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학은 곧 미학사, 미학사는 곧 미학
미학은 곧 미학사, 미학사는 곧 미학
- [미학강의], 이중톈, 2006.
"헤겔의 말처럼 이전 시대의 철학의 성과 위에 새로운 시대의 철학이 발전하는 형태를 띠었기 때문에 어떤 철학도 소멸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각각의 철학의 관점은 모두 합리적이었고 어떤 역사 시기나 역사단계에서는 필연적으로 출현해야 했던 것들이었습니다... 철학과 미학은 사상이자 사상의 사상... 철학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철학적 관점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한 권의 미학사 역시 반드시 미학이어야 합니다. 미학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의 미학적 관점을 이야기하는 것이니까요."
- [미학강의], <1-4. 미학은 곧 미학사, 미학사는 곧 미학>, 이중톈, 2006.
1.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최고의 시체 부위들을 엄선하여 인간을 닮은 피조물을 만들었던 그 밤에, 이 창조자는 무책임하게 고향으로 내빼고 말았다.
자신이 최고로 만들 줄 알았던 것이 생각과 다르게 무서웠던 거다.
이 '괴물'은 그러나 의외로 신체적 능력 뿐만 아니라 지능적으로도 매우 초인적인 존재였는데, 창조자 빅터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창조물을 싫어했다. 그리하여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1818)은 비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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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가 자신의 창조물을 본능적으로 싫어했던 이유는 못생겨서였다.
소설을 읽으며 나는 갑자기 '미학(美學)'을 읽고 싶어졌다.
그래서 생각난 것이 중국의 역사가 이중톈(易中天)이었고, 그의 책 [미학강의]를 바로 주문했다.
2.
"미학의 기본 문제는 바로 '미(美)란 무엇인가'입니다...
... 철학과 예술은 모두 문제를 제기하려고 하며 위대한 철학가와 위대한 예술가는 모두 위대한 문제제기자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모두 인생에 관한 것들이며 최종적인 결론은 없습니다. 최종적인 결론이 없기 때문에 철학과 예술은 영원히 시대착오적일 수 없고 영원히 생명력을 가지게 됩니다... 더군다나 미학은 원래 철학의 검으로 예술의 의혹을 풉니다. 그러니 어떻게 미학이 미학이기 이전에 철학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 [미학강의], <2-1. 플라톤, 객관미학의 기초를 세우다>, 이중톈, 2006.
2006년 [삼국지강의(品三国)]로 유명해진 중국의 대중역사가 이중톈은 같은해 [미학강의(講美學)]를 통해 미학과 미학사를 설명하고 있다. [삼국지강의]의 원제는 '품삼국'으로서 '삼국지를 품평하다'로 번역할 수 있겠는데, [미학강의] 또한 원제가 '강미학'으로 '미학을 강의하다' 정도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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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 [이중톈 미학강의]의 정확한 원제목은 '파문이입:이중톈강미학(破門而入:易中天講美學)'인데, 저자는 짧은 <서문>에서 '비판적으로 문을 부순다'는 태도로 미학사를 통해 미학의 문제제기를 하고 '미학의 문제와 역사'를 새롭게 건설했다는 의미에서 '문을 부수고 들어간다(破門而入)'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철학이든 미학이든 '문제제기'의 역할이지 '결론도출'의 역할을 부여받지 못했기에 이중톈이 부순 문 너머에도 '미란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결론은 없다.
"미학(美學)은 '문제의 문제', '기준의 기준'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미학을 연구하는 것은 예술과 심미 중에서 '근본성'과 '보편성'을 띤 문제들입니다."
- [미학강의], <1-1. 입장권을 제공하지 않는 미학>, 이중톈, 2006.
우선, 미학(美學)의 근본 질문은 '미(美)란 무엇인가?'이다. 미학은 특정 예술을 대상으로 하는 기술적 영역이 아니라 전체 예술을 아우르는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미(美)' 자체가 대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 또는 우주란 무엇인가?'를 대상으로 하는 철학과 같이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문제제기로부터 시작한다.
내가 보기에 미학은 철학의 영역에 속하는 하위범주다. 보편적인 '미' 자체를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것처럼, 미학의 역사 속에서 '미'의 양상도 지속적으로 변해왔다.
"... 세계는 절대이념의 자아실현 과정이 아니라 인류가 자신의 '실천'을 통해서 자아를 창조하고 실현하는 과정입니다. '실천'은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적 세계관의 핵심입니다... 마르크스는 새로운 유물론의 발판은 인간사회 혹은 사회화된 인간이고, 인간의 본질은 결코 개인의 고유한 추상물이 아니며 그 현실성 위에서 모든 사회관계의 총화라고 선포했습니다... 예술철학만 이야기하고 일반예술학은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실재'적인 이야기를 계속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 [미학강의], <5-5. 헤겔 미학을 되돌아보다>, 이중톈, 2006.
미학의 결론은 없다고 했지만, 이중톈이 [미학강의]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대략의 결론은 이렇다.
보편성을 지향하는 '미(美)'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인류 예술의 역사를 통해 변화해 왔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 학파는 수학과 같은 미의 '규칙성'을 주장하면서 미학사의 문을 열었고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은 '이데아론'과 같이 미의 '객관성'을 규명하려 했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을 넘어 이데아로서의 본질은 물론 속세의 형상도 중시했기에 플라톤보다 '모방론'의 현실성을 한층 강조했지만 역시 고대 미학은 미의 '객관성'의 단계였다.
미의 '객관성' 규명은 한계에 다다랐는데, 이중톈에 의하면 여기서 미학은 양갈래길에 서게 된다. 즉, 미가 인간의 '주관성'의 길로 갈 것인지, 아니면 신의 길로 갈 것인지 둘 중 하나였다. 중세는 신의 길이었고, 칸트로부터 시작한 근대 인문학적 미학은 미의 '주관성'으로서 '심미 철학'이 된 것이다.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서 미학의 '생일'은 1750년 독일 철학자 알렉산더 바움가르텐이 '에스테티카'라는 명칭으로 미학을 독립시켰을 때라고 하는데, 인간사에서 '진선미'를 놓고 보면 '진'은 '진위'를 구분하는 '논리학', '선'은 '선악'을 따지는 '윤리학', '미'는 '미추'를 가르는 '미학'의 구분이 완성된 때였다. 그러나 진정한 미학의 '아버지'는 미의 '주관성'으로서 '심미 철학'을 발전시킨 임마누엘 칸트라고 이중톈은 말한다.
'주관적 보편성'으로서 근대 미학의 미는 "객관적인 것도 주관적인 것도 아니고 주객관의 통일도 아니며, '주관이 객관으로 표상된 것'이고 '객관적 상징의 형식으로 표현되어 나온 주관적인 것'이며, 미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은 '공리를 초월하고 개념을 갖지 않으면서 목적을 갖지 않는 '주관적 보편성'이다"(같은책, <3-4>)라는 칸트 철학에서 미학이 비로소 한층 더 발전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칸트에게서 미는 인식의 주체로서 개인이 그 누구든 보편적으로 이익이나 목적 여부를 떠나 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 그 자체였다.
그러나 주관적 관념론인 영국 경험론 철학과 칸트의 심미 철학 또한 한계에 도달하는데, 철학은 인식의 주체 뿐만 아니라 거대한 객체로서 세계도 그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의 하위범주인 미학 또한 게오르그 헤겔을 피해갈 수 없게 된다.
그렇게 고대 미학의 '객관성'이라는 정명제는 근대 주관적 관념론의 '주관성'이라는 반명제의 '부정'을 거쳐 근대 관념론 철학의 종결자인 헤겔 철학의 체계에서 '부정의 부정' 단계로 들어선다.
바로 헤겔의 '예술 철학'이다.
"예술은 정감의 '내용'에게 대상화라는 '형식'을 주었고, 미는 대상화라는 '형식'으로 구현되고 있는 '내용'입니다."
- [미학강의], <7-5. 미와 추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중톈, 2006.
헤겔의 에술 철학은 그 자체로 변증법적 전화 과정을 거치는데, '형식'과 '내용'이 맹아로 존재하던 '상징형' 원시 예술에서 '형식'과 '내용'이 통일된 '고전형'으로 '부정'되고, 또 다시 '부정의 부정'으로서 '형식'과 '내용'의 모순에 봉착하는 '낭만형'으로 변화한다. 원래 헤겔 철학의 귀결점은 '절대정신'이므로 헤겔에게 미는 '절대정신의 감성적 현현'이며, 첫 단계인 감각적 '예술'의 정명제는 그 자체의 모순에 의해 '종교'의 '부정' 단계로 이행하며, '종교' 또한 내적인 변증법 과정을 거친 후 최후의 단계인 '철학'에 도달한다. '철학'에서 '이성'은 즉자 단계와 대자 관계를 거치며 즉자-대자로서 '절대정신'이라는 최종적인 단계에 이르는데, 이것이 바로 헤겔의 주저 [정신현상학](1806)의 결론이다.
아무튼, 헤겔에게 미는 '절대정신의 감성적 현현'으로서 거대한 변증법적 관념론 체계의 가장 첫 단계인 '예술 철학'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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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감을 대상화하는 형식은 예술의 특징이고, 정감의 전달은 예술의 기능이며, 인간의 확증은 예술의 본질입니다."
- [미학강의], <7-3. 예술은 인간임을 증명하는 증거일까>, 이중톈, 2006.
이중톈의 방향은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적 미학론이다. 그는 이를 '실천 미학'이라 명명하는데, 마르크스가 그랬듯, 관념론 철학의 종결자 헤겔 철학을 상세하게 연구하고는 이를 뒤집어 유물론적 실천 미학을 새롭게 건설하고자 한다. 즉, 고대의 미학이라는 광대한 영역에서 근대에 이르러 '미학(美學/Aesthetics)'의 독립으로 '심미'와 '예술 철학'으로 이행하였지만, 이 추상성에 그치는 관념론적 사고방식이라는 '문'을 부수고 '예술 철학'을 넘어 '일반 예술학'의 '실재'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가 제시한 '사회'와 '역사'에 기반한 인간의 '실천' 중 하나로서 각종 예술 행위들을 통해 미학을 정립하고 그러한 미학사 속에서도 미학의 근본 질문인 "미란 무엇인가?"의 문제제기를 계속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결론은 없다.
미(美)라는 개념은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변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다.
그러나, '미학(美學)'은 철학과 마찬가지로 그 보편성을 지향하는 근본적 문제제기를 멈추지 않는다.
역사 속 질문들은 모두 결론은 아니었을지라도 그 시대에 유효했고 '필연적'인 문제제기였다.
그래서 이중톈 [미학강의]의 결론 아닌 결론을 한 문장 뽑으라면,
"미학은 곧 미학사, 미학사는 곧 미학"(같은책, <1-4>)이다.
3.
결국, 내가 보기에,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애써 만든 창조물을 외면한 '미'의 기준은,
첫째, 미학 여부를 떠나서 당시 기준으로 잘생긴 외모가 아니었다는 단순한 이유였고,
둘째, 19세기 초의 그 기준이 21세기인 지금과 같을 수는 없다는 새삼스럽지도 않은 결론을 내린다.
미와 추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그 증거는 유물변증법에 기반한 '실천 미학'의 과학적 사고 방식에 의하면 당대의 예술적 '실천'들이며, 미는 천상에서 내려와 사회관계를 토대로 한 현실의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실재'적으로 반영되는 것이다.
물론,
이 또한 결론이 될 수는 없다.
다만,
"'미(美)'란 무엇인가?"라는,
'미학(美學)'의 근본적 '문제제기'만이 언제나 유효할 뿐이다.
***
- [이중톈 미학강의(破門而入:易中天講美學)](2006), 易中天, 곽수경 옮김, <김영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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