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 재택근무를 시작하다

by 빈땅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퇴사를 마음에 두고 잡서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운 좋게 한 국제단체의 파트타임 계약직 컨설턴트 자리를 구했다. 재택근무 형태의 일이라 반농반일이란 콘셉트에 딱 어울리는 자리였다.


그런데 막상 재택근무를 시작해 보니 오히려 전 보다 바빠지고 여유가 없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우선 직장에 다닐 때는, 말도 안 되는 통근거리였지만 오며 가며 보내는 3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을 오롯이 나 혼자만을 위해 보낼 수 있었다. 콩나무 시루 같은 지하철 안에서 책을 보든, 라디오를 듣든, 아니면 잠을 자든. 업무 중 답답할 때는 친한 동료와 옥상에 올라가 커피 한잔하며 수다를 떨기도 하고, 가끔은 점심도 늘어지게 먹으며 소소한 일탈을 즐기기도 했다. 물론 정말 바쁘면 그럴 새도 없지만;


그런데 집에서는 전혀 그럴 수가 없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를 준비시켜 학교에 보내고, 이어 1시간 정도 산책이나 운동을 하는데... 그럼 벌써 시계는 10시를 가리킨다. 아이가 하교하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을 생각하면 일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처음에는 뭔가 불안하기까지 했다. 이제껏 일해 본 분야도 아니라, 모든 게 새롭고 읽고 배워야 할 것들이 끊이질 않았다. 거기다 집에 있다 보니 아내가 요구하는 것도 하나하나 많아졌다. 아이 식사 준비부터 청소에 자질구레한 심부름까지... 퇴근한 아내를 맞닥뜨리는 일이 하루 중 가장 무서운 일이 되어 버렸다;


시간대가 다른 외국인 동료와의 온라인 미팅을 제외하면 일은 주로 낮에 해야 하는데, 그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보통은 10시부터 오후 4시 30분(점심시간 포함). 물론 몇 시간을 일해야 한다고 정해진 것은 없지만, 아무래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는 일정 시간 이상을 일해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압박했던 것 같다.


직장생활 할 때야 연차를 내고 쉬어도 유급 휴가니 월급에 대한 걱정은 없었는데, 이제는 일을 한 만큼만 타임시트(Time Sheet)에 기록하고 돈을 받게 되니 쉬는 시간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집에서 일하면 마냥 쉴 수 있고 편할 것 같았는데 예상치 못한 난관이었다.

keyword
이전 07화자연을 꿈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