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순'은 역사의 동력이다
'모순'은 역사의 동력이다
- [사유하는 미술관], 김선지, 2024.
"그림 속에는 그 시대와 사회를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다양하고 풍요로운 정보가 들어 있다. 이런 점에서 예술 작품은 역사를 반영하는 기록물이자 인간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에게 수많은 말을 건네고 의미를 전한다... 나의 관심은 그림을 매개로 한 인문학적 사유다. 그리고 나의 글에는 늘 역사적 배경이 주요한 요소로 바탕에 깔려 있다. 과거는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 [사유하는 미술관], <서문 - 내 안의 사유를 깨우는 미술관으로의 초대>, 김선지, 2024.
다시 '미술관'으로 들어선다.
내 비록 미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시각예술(Visual Arts)'로 분류된 그림을 좋아해서 미술사 관련 작가와 책들은 계속 읽게 된다.
꼭 읽게 되는 미술사 작가로는 일본의 나카노 교코가 있고 우리나라 김선지 작가가 있다. 나카노 교코는 왠지 귀족적 역사관이 깔린 듯 하나 [무서운 그림] 시리즈처럼 명화에 담긴 인간사의 주제 선정에 끌린다. 이에 비해 김선지 작가는 명화가 담고 있는 역사 속 '모순'과 그로 인해 밝혀지는 역사의 이면이라는 일관된 주제 선정에 동감하기 때문에 읽는다.
김선지 작가의 글에는 변함없이 소외된 계층과 피지배계급에 대한 연민과 연대의식이 스며들어 있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154
https://brunch.co.kr/@beatrice1007/314
김선지 작가가 2024년에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로서의 과거, 역사를 비추는 '거울'인 명화를 통해 '인문학'적 사유를 이어가는 '미술관'을 열었다길래 첫번째 관람객이 되고자 바로 책을 펼쳤고, 역시나 이번에도 아끼고 아껴 읽고자 했으나 이틀이 채 지나기도 전에 30관의 전시실을 다 돌고 말았다.
내게 미술사 책은 항상 그렇다. 아무리 아껴먹으려 해도 눈 깜빡하는 사이 다 먹어버리는 달디단 곶감이자 어느새 해가 저물고 어둑해지는데 홀로 남겨진 외롭지만 정겨운 놀이터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175
https://brunch.co.kr/@beatrice1007/206
[그림 속 천문학](2020)과 [그림 속 별자리 신화](2021)를 통해 알게 된 김선지 작가가 [사유하는 미술관](2024)을 열면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내가 보기에 '역사' 속 '모순'이다.
'모순'은 변증법적 역사관으로 보면, 세상 만물의 동력이다. 씨앗이 품고 있는 생명의 맹아는 곧 현재의 씨앗 상태를 깨고 생명을 틔운다. 씨앗 속에 움튼 맹아라는 말 자체가 현재와 미래의 공존상태를 이른다. 인류사에서 새로운 세상은 한 번에 나타나지 않는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망하지 않았고 르네상스는 한 번에 오지 않았으며 러시아 혁명의 맹아는 러시아의 잔혹한 차르 체제 자체에 오랫동안 살아숨쉬고 있었다. 소비에트와 볼셰비키의 대대적인 혁명은 러시아 차르 체제가 아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다. 레닌이라는 전대미문의 혁명가는 서유럽 같은 곳이었다면 빛을 볼 수 없었다. 가까운 우리 역사의 사례로 내가 존경하는 삼봉 정도전의 급진적 성리학은 이미 고려말 체제가 충분히 만들어 주었다.
자연사 뿐만 아니라 인류사의 동력은 역시,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모순'이다.
역사는 이 '모순'을 동력으로 전진해 온 과거를 반추하는 것이며, 김선지 작가는 이런 역사를 그림들을 통해 읽어준다.
[사유하는 미술관]은 그림 속 투영된 권력과 성, 음식과 신앙 등을 통해 역사의 이면을 파헤친다.
"메리 1세는 역사에서 블러디 메리라는 악명으로 기억되며 부정적 평가를 받아 왔다. 영국사에서 가장 위대하고 성공적인 군주로 인정받는 엘리자베스 1세와 비교되며 더욱 빛을 잃었으니, 죽어서도 그들은 숙명의 라이벌이긴 한 것 같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의심할 여자 없이 언니에게 많은 빚을 지었다. 메리가 잉글랜드의 첫 번 째 여왕이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 [사유하는 미술관], <1-3. 튜더 왕가의 라이벌 공주>, 김선지, 2024.
이혼하고 싶어 영국 국교회를 창시한 영국의 헨리 8세에게는 메리와 엘리자베스 두 공주가 있었는데, 어머니가 다른 두 공주는 잉글랜드 최초의 여왕이 되고자 권력투쟁을 이어간다. 이혼의 희생양이 된 엄마 캐서린을 위해 가톨릭을 옹호하며 개신교도들을 학살한 '블러디 메리'는 5년 후 개신교를 앞세운 엘리자베스 여왕 세력에 의해 패퇴되었지만, 영국 최초의 여왕으로서 후대인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초석을 깔았다는 평가도 있다. 조선 태종의 왕정 패악질이 세종의 치세를 닦은 토대였다는 시각과 같다.
권력보존 역사의 '모순'이다.
오스만의 술탄 슐레이만 1세의 왕비 술타나 록셀라나와 동로마 비잔틴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의 황후 테오도라는 각각 노예와 고급 매춘부에서 술탄 및 황제와 거의 동급의 반열에 올랐다. 역사에서 이들은 악녀의 이미지로 전해졌지만 사실 역사는 시대적 한계는 있지만 고대와 중세 당시의 여성 인권을 보호했던 인물로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근대와 현대에 성취된 여성 인권은 다수 여성들과 이에 연대한 계급투쟁으로 쟁취되었지만 역사의 이면은 신분의 벽을 깨부순 여성 권력자를 여러 명화들을 통해 보여준다.
여성 권력자들은 비록 지배계급이었지만 당시의 피지배신분으로서 여성으로서의 '모순'을 품고 있었기에 여성 인권 진보의 역사를 담보한다.
"설탕의 역사는 인류사의 어두운 장이었다. 설탕은 달콤하지만 그 이야기는 매우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단맛에 빠진 당대의 사람들 중 설탕 플랜테이션의 냉혹한 현실을 생각해 본 이가 있었을까?"
- [사유하는 미술관], <3-14. 그림 속에 차려진 설탕의 유혹>, 김선지, 2024.
우리 주변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요소인 음식에도 '모순'은 있다.
설탕의 단맛은 근대 식민지 플랜테이션의 흑인 및 비백인 노예 착취를 배경으로 한다. 노예와 식민지를 쥐어짠 사탕수수의 단맛은 사실 역사의 쓴맛과 '모순' 관계에 있다.
역시 식민지와 노예무역이 배경이 된 커피와 후추 또한 그 알싸함 뒤에는 아픈 역사가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음식에서 향신료의 고마움과 민주주의 역사를 발전시킨 '커피하우스'의 역사적 역할은 사라지지 않는다.
음식의 역사에도 '모순'은 도사리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은 성격이 사납고 충동적이며 과대망상에다 편집증이 있었다. 베토벤은 병적인 변덕스러움과 분노 조절 장애를 가졌으며, 스티브 잡스는 완벽주의에 대한 강박 증세로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 광기는 천재성과 통하기도 하지 않은가?...
... 생각과 가치관은 늘 바뀌어 왔다. 과거의 비정상은 현재의 정상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 경우도 있다. 진짜 문제는 나와 우리는 정상이고 너와 너희는 비정상이라는 독선적 이분법이다."
- [사유하는 미술관], <5-25. 정신 질환, 그 폭력의 역사>, 김선지, 2024.
권력투쟁만큼 첨예한 인간사가 있을까 싶다. 권력 앞에서는 에미애비도 자식도 없다. 권력의 역사는 광기의 역사다. 역사의 위인으로 남기 위해 권력자들과 천재들은 기꺼이 '미친년놈'들이 되었다. 권력자들의 광기는 일일이 열거할 것도 없다. 지역 내부 정치를 넘어 알렉산더와 칭기스칸, 나폴레옹을 배우고자 했던 히틀러는 그 대명사에 불과하다. 그냥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을 미화한 교활한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과 그 과정을 사실대로 묘사한 폴 들라로슈의 그림을 비교하면서, 인간사 '모순'의 정점인 미친 권력자들 얘기는 넘어간다.
한편으로 권력에 의한 폭력의 피해자가 된 여성은 '창녀'와 같은 억울함의 표상이 되고는 하지만 더 이상의 폭력을 방지할 수 있는 '성녀'의 힘도 갖게 된다. 결연한 죽음을 통해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세운 기폭제가 스스로 되어버린 루크레티아를 기억한다.
역시, '모순'은 폭력의 역사를 뒤집는 동력이다.
[사유하는 미술관]의 제목은 원래 '사(史)적인 미술이야기'로 김선지 작가가 정해 두었단다. 그런데 출판사에서는 '역사(史)'를 제목으로 앞세우면 독자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판단으로 제목을 [사유하는 미술관]으로 바꿨다는 후문을 작가의 페이스북을 통해 들었다.
아쉬웠다.
책이 안 팔릴까봐 제목에 '역사(史)'를 올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물론 이런 아쉬움 또한 대중적이지 못한 나의 한계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한다.
한편으로 다행이기도 하다.
'사유'를 역사와 함께 노니는 '사유(史遊)'로 생각하기로 했다는 작가의 후일담을 들으니.
이로써 김선지 작가는 그림과 함께하는 '역사(史)'를 지켜낼 수 있었다.
세상 만물은 예외없이 '모순'을 담고 있다.
어떤 일이 생겨도 역사는 전진하는 미래를 담고 있는 그때 그때의 현재다.
명화들을 보며 읽어내는 역사를 봐도 역시,
'모순'은 역사의 동력이다.
미술사를 넘어 미술을 통해 '역사'를 이야기하는 김선지 작가의 발전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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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유하는 미술관], 김선지, <알에이치코리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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