의 간곡한 부탁에 못이겨 결국 봉투 안에 넣은 오백 불을 다시 받아 오게 되었다.
진짜 작별인사를 나누고 집에 돌아오는 요행을 바라지 말라던 아빠의 목소리가 돌비 서라운드로 귓가에 맴돌았다. 내가 과연 이런 행운을 거머쥘만한 사람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간절히 원하던 행운이었지만 막상 이런 행운을 맞딱들이니 그동안 살아온 삶이 부끄러웠고 ‘마녀의 요행 테스트’에 넘어간 것은 아닐지 겁도 났다. 결국 나는 그분이 사주신 티켓으로 하와이로 갈 수 있었다. 그 후 하와이에서도 그 분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힘든 시간이 올때마다 그분의 고마운 응원을 생각하며 버틸수 있었다. 어떤 모습일지 모르지만 꼭! 자랑스런 사람으로 보답하겠노라 다짐했었다.
시간이 지나 그 일을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은 마녀의 꾐이 아니었다. 혈혈단신으로 미국에서 살다 보니 생각지도 못하고 꿈도 못 꿨던 힘든 일들이 닥쳐왔다. 그런데 그런 고비고비 마다 감사한 손길들이 마법처럼 나타나줬다. 처음에는 그런 손길 앞에서 ‘나한테 이런 행운이 올리가 없어!’라며 높은 벽을 세워 거절하기도 하였고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스스로를 고립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도와주던 손길이 있었기에 내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그저 감사한 손길이 올 때 그들의 진심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그 응원을 받아들여 열심히 살아 더 큰 사람이 되어 크게 보답을 했으면 되는 것을 왜 그리 무 자르듯 자르며 거절을 하였을까 후회가 된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요행을 바라지 말자’라는 배후에 미래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낯선 환경이 겁도 나 잔뜩 위축이 되어 도움의 손길이 부담 스러웠던거 같다. 그 은혜를 갚지 못할 거란 생각에 도망을 친것이다.
막막한 타지에서 떠돌이 생활을 3년 정도 하며 이런저런 일을 겪다보니 ‘요행처럼 다가오는 도움의 손길’을 이해 할 수 있게 됐다. 가끔 과거의 나와 조우하는 기분을 느끼게 만드는 사람을 만날 때가 온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나 역시 어떻게든 돕고 싶어 지는 맘이 드는데 그것이 바로 내가 만난 귀인들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저 도움의 손길 앞에서 도움을 감사히 받고 감사함을 절대 잊지 않고 더 열심히, 강하게 살아 남아 훗날 은혜를 갚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그런것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요행이라면 요행이 왔을때 기쁘게 누리고 그 요행을 배로 갚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지금은 안타깝게 연락이 끊긴 첫 만남에서 비행기 티켓을 사주셨던 ‘육백불의 사나이 K 오라버니’ 그분 덕분에 나는 매 순간을 더욱 열심히 살 수 있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내 시카고 인생에서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귀인! 앞으로도 베풀어 주셨던 그 은혜 잊지 않고 멋지게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