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끝, 라이딩 시작 1
더 이상 사랑에 연연하지 않고 살기로 마음먹은 날, 새 자전거를 구입했다. 접어서 시외버스나 기차에 실을 수도 있는 작고 까만 전기자전거다. 페달을 밟으면 전동 모터가 힘을 일부 보태주는 파스(PAS) 방식의 전기자전거다. 이름은 ‘커피’로 정했다. 이제 곧 마무리될 지금의 직장 생활을 마치면, 자전거 커피를 타고 어디든 달려가볼 생각이다.
오래전 길었던 연애의 잔영에서 벗어나는 데, 그 연애기간의 절반만큼의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사이에 만났던 짧은 인연들에게는 좋지 못한 인상만 남기고 말았다. 내가 외로움을 덜 타고, 심지가 조금 더 굳건하여 차라리 긴 세월 홀로 꿋꿋이 이겨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지난 주말에 ‘오해의 입자’라는 글을 쓰다가 장황해져 그만뒀는데, 세상에는 오해의 입자라는 것이 떠돌아다니고 있어서, 제 아무리 진심을 전하고, 사실 관계를 입증하려고 해도 오해의 입자가 섞이면 돌이킬 수 없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억울한 일을 가장 견딜 수 없어하는 나지만, 이제 더 이상 오해에 대해 해명하려 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그 자체가 억울함에 대한 변명일 뿐이었다.
자전거가 처음 도착한 날, 밤바람을 가르며 힘껏 달렸다. 별 볼 일 없는 인생에 핑계 댈 일을 너무나 많이 저지르고 살았다.
사실에 대한 해석 차이는 반응하는 감정의 차이를 낳게 된다. 사실에 대한 해석을 바꾸면, 감정도 바꿀 수 있을 것 같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다. 연인의 생일에 선물을 사는 것을 잊을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 이유를 253개 댈 수 있다고 해도, 선물을 받지 못해 발생한 슬픔과 서운함의 감정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감정은 그 자체로 발생한 사건이고, 이 우주 속에 질량을 갖는 물질이다. 작은 억울함조차 견디지 못해 해명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종종 그 사실을 망각하곤 한다.
2년 동안 정신없이 매진했던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니, 밤에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감정의 파도가 거셌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힘껏 파도를 견뎠다. 그런 다음에야 평온한 마음이 찾아왔고, 다시 사랑을 담을 수 있을까 싶어 타진해본 일들은 금세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나는 더 이상 사랑에 연연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거금을 들여 자전거를 샀다.
자전거가 처음 도착한 날, 밤바람을 가르며 힘껏 달렸다. 별 볼 일 없는 인생에 핑계 댈 일을 너무나 많이 저지르고 살았다. 오해조차 나의 부주의로 받아들여야만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밤바람 속에 모두 나의 탓으로 훌훌 털어내고 나니 홀가분했다. 커피와 나는 이제 새롭게 아주 멀리까지 가볼 것이다.
2022. 5. 2. 멀고느린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