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너를 위하여 [2부 4월 4일]
수업을 마치고 휴대전화를 확인하니, 아내로부터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가 남겨있다. 마지막 메시지에는,
지금 열무 만나러 가요. 일 끝나면 병원으로 오세요.
황급히 아내가 다니던 여성병원으로 달려갔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분만실에 들어간 뒤였다. 홀로 진통을 견디며 짐을 싸고 병원까지 왔을 아내 생각에 돌덩이 같은 미안함이 가슴을 짓눌렀다. 절실히 필요한 순간, 언제나 곁을 비우는 남편이라니. 여전히 자격 미달이다.
대기실에서 아이가 태어나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울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분만실 전광판을 바라보았지만, 아내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몹시 두려웠다. 또다시 너를 잃을 수는 없어.
‘아가야, 어서 나오렴. 엄마는 작고 약한 사람이라 더 아플 거야. 어서 나오렴, 제발.’
나의 간청이 아이에게 들렸을까. 얼마 후 아내가 들어간 분만실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나왔다.
「윤정이 산모님 보호자분-」
「네, 여기요!」
벌떡 일어나 손을 들었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간호사의 표정이 밝다. 불안했던 마음이 일순 누그러진다.
「건강한 공주님 순산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산모는 괜찮은가요?」
「네, 진통 시간에 비해, 양호한 상태입니다. 곧 입원실로 이동하실 예정이니, 올라가 기다려주세요. 아기는 처치 끝나는 대로 면회 시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병실 문을 열자, 땀에 젖은 아내가 누워있었다. 죽어가는 나를 본 네 심정이 이러했을까. 깨물다 터져버린 피맺힌 입술을 발견한 순간, 칼로 저미는 듯 심장이 욱신거린다. 다가가 아내의 손을 잡았다. 얼굴에 붙은 머리칼도 쓸어주었다.
「힘들었지. 고생 많았어.」
「다른 말이 듣고 싶은데…」
「??」
성탄 선물을 기대하는 꼬마처럼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아내의 눈망울. 아마도,
「사랑해, 정이야. 고맙다.」
아내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든다. 나를 향해 두 팔을 크게 벌린다. 아직 산고의 열기가 식지 않은 숭고한 육체를 품안 가득 끌어안았다.
타지에 사는 아내의 식구들이 하나 둘 병실을 찾았다. 함께 모여 아이를 보러 갔다. 면회를 신청하니, 유리 벽 너머로 강보에 싸인 아이가 얼굴을 내민다. 아직 자신의 이름을 갖지 못해 엄마의 이름표를 달고 있는 갓난이. 인형보다도 작은 얼굴에 눈, 코, 입이 모두 달려있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했다.
꼼지락거리는 녀석의 모습을 계속해 눈에 담았다. 개념이었던 아이의 존재가 점점 실체로 다가온다. 진정 내가 한 생명의 아버지가 되었구나, 깨닫고 나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살고 싶어졌다. 책임감 때문에 살아야겠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살고 싶어졌다. 믿기지가 않았다.
아내는 아이가 나를 닮았다며 연신 기뻐한다. 어디가 비슷한지 도통 알 수 없었지만 아내가 행복해하니 그저 좋았다. 나의 어깨에 기대 묻는다.
「열무 이름은 어떻게 하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단어.
「‘별’이 어때.」
「별? 반짝반짝 빛나는 별?」
「응. 그 별님.」
「다른 의미가 있어?」
「별은 몰락마저 아름답잖아. 떨어지는 그 모습을 보며 모두가 소원을 빌 만큼. 딸아이가 언제나 자신을 긍정했으면 좋겠어. 누구처럼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한별. 예쁘다.」
「요새는 엄마 성도 따른다던데, 당신 성으로 하는 건 어때?」
「아니. 별이는 꼭 한별이어야 해.」
「왜?」
「내 아이에게 든든한 아빠가 되어줘.」
때마침 별이가 하품을 한다. 나에게 말을 거는 듯 앙증맞은 입술로 옹알댄다. 그래, 그래. 너를 위해 무엇이든 할게. 너를 대신해 죽을 수도 있겠지만, 끝까지 네 곁을 지킬게.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삶, 사람, 사랑. 삶, 사람, 사랑…
버려진 존재였기에, 사람도 사랑도 가물었던 삶이었다. 세상천지 불쌍한 인생이 어찌 나 하나일까, 그 처지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제때 사랑받지 못해 고장 난 마음으로는 사람답게 살 수 없었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한낱 死랑의 존재로서.
얼었다 녹아버린 생물은 썩기 마련이라며, 지레 포기했던 나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다. 하여 사랑해야 한다. 받는 법도 주는 법도 서툴기 그지없지만. 때문에 사랑해야 한다. 살아있으므로. 숨이 다하여 눈물이 마르는 그날까지 사랑해야 한다.
홀로 태어나 홀로 죽어야 하는 외로운 인생들이, 외롭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 햇살 아래서 증발을 버티는 물방울처럼, 처절한 반짝임. 그 별들이 모여 우리는 찬란한 은하를 이룬다.
**Émile Ajar 《자기 앞의 생》 中
image_©Nini Kvaratskhe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