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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수의 아빠

오월의 아홉수

by 저나뮤나

우리 집에는 나와 큰아이 말고도 올해 아홉수가 되는 사람이 또 있다. 나랑 서른 살 차이가 나는 일흔아홉의 아빠다. 글자로 적어 놓고 보니 일흔아홉이라는 숫자의 무게가 상당하다.


내 기억 속 아빠는 항상 서재에 계셨다. 아빠의 서재는 온갖 종류의 책들과 커다란 봉투에 담긴 서류들이 천장까지 쌓여 있는, 움직임도 없고 소리도 없는 조용한 공간이었다. 아빠의 서재는 아빠의 등장과 함께 불이 켜지고, 끝없이 넘어가는 서류의 움직임과 슥슥슥슥 종이를 가로지르는 펜 소리로만 그 존재를 알리는 곳이었다. 늘 정시에 퇴근하던 아빠의 손에는 분홍색 보자기와 오래된 가죽 서류가방이 들려 있었다. 때로는 금색 보자기를 들고 퇴근하시기도 했는데, 색깔이 무엇이든 간에 그 안의 내용물은 항상 같았다. 서류였다. 가끔은 세상에 있는 서류란 서류는 다 우리 집에 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아빠의 서재는 내가 자라며 바라본 가장 변하지 않는 풍경이었다. 읽어도 읽어도 끝이 나지 않는 서류를 붙잡고 쉬지 않고 무언가를 써 내려가시던 아빠는 집에서는 서재에서, 출근해서는 사무실에서, 아빠의 젊은 시간을 보냈다. 명절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 앉아 하하 호호 웃고 있을 때에도, 거실에서 친척들과 마작 몇 판을 두고 나면 아빠는 언제나 서재로 다시 향하셔서 서류와 씨름을 이어가셨다.


생각해 보면 아빠는 정말이지 쉬지 않고 일했다. 내가 고3일 때도, 대학을 떨어지고 재수하고 있을 때도, 대학에 입학했을 때도, 대학 생활이 익숙해져 밥 먹듯 수업을 땡땡이치던 때도, 정신 좀 차리고 대학원에 있을 때도, 그리고 아무 계획 없이 미국으로 온 후에도,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아 '인생 참 후지네' 푸념하고 있을 때에도 아빠는 일을 했다.


그런 아빠의 모습이 새삼 떠올랐다. 아빠의 일한 시간을 생각해 보니 아득하다. 사람이 어쩜 그렇게까지 일을 할까 싶을 정도였다. 아빠는 일하느라 바빠서 열심히 일한 대가를 즐길 시간도 별로 없었다. 아빠의 노동의 대가는 늘 가족에게로 갔다. 돈은 아빠가 벌고, 나머지 가족들은 신나게 쓰는 구조였다. 아빠는 단 한 번의 투정도 하지 않으셨다. 아빠 돈을 신나게 쓰고 돌아온 날에도, 아빠는 여전히 서류를 검토하고 서류를 작성하셨다.


아빠는 자신을 꾸미는 일에도, 좋은 물건을 사는 일에도, 자신을 누가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관심이 없으셨다. 그저 단정하게 입고, 깨끗하게 정리하고, 자신에게 당당하면 되는 것뿐이었다. 항상 그렇게 사셨고, 그렇게 사는 데 불편함도 없으셨다.


아빠가 미국 우리 집에 놀러 오셨던 날, 우연히 보게 된 아빠의 신발은 그런 아빠를 고스란히 닮아 있었다. 오랫동안 신고 다녀서 신발의 모양도 많이 뒤틀렸고, 가죽도 여기저기 얇아져 있었지만 여전히 깨끗했고, 아빠를 닮아 담백했다. 아빠는 요즘에는 구두를 닦아주는 곳도 찾기 힘들고, 간신히 찾아도 이 구두를 닦아달라고 말하기가 참 미안하다고 하셨다. 새로 사자니 이 구두가 길이 들어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며 웃으셨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 구두를 닦고 신고 고치셨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세월을 숨길 수 없는 구두를 보고 있자니 일흔아홉의 아빠가 고마웠다.


서재에 앉아 열심히 온 가족을 지켜온 아빠는 그 구두를 신고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중간에 아빠에게 신발을 사드리기도 했지만 아빠는 이 낡은 구두만큼 새 신을 편해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다만 딸이 사준 구두라 벗지 못하고 불편해도 참으신 것이다. 발에 물집이 잡힌 아빠를 보고 낡은 구두를 다시 꺼내놓았을 때 아빠는 "이걸 아직 안 버렸구나. 정말 편한 신발인데." 하시며 기뻐하셨다.


그때 신발을 사드렸던 순간보다, 그 신발을 버리지 않았던 내 판단이 더 기뻤다. 하마터면 지난 온 세월을 몽땅 버릴 뻔했다는 아찔함이 밀려왔다. 일흔아홉이 된 아빠가 다시 신은 낡은 구두. 단 한 걸음도 허투루 걷지 않으신 시간이 그 오래된 구두에 스며 있다.


아빠는 말없이 걸어 여기까지 오셨고 나는 아빠의 발자국 위에서 무사히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아빠가 편안히 느끼는 구두를 신은 채 마음 가는 대로 걸으셔야 할 때다. 무슨 구두를 신든, 어떤 보폭으로 걷든, 어떤 길을 어떤 속도로 걷든 이제 아빠가 편한 것이 답이다. 바람이 천천히 발등을 지나고 햇살이 등을 토닥이는 길 위에서 아빠는 편안하게 마음가시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시면 된다.


일흔 아홉의 아빠. 아홉수 언덕을 아빠와 함께 넘으며 아빠의 여든의 아침을 기다리는 지금, 나는 몇 번이고 더 아빠의 아홉 언덕을 축하하고 싶다. 아홉이 끝나고 열이 와도 열이 끝나고 열하나가 와도 오래도록 아빠와 함께 이 길에서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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