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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Mar 03. 2024

우리식 오컬트 영화의 정수, [사바하]

- 영화, [사바하], 장재현, 2019.

우리식 오컬트 영화의 정수, [사바하]

- [사바하], 장재현, 2019.





1. 영화, [사바하]


영화 [파묘]를 보고 감상평을 쓰고 나니 [사바하]를 그냥 넘길 수 없게 되었다.


종교가 없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장르가 종교적 신비주의와 이단적 밀교, 오컬티즘과 카발리즘 등을 다루는 영화인데,

풍수지리적 식민야사인 쇠말뚝 이야기와 음양오행을 섞은 [파묘](2024)도 흥미로웠지만,

난 개인적으로 불교의 '사천왕신'과 성경의 '베들레헴 영아학살'을 엮은 [사바하](2019)가 더욱 인상깊었다.


특히 '사천왕' 담론에는 동양의 유-불-선 사상이 모두 녹아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영화, [사바하]다.




2. '사천왕(四天王)' 신화


"사천왕은 원래 인도 재래의 민간신이었다. 수미산 높은 곳에 살며 제석천의 명을 받들어 중생의 세상을 지켜주는 호세신이자 방위신이었다. 불교가 일어나며 인도 재래의 신인 제석천이나 범천을 받아들였둣 사천왕도 불교에 흡수되어 부처님을 호위하고 불법을 지키는 신으로 변모한다."

- [사찰 속의 숨은 조연들], '2. 절집의 외호신-사천왕', 노승대, <불광출판사>, 2022.


이단을 연구하면서 고발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극동종교문제연구소' 소장 박목사(이정재)가 새로 파고든 강원도 태백의 신흥 종교집단 '사슴동산'은 실은 '사천왕'을 신으로 모시는 종교인데 강원도 소녀 살해유기 사건과 연관이 있다.


우선, '사천왕(四天王)'이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289


불교의 사천왕은 인도 재래신에서 기원한다. 원래는 부처를 지키는 야차들을 이르는 금강역사들이 동서남북 사방의 신으로 변천한 듯 하다. 불법을 지키는 무적의 독고저라는 무기는 아마도 제우스의 번개와도 같을텐데 이 독고저는 매우 단단하여 금강이라 불렸고 인도의 제석천이나 불교의 부처 대신 이 독고저(금강)를 들고 신을 호위하는 야차들이 금강역사의 기원이었다. 이들이 역시 인도의 재래신앙인 '사천왕'으로 대체된 것이고, 중국으로 넘어오면서 동아시아의 갑옷을 입게 된다. 그렇다고 '장군신'은 아니다. 불법 또는 그 현신으로서의 부처들을 위협하는 악귀들을 잡아먹는 악신이다.


사천왕이 사는 곳은 불교 세계관의 중심산인 수미산의 8부 높이 즈음에 한 줄기 산맥으로 돌출하여 수미산을 감싸고 있는 건타라산이다. 건타라산은 동서남북 사방에 큰 봉우리가 있고 이곳에서는 마이산을 포함한 칠금산 너머 먼 바다의 사대주가 바라다보인다. 사천왕은 각각 이 동서남북 봉우리에 궁전을 짓고 수많은 자식과 부하들을 거느리며 산다는 것인데 각각의 방향에서 그 땅을 관할하는 불가의 사방신이다.



사천왕은 동양의 유-불-선이 융합된 모습으로 현상하는데, 역시 '음양오행설'이 빠질 수는 없다.


'오행'은 각기 '동서남북(東西南北)'과 '중앙(中央)'을 이른다.

'동(東)'은 '목(木)'이요 '청(靑)색', '서(西)'는 '금(金)'이요 백(白)색', '남(南)'은 '화(火)'요 '적(赤)색', '북(北)'은 '수(水)'요 '흑(黑)색'이며, 만물을 낳는 '토(土)'는 '중앙(中央)'이요 '황(黃)색'이다.

이는 '유교'에서 동-서-남-북 사방 각각의 이념인 '인(仁)-의(義)-예(禮)-지(智)'와 '중앙'의 그것인 '신(信)'이며,

'불교'의 '사천왕', 즉 동쪽의 '지국천왕', 서쪽의 '광목천왕', 남쪽의 '증장천왕', 북쪽의 '다문천왕'이다. 중앙은 바로 부처다.

각 방향에 색깔을 입히면 '도교'적 색채가 함께 입혀진다. 동쪽을 지키는 용은 청룡이며 지국천왕은 얼굴이 푸르다. 서쪽의 범은 백호이고 광목천왕의 얼굴은 희다. 남쪽의 봉황은 붉은새 '주작'이고 증장천왕의 표정은 붉다. 북쪽을 지키는 거북은 현무이고 북쪽 다문천왕의 그것은 검다.



영화에서는 근대로부터 현재까지 100년 이상을 살아온 육손의 이단교주가 '중앙'인 자기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을 지키는 사천왕을 배치한다. 이 사천왕의 임무는 바로 '강원도 영아학살'인데 영생불멸인 자기를 대체할 또 다른 여섯 손가락을 가진 '뱀'의 아이가 태어난다고 예언된 1999년생 여자아이들을 추적하여 죽이는 일이다.

남쪽 단양의 '증장'과 북쪽 정선의 '다문'은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던 중 먼저 죽고, 영화 초반의 살해유기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동쪽 태백의 '지국'(지승현)도 자살한다. 이제 유일하게 살아남은 서쪽 제천의 '광목'(박정민)이 쫓는 영월(중앙) 소녀(이재인)만 처결하면 되는 상황인데, 그 소녀에게는 손가락 여섯개를 갖고 함께 태어난 쌍둥이 언니 '그것'이 있다.



3. '베들레헴 영아학살'


"...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 [신약성경], <마태복음 2:16-20>.


[사바하]에서는 영생불멸 육손의 동방교 교주가 제거하려는 단 하나의 적메시아가 역시 육손의 그 소녀로 암시되고 있는데, 이 '메시아'를 제거하기 위해 세기말인 1999년에 태어난 여자아이들을 살해한다는 경전의 모티브는 [신약성경]의 <마태복음>이 전하는 '베들레헴 영아학살'이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154


영화의 반전은 동방교를 창시한 교주 '풍사 김제석'의 정체다.

소년원에서 살부죄로 복역하는 4명의 소년을 골라 아버지가 되는 동방교주는 사실 늙어서 누운 현실의 교주(정동환)아니라 진실로 늙지않는 제자(류지태)였고, 그는 1985년에 티벳의 고승을 통해 들은 예언과 밀언을 토대로 '경전' 썼다.


이 '경전'이 담은 내용이 '강원도 소녀학살'이며, 그 기원은 [신약성경]의 '베들레헴 영아학살'이다.


즉, 구세주 예수를 싹부터 제거하기 위해 헤롯왕이 그 해에 같이 태어난 남자아이들을 색출하여 죽였다는 <마태복음>의 기사인데,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브뢰겔 부자가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아버지 브뢰겔의 그림에서 항아리나 가금류 등으로 후대 누군가에 의해 덧칠되고 수정된 모호한 주제는 아들 브뢰겔의 <베들레헴의 호구조사>라는 그림에서 아기들의 시체로서 사건의 전말을 드러낸다고 한다.


[베들레헴의 영아학살], 아버지 피터르 브뢰겔, 1562년 전후



"도대체 누가 걸작을 이렇게까지 모독했던 것일까?

...

누구의 소행이건 그 이유는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어린 아기들이 살해되는 장면은 잔혹하기 때문에 지우고 하늘을 다시 칠해 조금이라도 밝은 느낌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혹은 종교상의 신념 때문에 '베들레헴의 영아학살'은 허구에 불과했다고 믿었던 누군가가, 다른 이들의 잘못된 신념을 바로잡고 싶은 생각에 일부로 이 그림을 손에 넣은 후 고치게 했을지도 모른다.(다만 확률적으로는 무척 낮은 가정이지만)"

- [무서운 그림 2], <그림17. 브뢰겔의 '베들레헴의 영아학살'>, 나카노 교코, 2008.


성경에서는 <마태복음>만이 유일하게 전한다는 '베들레헴의 영아학살'은 그 역사적 진위와는 상관없이 종교사적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영화 [사바하]는 이 서양 기독교적 모티브와 동양 사천왕 신화를 흥미롭게 잘 섞었다.


[베들레헴의 호구조사], 아들 피터르 브뢰겔, 1566년



4. 우리식 오컬트 영화


장재현 감독의 우리식 오컬트 영화,

[검은 사제들](2015)과 [사바하](2019)를 본 후 [파묘](2024)도 기대를 갖고 보게 되었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351


[파묘]를 본 후 더 재미있게 보았던 [사바하]에 대한 영화평이 없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억지로라도 하나 쓰고 [사바하]를 정리했으니, 이제부터 홀가분하게 장재현 감독의 영화는 무조건 보러 극장에 갈 듯 하다.


***


1. [사바하], 장재현, 2019.

2. [잊혔거나 알려지지 않은 사찰 속 숨은 조연들], 노승대, <불광출판사>, 2022.

3. [성경전서], <신약-마태복음 제2장>, 대한성서공회, 1962.

4. [무서운 그림 2 - 매혹과 반전의 명화 읽기](2008), 나카노 교코, 최재혁 옮김, <세미콜론>, 2009.



https://m.blog.naver.com/beatrice1007/223371608569?afterWebWrite=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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