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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tistgon Oct 31. 2020

어학원에서 애국하기

potluck party

미국 내 어학원에서는 학기 중 원생들 위한 몇 가지 특별 행사를 유치한다.

그런 행사를 Activity day 나 Filed trip이라 부르는데 이런 특별 행사들은 원생들이 수업을 지루해할 때 즈음에 원생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어주기 위해 준비된다. 날이 좋을 때는 유명 박물관으로 견학을 가기도 하고, 여름이 가까울 때엔 근처 공원을 찾아가 체육대회를 하기도 하며, 10월 마지막 주쯤에는 '핼러윈 데이'를 기념한 호박 꾸미기, 코스튬 선발대회 행사 등을 한다. 거의 이런 행사는 미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활동들로 이루어진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행사는 '포트락 파티'였다. '포트락 파티'란 각국에서 모인 어학원 친구들이 본인들 나라의 전통 음식을 준비해 학급 친구들에게 소개를 하며 함께 나눠 먹는 파티다. 엉뚱한 상상을 해보면 포트락 파티를 가장 좋아할 사람은 어학원 선생님일 거 같다. 선생님이 전부 끌고 가야 하는 기존의 수업과는 다르게 이 '포트락 파티'는 주체가 학생들이 되어 먹을 것과 나눌 이야기를 전부 준비해 오니 그동안 미국 유치원생과 대화하는 것보다 더 답답했을 수도 있는 영어 모지랭이 밥줄들과의 수업에 (웃기자고 한 소리다) 지쳐있었을 쯔음 '포트락 파티'는 오아시스가 아니었을까? 학생들이 준비해 온 각국의 음식들 맛보며, 애국심에 바짝 서버린 학생들 목의 핏줄을 보며 그들의 이야기에 적당한 호응을 해주면 되는 그날의 수업은 학생들 가르치느라 쏟은 그들의 열정이 작게나마 보상받을 수 있는 날이 될 거 같았다. (포트락 파티 당일 우리 반 선생님은 학생들끼리 즐겁고 편안한 시간을 갖으라는 명목 하에 아예 교실 밖을 나가 버렸었다.)


미국에 사는 동안 나는 사정상 어학원을 몇 군데 옮겨 다니게 됐는데 다녔던 어학원마다 어김없이 포트락 파티를 꼭 해왔다. 처음 포트락 파티에서 난 열과 성을 다하여 파티를 준비했었다. 그러나 거듭되는 포트락 파티의 최후는 '달랑 감자칩 한 봉지' 혹은 '결석'이었다.


시카고에서의 나의 첫 포트락 파티는 시부모님 처음 집에 모시는 며느리 마냥 몇 주 전부터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메뉴들을 머릿속에 썼다 지웠다 하며 준비하였다.


'한국의 대표 음식은 불고기지... 하지만 우리 반에 종교적인 신념으로 고기를 못 먹는 친구들이 있으니 안 되겠군... 떡볶이는 어떻지? 아 떡볶이는 떡이 쉽게 굳고 식으면 맛이 없어... 그렇다면 식어도 먹을만하고 종교적 신념을 지켜줄 수 있는 음식은 뭐가 있을까?'


정답은 바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도 한 입 먹고 반했다던 비빔밥이었다!


'비빔밥... 비빔밥만 가져가기엔 뭔가 좀 허전하지 않나?'


사이드 메뉴는 동그란 하얀 부침 위에 푸르른 파가 어우러져 아름답고 풍성한 향기를 머금은 파전이었다!


'아.. 파전 말고도 참 맛있는 게 많은데...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메뉴는 뭐지?'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하는 '호로록 면치기 천재' 잡채였다!!!


'중동에서 온 친구가 지난번에 만두를 먹고 싶어 했는데... 거기에 고기가 있어서 못 먹었지...'


그래! 속이 꽉 찬 야채만두로 따끔한 한국의 맛을 보여주자!!!!


'밥만 먹고 끝내야 할까?'


아니지.... 한국의 자랑 꿀호떡과 장금이도 울고 갈 수정과도 함께 가자!!!!!


무슨 애국심이 그리도 철철 들끓어 올랐던지 버스를 타고 시카고 내에 가장 큰 한인마트로 향했다. 마트는 애매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어서 거의 자차 아니면 택시를 이용해서 가는 곳인데 주머니 사정이 썩 넉넉지 못한 나는 버스를 타고 몇 시간에 걸려 마트를 향했다.



준비할 음식 재료들을 아낌없이 사서 양 어깨에 그 무거운 짐들을 짊어지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 꽤나 흥겨웠던 기억이 난다. 비록 룸메이트와 함께 사는 집인지라 눈치 보며 요리를 해야 했으며 예기치 못한 큰 지출이 있었지만 한국을 알릴 수 있다는 생각에 잔뜩 신이 났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뭔가 2% 부족한 것 같았다. 이유인즉슨, 당시 한류 열풍으로 인하여 우리 반에는 한국 드라마 '내 여자 친구는 구미호'를 최애 드라마로 꼽았던 친구가 있었는데, 내가 그 드라마에 나왔다는 사실을 그 친구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내가 한국에서 코미디언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아는 친구들도 있었기에 더 특별한 뭔가를 하고 싶어 진 것이다. ‘다 된 포트락 파티에 2% 부족함을 채워 줄 그것은 바로?’


“그래! 한복!”


한복이 있었다! 내가 시카고를 올 때 다른 짐을 다 빼고서라도 꼭 챙겼던 것이 바로 한복이었다. 언젠가 쓸모 있을 거 같아 챙겼던 것인데, 한복을 입고 친구들에게 한식을 나눠 준다면? 다들 역시! 하며 엄지를 척할 것만 같았다. 거기에 덩달아 내가 입장할 때 '대장금 OST'까지 나와 준다면? 너무나 완벽할 것 같았다!


포트락 파티 당일이 되었다. 내 앞으로 브라질 언니, 태국 친구들, 과테말라 친구 등등 본인들이 준비해 온 음식과 함께 본인들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난 내 차례가 되자 주섬주섬 한복 보따리를 들고나가 환복을 하였다. 미리 부탁해 둔 친구에게 내가 입장하면 바로 장금이 노래를 틀어달라고 하였다.


'오나라 오나라~'

노랫소리에 맞춰 등장한 나는 친구들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디스 이즈 코리안 스타일 보우.”


친구들은 눈빛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봤다. 그 기세를 몰아 내가 입은 옷을 보여주며


“디스 이즈 코리아 트레디셔널 드레스.”


이곳저곳에서 환호 소리가 나왔다. 환호받고!! 바로 내가 준비한 음식을 소개했다.



친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심지어 다른 반 학생들까지 '장금이' 노래를 듣고 달려와 한국의 맛을 음미하였다.

모두들 엄지를 척! 하였는데 그 모습을 보자 애국자가 된 기분이 들어 뿌듯했다. '은반 위의 피겨 요정 김연아'가 있다면 '어학원 기초반 위엔 밥의 요정 신고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는 식사를 마치자 평소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던 친구들이 다가와 한복이 너무 예쁘다며 한번 입어보고 싶다고 하였다. 난 한복을 벗어 친구들에게 입혀주고는 재밌는 사진들을 찍기 시작했다.


'한류 열풍이 이토록 멋진 것이구나...'


한국에 살면서 몰랐던 한류 열풍의 대단함을 넓은 땅 미국에서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문득 내가 몸 담고 있었던 문화계에 대한 큰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으며 내가 잠시 문화 곁에 살았다는 것에 대한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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