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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쫑 Oct 22. 2023

노룩산에는 작은 소나무가 한 그루 있다

12월에는 항상 문자가 많았다. 해가 바뀌기 전에 얼굴 한 번 보자는 이야기였다. 대학과 고등학교 동기들, 어디 모임에서 함께했던 사람들, 옛 독서모임 사람들. 어떤 모임은 반갑기도 했지만 어떤 모임은 굳이 다시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올해 꼭 가야 하는 모임은 작년 2년 동안 빠졌던 대학 동기 모임이었다. 이름하여 '공사다망'이라는 단톡방 멤버들. 금융권에 취업한 국문과 공사학번 친구들이었다. 전공을 살리지 못해서 공사학번 다 망했다는 의미로 이름을 지었지만, 이름대로 일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매우 바쁘고 성실하게 살았다. 이제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간 지 오래돼 딱히 할 말이 없는 사람들. 제법 시들해진 미드를 다시 보거나 3일 동안 같은 다큐멘터리를 계속 보는 마음이 이런 거겠지. 


이런 모임이 잡히면 서랍장 정리를 하곤 했다. 평소에 열어보지 않는 과거의 유물들을 넣어둔 맨 밑에 칸에 시선을 쏟았다. 손대지 않아 서랍장 틈새에 쌓여있는 먼지들. 책상 속 수납 상자를 내려 방바닥에 쏟았다. 방 가득 몇 년 치의 먼지가 들썩였다. 먼지 속에는 각종 테이프와 시디, 오래된 폰들이 잠자고 있었다. 그 사이에는 오래전 대학교 때 활동했던 학회지도 있었다. 학회지 맨 뒷면에는 같이 활동했던 동기들의 한마디로 끝을 냈는데, 오랜만에 만나는 녀석들의 문장 한마디도 있었다. 동기들의 글을 오랜만에 보니 푸릇푸릇 감성이 올라왔다. 이럴 때도 있었지.


"요즘 사건 많이 다루는 것 같은데, 한문철 TV에서 나오는 사건도 많이 벌어져?"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과거를 이야기하기엔 기억은 퇴색되고, 남아있는 기억의 농도도 서로 달라 누군가에게 좋았던 기억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상처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렇다고 지금을 이야기하에는 우리는 서로의 위치가 너무 달랐다. 세 명의 아이를 키우는 성진, 이혼남이 되어 돌아온 정수, 막 신혼생활을 시작한 형일, 그리고 나. 현재에 딱히 공유할 것도 그렇다고 과거를 다시 들추는 것도 머뭇거려지는, 이제는 단톡방에서도 일주일에 한두번 말할까 말까 한 그런 관계였다. 이런 우리들에게도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최근에 사고가 생겨 다들 나에게 '보험금' 관련된 내용을 물어본 일이었다. 친구 본인의 자동차사고, 장인어른의 암 진단 등 몇 가지 이슈사항을 해결해줬다. 그래서였을까. 우리의 대화소재가 없어서였을까. 유난히 보험사건을 물어보는 그들이었다.


"음 그러니까 최근에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최근에 들어온 자살 사건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임팩트가 너무 강하고 안타까운 사건이라 며칠간 내용이 머리속에 떠나지 않았다. 졸업을 마치고 취업준비를 하던 학생이 술에 취해 뛰어 내린 사건이었다. 자살에 대한 보험금은 인정하지 않지만 우울증에 대한 정황적 증거와 술에 의한 심신미약 등으로 주장하면 받을만한 사건이었다. 문제는 가족이었다. 딸이 자살했다는 걸 인정하지 못해 제대로 주위에 알리지 않고 슬픔에 쌓여있었다. 안타까웠지만 이럴때는 최대한 사건을 빨리 해결해주는게 능사인지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디테일을 빼고 대략적으로 이런 일들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성진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두워진 표정 속에서 과거를 생각하고 있다는걸 느낄 수 있었다. 아리고 아린 눈빛을 속에는 우리가 모두 아는 누군가가 담겨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으니 은혁이가 생각나네."


내가 은혁이를 본 마지막은 취업준비를 하던 때였다. 라일락 도서관에서 밤까지 공부를 하고 나서 후문으로 걸어가는 도중, 한쪽 어깨에는 두터운 가방을 메고 한쪽 손에는 가방에 못 들어간 책을 들고 터벅터벅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은혁이었다. 얼굴을 알아보자 서로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노량진 쪽에서 공부한다더니 도서관에는 어쩐 일이야?" "너무 인류애가 상실되는 것 같아서, 오랜만에 학교 와봤어." "1년 만인가.. 2년 만인가? 잘 지냈어?" "시험에 계속 떨어지는데.. 잘 지내겠냐? 힘들다." 행시를 준비하는 은혁이는 1차, 2차를 번갈아가며 떨어지며 4년째 준비 중이었다. 휴학하고 노량진에 있다고 들었는데.. 행시.. 쉽지 않지. 


1학년에 같이 문학 학회를 했던 은혁이는 매우 밝았다. 사교성도 활발해 쉽게 대화에 참여했으며 노동, 환경 등 각종 사회문제에 깨어있으면서도 공격적이지 않고 적절하게 대화를 치고 빠지는 능력이 발군이라 모두가 좋아했다. 그랬던 은혁이는 2학년 말부터 고시 공부를 시작했고 3학년이 되자 거의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1차 커트라인에 몇 점이 모자랐네 여자친구와 헤어졌네 간간이 소식이 들렸다. 우리는 이따금 '생일 축하한다.'라든가 '새해 복 많이 받자' 따위의 문자를 주고받았었다. '언제 점심이나 한번'이라는 문자도 종종 했지만 실제로 그러지는 않았다. 2~3년이 지나자 학교 사람들은 거의 만나지 않는 눈치였다. 고시공부나 취직 준비를 하는 동안 인간관계가 끊기는 사람을 여럿 봤기 때문에 은혁이도 정해진 수순을 밟고 있다 생각했다. 


바람 좀 쐬고 싶어 왔다 학교 참 좋네 이야기하며 도서관에서 후문으로 걷다 멈추다 하며 은혁은 홀로 하는 공부의 힘듦과 외로움에 대해 토로했다. 졸업을 앞둔 우리는 언론, 임용, CPA, 취직 등 목적지를 향해 그 중간 어디인 곳에 걸쳐 있었으며 쉽게 성공하지 못했다. 동기들은 만나면 저마다 '내가 더 힘들게 산다' '거지 같다'라고 이야기하며 불행 배틀을 이어갔다. 그래서였을까. 은혁이의 이야기에 쉽게 공감하지 못했다. 반복되는 자소서 쓰기, 알 수 없는 서류탈락, 자괴감 드는 면접의 과정을 거치며 내 멘탈도 내핵까지 이미 너절해진 상태. 그의 말에 '뭐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냐. 좋은 직장은 누구나 갖고 싶고, 그러니까 경쟁을 하고 맞춰가는 거지. 나도 힘들다'라는 뉘앙스로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실제 그랬으니까. 그렇게 후문에서 은혁이는 이대역으로 나는 대흥역으로 헤어졌다. 그리고 며칠 후 은혁이는 사라졌다. 


은혁 이야기가 시작되자 성진이의 술잔은 빠르게 비워졌다. 내가 한잔 비울 때 세잔, 원체 술이 센 녀석이었지만 어느 순간 서서히 혀가 꼬부라졌다. 한눈에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술이 오른 상태였다. "너희는 그때 일을 다 잊은 거야? 난 아직도 그 전날 전화가 잊히지가 않아." 특정 사람과 연락을 할 수 없는데 부채의식이 남아있다면 그 감정은 종종 증폭되기 마련이다. 헤어진 연인과의 추억이 가득한 장소에 우연히 갔을 때, 이제는 연락하지 않는 옛 친구들과의 대화가 떠오를 때, 왜 그랬나 하는 미련이 들 때가 있다. 하물며 평생을 못보는 사람이라면? 부채의식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의 대화는 "무슨 말을 하겠어."라는 작은 목소리와 침묵이 이어졌다. 성진이는 애처롭게 하늘을 몇 번 보며 "바뀔 여지가 있었을까."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한참의 침묵 후에 우리는 이윽고 대화 주제를 돌렸다.


은혁이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안 건 일주일 후였다. 같이 고시공부를 하던 후배가 강의실에 일주일째 보이지 않아 문자와 전화를 계속했는데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형이 늦게라도 답장은 했는데 너무 이상해요.' 걱정을 가득 담아 후배는 나를 비롯한 동기 몇 명에게 문자를 했었다. 우리는 대부분 비슷하게 대답했다. '우울해 보이는데 집에 내려간 거 아닐까?' '어디 조용한 데서 공부하는 거 아닐까?' '휴대폰이 고장 난 거 아냐?' '자취하는 집에 한번 가봐.' 동기라는 말은 처음에나 어울리지 시간이 지나면 패턴이 되고 익숙해지면 무관심해지기 마련. 몇 년 동안 제대로 연락되지 않아 그러려니 했다. 이틀 뒤, 후배는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던 지인을 모아두고 이야기했다.


"은혁이 형이 자살한 것 같아요. 이상한 구석이 많아요."


자취방에 갔더니 말끔히 정리되어 있고, 주인은 며칠 전에 떠났다는 이야기만 반복하더라고요. 이상해서 은혁이형 집에 전화했더니.. 갑자기 유학을 갔다는 거예요? 그게 말이 되나요. 도무지 말이 안 되고.. 급 화가 나서.. 자취방 주인한테 경찰에 신고할 거라 했더니.. 그제야 말하더라고요. 방에서 목 매단 채로 발견됐고, 이미 신고까지 다 했다고요. 자기는 할 일 다 했으니 다시는 이런 이유로 오지도 말고, 소문도 내지 말아 달라고요. 이게 말이 되나요.


장례식은 결국 없었다. 후배 말고도 사정을 안 성진이나 몇 명이 직접 집까지 찾아갔으나 은혁이 부모님은 유학을 갔다는 말과 다시는 안 왔으면 좋겠다는 간곡한 말을 반복하며 매몰차게 그들을 내보냈다. 


연락이 끊겼던 사람들한테 한 달 정도 문자가 많이 왔다. 그래도 너는 같이 학회활동도 했는데 알지 않아? 자살은 장례식을 안 하는 경우도 많데. 진짜 그래서 그런 거야? 이런 연락을 받을 때마다 어떻게 답변할지 몰라 본의 아니게 씹었다. 그리고 금방 다른 생각이 머릿속을 에워쌌다. '어쩌면 내가 그때 더 공감을 해줬더라면 달라졌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언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은 기분을 갉아먹었고 기분은 태도에 드러났다. 한동안 우울했던 것 같다. 그래도 취업 준비를 했고, 면접을 봤고, 회사에 입사를 했다. 그래도 인생은 이어지니까. 


식당을 나서며 문을 닫고 나오자 찬 바람이 얼굴을 덮쳤다. 우리는 술에 얼큰히 취해 그래도 보니까 좋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헤어졌다. 성진이와 나는 방향이 같아 지하철까지 같이 타게 됐다. 


"그래도 넌 요즘 재밌는 일 하는 것 같다."


뜬금없이 성진이가 말했다.


"그래? 그런가.."


"남을 도와주는 일이기도 하고 사는데 도움 많이 될 것 같은데."


성진이는 대화를 이어갔다.


"동기들이랑은 연락 잘 돼? 취업 전선에 뛰어들고 많이 끊겼잖아. 취업이 잘 안 돼서 강제로 끊긴 경우도 있었고..."


"다 똑같지 뭐. 하는 애들만 하지."


"옛날엔 다 친했었는데. 이젠 진짜 연락 안 하는 사이가 됐네."


"다들 바쁘고 마음 맞는 사람과 지내는 것도 힘든 마당에 어쩔 수 없지. 뭐."


"나는 종종 은혁이가 사라진 전날 전화했던 내용이 떠올라. 그때 내가 조금 더 무신경하게 받지 않았다면 변하지 않았을까 종종 생각해. 나도 그때 언론고시 공부하느라 힘들었으니까. 아마.. 변하는 건 없었겠지. 너도 그때 일, 잊은 건 아니지?"


잊었다는 게 누가 말해도 모를만큼 무의식 속에 꽁꽁 감춰둔 걸 말하는 거야? 아니면 말해야 기억나서 어~ 어~ 아는척하는 걸 말하는 건 거야? 매일매일 생각하지 못하면 그게 잊은 건가?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마음속에서 고민하다 다른 말로 마무리했다.


"나도 종종 노룩산에 소나무를 생각해. 잘 있겠지? 그리고 다들 잘 살겠지."


은혁이가 사라진 후 반년정도 지나고 장례식이 없다는 게 확실해졌을 때, 몇몇은 우리끼리라도 잘 보내주고 잊지 말자며 학교 뒤 노룩산에 소나무를 심자고 제안했다. 그들은 동기, 후배, 선배들에게 문자를 돌리고 묘목을 사고 일정을 잡았다. 회사 일정이 있던 나는 갈 수 없었다. 노룩산 중턱에 심어진 작은 사진과 함께 오후 늦게 성진이한테 문자가 왔다. 동기들에게 보낸 단체문자였다. 


'은혁이 잘 보내고 소나무 튼튼하게 심었다. 시간 되면 다음에 같이 와서 보자.'


술에 취해 홧김에 자살한 딸의 사건은 심신 미약과 우울증이 인정되어 사망 보험금을 받게 되었다. 장례식은 하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시간이 지나고 딸의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며 전후사정을 이야기해 줬다. 자책하지 말고, 잊지 말고, 잘 성장하라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어머니는 우리와 마지막 인사를 할 때까지 미소 한번 짓지 못했다.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어머니 또한 자책하지 말고, 잊지 말고, 잘 성장하길 바란다. 


12월이면 항상 학교에서는 정문에 구유를 설치했다. 성탄절을 앞두고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졸업하고 몇 년은 항상 연례행사처럼 꽁꽁 옷을 입고 정문 앞에 구유를 보러 갔다. 앞에 서있으면 학교에서의 생활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많이 웃고 울었던 일, 아쉬웠던 일, 그리고 그때 그 사람들.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간 지 오래돼 딱히 할 말도 없고 만날 일도 없을 친구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겠지. 


동기모임이 끝나고 집에 들어오고 나서 오래된 물건들을 보관해 놓은 서랍장을 다시 열었다. 오래전 대학 때 학회지를 다시 펼쳤다. 뒷장의 1학년때 쓴 은혁이의 한마디가 보였다. ' 앞으로 다양한 문학 책을 보면서 재미나게 토론하고 국문인으로 열심히 살아보자.' 은혁이가 쓴 글을 검지 손가락으로 스윽 문질렀다. 과거가 현재로 소환되는 순간이었다. 


은혁아, 국문과로 성공하진 못했지만 돌고 돌아 소소하게 다른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아픔을 해결해주려 노력하고, 그리고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고 있어. 누군가에겐 미리 맞는 예방주사가 되기를 바라면서. 꾸준히 글을 쓰고 토론하고 그렇게... 이렇게 조금씩 성장해 볼게.


내년에는 꼭 노룩산에 소나무를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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