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티 없는, 그냥 플레져

음미노트02. 그릭요거트

by 원테이크



스마트폰을 덮어두게 만드는 음식이 있다. 이걸 앞에 두고 유튜브나 넷플릭스 화면을 뒤적거릴 순 없다. 음식과 독대하면서, 한 입, 한 입 없어지는 걸 고스란히 아쉬워하면서 먹고 싶은 음식. 내게 그런 음식 중 하나가 그릭요거트다.




조금이라도 묽으면 뭔가 서운하다. 꾸덕해야만 한다. 숟가락으로 쉽게 퍼지지도 않게 치밀한 조직으로 덩어리져 있는 것이 좋다. 달달하면 안 된다. 무가당을 먹어야 치즈도 아닌 게 요거트도 아닌 그릭요거트 고유한 맛을 누릴 수 있다.


이런 질감과 맛의 그릭요거트는 편의점에 잘 없다. 그마저 하나 사려면 4천 원 가까이 줘야 한다. 결국 수제 그릭요거트를 만들기로 했다.



맛있지만 싸진 않아..


제대로 유청이 분리되려면 24시간을 기다리고 또 5시간 정도 더 눌러주어야 한다. 반투명한 유청이 똑똑 다 떨어지도록 하룻동안 분리하고, 원하는 식감을 만들어내고야 만다. 처음 한 입을 푹 떠 먹는 순간만을 기다리면서.





드디어 뚜껑을 열고, 뽀얗고 하이얀 자태를 요리조리 살펴본다. 태초의 순수를 형상화하면 아마 이런 모습일까? 감히 그 순수를 한 숟가락 떠서 입 안에 넣으면, 뭉클하고 풍성하게 맴도는 크림같은 질감에 절로 눈이 감긴다. 응축된 시간을 맛본다.





수제 그릭요거트는 살짝 시큼하고, 고소하고도, 담백하다. 포만감도 주는데 영양성분도 착하다. 이렇게 완전한 결과물에 비해 재료는 정말 단순하다. 원유, 유산균, 시간, 이 세 가지면 된다니 정말 신비롭다.


순수한 그릭요거트는 그냥 먹어도 풍미가 그만이지만, 조금 부드럽게 먹고 싶으면 올리브유를 한 숟갈 더해본다. 살짝 시고 고소한 그릭요거트에 올리브유의 신선한 향과 맨질한 기름의 감촉을 입힌다. 조금 섞어주면 실크처럼 된다.




그릭요거트는 올라운더라, 제대로 식사로 먹을 수도 있다.


차지키를 응용하는 걸 정말 좋아한다. 그릭요거트에 올리브오일, 다진마늘, 레몬즙, 소금과 후추를 넣으면 차지키 베이스. 배합은 먹어보면서 그 때 그 때 달라진다.

한여름에는 여기에 절인 오이를 넣어 오리지널 차지키를 만들고, 파스타에 비벼 먹었다. 크림 파스타를 잊게 만드는 청량하고도 푸짐한 맛이었다.


단호박 철에는 차지키 베이스로 단호박에그그릭샐러드를 만든다. 먹는 순간 순간 오버스럽게 감탄한다. 입안 가득한 부드러운 식감은 배가 되고, 단호박의 자연스러운 단맛이 그릭요거트의 시큼함을 잡아준다. 가끔씩 들어오는 마늘이 킥이다. 자칫 느끼해질 수 있는 맛을 딱 잡아준다.



왼: 차지키파스타 / 오: 단호박에그그릭


(아참, 후추를 정말 팍팍 뿌려주어야 한다!)



그릭요거트 위에 터키쉬에그, 이건 맛의 경험이라할지도



그릭요거트는 훌륭한 간식이 되기도 한다.


그릭요거트에 냉동 블루베리나 제철 과일을 넣으면 죄책감 없는 디저트를 즐길 수 있다. 화학첨가물과 각종 당을 부어 녹지도 않는 아이스크림은 이제 별로 땡기지도 않는다.




꾸덕이 대용량 그릭요거트도 많이 팔던데. 자주 먹으면 질려버릴까봐 아직 못 사먹겠다. 마치 내게 허락된 게 얼마 없는양 고이 아껴 먹고 싶다.


음식과 마주한 나만 남게 만드는 그런 마성의 음식으로 영원히 남기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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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