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광사설 春光乍洩

가난한 너를 위하여 [2부 4월 4일]

by 성냥팔이 소년


두 번째 연재를 시작하기로 했다. 기획 미팅을 끝내고 나서는 길, 담당자가 나를 붙잡는다. 하늘빛 편지 한 통을 내민다.


「작가님 앞으로 도착했어요. 팬레터 같은데, 손 편지는 오랜만에 보네요.」


받는 이만 있고, 보내는 사람은 적혀있지 않았다. 정갈한 글씨체. 누구일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봉투를 뜯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연락처와 이메일 주소를 알지 못해, 출판사로 보냅니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펜을 들었습니다.


저는 서울에 사는 서른 살의 취준생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까지 교사 임용 고시를 준비했습니다. 친구들은 저마다 자리를 잡고 일을 하는데, 홀로 도서관 구석에 앉아 공부를 한지도 6년이 다 되어가네요.


다른 일을 해볼까 여러 번 고민했지만, 그동안 공부한 시간들이 아까워 포기하지 못하고 한 해만 더- 한 해만 더- 끌다가, 올해도 결국 2차 시험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교사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부모님께 이 소식을 고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암담한 현실에서 달아나고만 싶었습니다.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져 있던 저는 나쁜 마음을 먹었습니다. 달리는 차를 향해 뛰어들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차도 곁을 걸으며 빠른 속력으로 운전하는 차들을 물색했습니다. 몸을 던지려다 멈추기를 수차례. 언제나처럼 죽는 것조차 단번에 결정하지 못하는 제가 너무나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닦아도 닦아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제멋대로 흘렀습니다.


그런 제 얼굴을 감춰주려 했을까요.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비를 피해 달려간 곳은 우습게도 차도가 아니었습니다. 근처에 있던 작은 서점이었습니다. 왜 하필 그곳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공간에 들어서자 저를 맞이해준 것은 잔잔한 피아노 연주였습니다. 요동치던 마음이 다소 진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서가에 기대거나, 바닥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어 서점을 둘러보았습니다.


제목에 끌려 신간 코너 상단에 놓인 책 한 권을 집어 들었습니다. 책장을 넘기다, 우연히 펼친 한 페이지의 문장들이 눈길을 넘어 마음을 붙잡았습니다. 읽고 또 읽고 몇 번을 읽었는지. 순식간에 감정이 복받쳐 올라 소리 내어 울어버렸습니다. 우발적인 저의 행동에 모두가 웅성거렸으나,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사장님이 다가와 휴지를 건네시더니, “선물할게요. 그 책이 주인을 만난 것 같네요.”


값을 치르기 위해 서둘러 주머니를 뒤졌지만, 휴대전화도 지갑도 없이 나왔다는 것을 자각했습니다.


사장님은 인자한 웃음과 함께, “고맙다는 말은 작가님에게 해주세요.”


선물 받은 책을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시험 결과를 묻는 부모님께 주저 없이 낙방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어 교사가 아닌 다른 꿈을 찾아보겠노라 말씀드렸습니다. 아쉬워하시는 부모님께 기꺼운 응원을 받지는 못했지만, 괜찮았습니다.


지난 6년의 시간은 불합격으로 인해 허무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단단한 내실을 쌓은 것이다, 그만큼 나는 성장했다고 스스로를 믿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하루아침에 관점을 전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놀라웠습니다.


예상하셨겠지만, 그 책이 바로 작가님의 신간입니다. 수록된 에세이 중에서 <다시>라는 글이 죽으려는 저를 붙잡았습니다. 덕분에 아직 살아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작가님의 작품들을 기대하겠습니다.」




감정의 배설일 뿐이라 여겼던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살아갈 힘을 주었다니. 그 소식에 나 또한 계속해 글을 쓸 용기를 얻는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빚을 지고 산다. 빛이 되어준다. 그것이 잠시 비추고 사라질 봄날의 여린 햇살이라 할지라도, 한 생명을 버티게 하는 기적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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