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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글놀 Nov 29. 2024

책 좋아하는 사서, 잘못 온 걸까?

관장실은 도서관 제일 위층인 4층에 있었다.

노크를 하고 들어가니 꽤 넓어 보이는 방 한편에

관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책상에 앉아 있었다.


"어서 오세요. 여기에 앉아요."


신규 사서 10명은 쭈뼛거리며 안내해 준 자리로 걸어갔다. 관장님과 거리가 가장 먼 순서대로 자리가 채워졌다. 내 자리는 앞도 뒤도 아닌 중간쯤으로 배정되었다.


큰 창문으로 비치는 햇살은 포근해 보였으나,

방 안에는 무거운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사서로 들어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공기의 흐름을 깬 관장님의 첫 질문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문헌정보학과를 복수 전공했던 모습, 공무원 준비했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정작 이유는 찾지 못했다. 나는 왜 사서가 되었을까? 그저 책이 좋았다는 답밖에 찾질 못 했다. 그 순간 까만 정장을 입은 남자동기가 손을 들고 당당하게 답변을 했다.


"저는 책이 좋아서 사서가 됐습니다."

"책이 좋아서요? 그렇다면 잘못 온 것 같은데요?. 하하하"


열 명의 사서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고개를 들어 관장님을 바라봤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런데 사서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가?

아니, 안 좋아하더라도 사서라면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닌가?'


관장님은 호탕하게 웃다가 이어서 말씀하셨다.


"책이 좋아서 들어왔다면, 생각을 바꾸는 게 좋아요. 책이 싫어질 수도 있거든요. 저의 경험담입니다. 일을 하다 보면 느끼겠지만 사서라는 업무가 책과는 거리가 있을 거예요. 책을 만지기는 하지만, 읽을 수는 없다는 거죠. 개인적인 취미 독서는 알아서 하면 되는 거고요.

도서관은 평생학습과 복합커뮤니티 공간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변화에 발맞춰 우리도 어떻게 발전시키면 좋을지 고민을 많이 해야 합니다.  


아직은 사서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몰라서 그저 책이 좋다고만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생각을 조금 바꾸고 일을 시작하는 걸 추천합니다. 그렇지 많으면 일을 할수록 힘들어질 수도 있거든요."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인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기다리는 걸까? '


누구보다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지만, 고개를 끄덕일 순 없었다. 그렇다고 반문할 수도 없었다.

이제 갓 들어온 신규가 그의 30년 경험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궁금했다.


'어떤 경험이 그의 마음을 바꿔 놓았을까??

처음에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어찌됐든 지금은 도서관장 아닌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관장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사서는 책과 거리가 멀어졌다니. 가깝게 만들기 위해 노력은 해봤을까?'




날이 추워서인지 붕어빵이 생각났다.

붕어빵은 팥, 크림, 심지어 고구마로 속이 바뀌어도 여전히 붕어빵이다. 본질은 속 재료에 따라 달라진다. 속 재료에 따라 사람들이 골라서 먹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사서의 본질은 무엇인가? 책이다.

그런데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서라니? 이름만 남고 본질을 잃은 사서가 되는 건 아닐까? 책이 없는 사서는 본질을 잃어버린 붕어빵처럼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장실을 나오면서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책이 사서에게 얼마나 중요한 본질인지 행동으로 보여줄 테야.'




(*이 글에서 말하는 '책을 좋아한다'라는 말은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라고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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