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글놀 Dec 06. 2024

왜 여기에 도서관이 있을까?

첫 발령지 "하령도서관"

교육이 끝나고 난 뒤 신규 사서 10명은 모두 발령을 받았다. 내가 발령받은 곳은 태어나서 처음 들어도는 하령이라는 마을 어귀에 있는 도서관이었다. 허허벌판에 중고등학교가 합쳐진 건물과 도서관이 나란히 서 있었다.


'이런 곳에 도서관이 있다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데 도서관이 있는 게 궁금했다. 내가 아는 도서관은 대부분은 시내에 있었다.

사람들이 올 수 있는 편리한 위치에 아이들도 쉽게 올 수 있는 곳이었는데, 도서관의 위치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도서관 외관은 한눈에 보기에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벽면에는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고, 금이 가 있기도 했다. 작은 창문들에는 오랜 시간 닦이지 않아 무늬처럼 되어버린 자연스러운 얼룩들이 있었다. 도서관을 둘러본 후,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충격에서 벗어나고자 내가 살 집을 구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발령받은 도서관 근처에는 원룸이 3개 있었다. 한 곳은 빈 방이 아예 없었고, 다른 한 곳은 오래된 건물로 외관이 낡고 어두운 느낌을 주었다.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는 듯해 공기는 텁텁했고, 내부는 좁아 답답했다. 방을 둘러보지 않고 그대로 나왔다.

마지막 원룸은 도로가에 있었고 그 동네에서 건물이 가장 컸다. 약간의 기대감으로 주인을 불렀다. 다행히 방 하나가 남았다고 했다.


"보증금 100 월 40"


원룸이었고 혼자 살기엔 적당한 크기였지만,

월세가 너무 비싸서 잠깐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옆집 문이 열렸다.


"아 XX 나간다고"


욕설과 함께 40대로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나왔다. 문 뒤로 널브러져 있는 술병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장님께 생각해 보겠다고 말씀드린 후 바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연속적인 충격으로 마음이 복잡했다. 낯선 마을, 낡은 건물,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환경들까지. 취업했다는 설렘과 기대는 어느새 불안과 혼란으로 뒤덮였다.


'나는 이곳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할 시간도 잠시뿐,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방을 구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다행히 시내에 있는 방을 구할 수 있었고, 도서관까지는 버스로 40분이 걸렸다.


그렇게 새로운 세계로 떠나는 낯선 여행이 시작됐다.






관장님과 행정 그리고 나는 하령도서관으로 첫 발령을 받았다. 규모가 작은 도서관에 나와 관장님은 사서였고, 나머지 3명은 행정과 관리직이었다. 도서관 직원은 이렇게 총 5명이었다.


첫 발령받은 셋은 함께 하령도서관으로 갔다. 낯선 환경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낯설다는 단어는 따뜻함으로 바뀌었다. 우리 눈앞에 꾸미진 않았지만, 다정함이 묻어나는 환영의 팻말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팻말을 보자마자 셋은 큰 소리로 웃었다. 5명의 직원이 모두 모여 인사를 나누고, 하루를 시작했다.

내 첫자리는 어린이 자료실이었다.


"겨울 방학특강 어디서 해요?"

"오늘 강좌 있는데 어디로 가면 되나요?"


자료실에 앉자마자, 이용자들이 들어왔다.

대부분 강좌 문의였는데, 보통 도서관은 3월에 강좌를 시작한다고 들었는데 여기는 1월부터 시작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원칙은 3월이지만 지역 특성에 따라 융통성 있게 조절하면 되는 거였다.)

특강과 강좌 내용을 확인한 후에 이용자분들께 안내를 드렸다.


수업이 시작하기 전, 강좌실에 수강생들과 강사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복도에는 수강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봤다.

수강생 분 중에 한 분이 나를 보더니 마치 어제 봤던 사람처럼 웃으며 들어오라 했다.

문 앞에서 쭈뼛대고 있으니 손수 나를 데리러 문 앞까지 온다. 책상 한 곳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수강생들은 선생님과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도서관이 왜 여기에 위치해 있는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허허벌판에 있는 도서관은 여러 읍. 면. 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잇는 중심지였다. 연결고리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던 거다.



마치 시골의 커다란 나무 아래 평상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모여들어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의 삶을 공유하면서 잠깐 쉬어가는 공간이었다.

도서관에는 쉬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였고, 언제나 그 자리에서 따뜻한 중심이 되어주고 있었다.


아름다운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자료실로 내려왔다. 그때 전화벨이 나의 상상을 순식간에 깨버렸다. 벨은 울리는데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몰랐다.


'여보세요?'라고 해도 될까?'


안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내 손을 멈추게 했다. 순간 예전에 학원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배웠던 전화받는 방법이 떠올랐다. 벨이 끊기기 전에 수화기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하령도서관입니다"






전화 한 통도 긴장이 됐던 도서관에서의 첫 하루는 그렇게 흘러갔다. 퇴근길에 오른 버스 안에서 오늘의 하루를 돌이켜봤다.


아름다웠던 추억을 무너뜨렸던 묵현도서관의 상처 때문이었을까? 오래되고 낡은 외관이 같아서일까? 도서관 안의 분위기도 같은 느낌일 거라 단정했었다. 다행히 같지 않았다.  


도서관마다 분위기가 다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곳을 채우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과 직원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도서관의 고유한 색을 입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하령도서관에 어떤 색을 입혀나갈 수 있을까?

따뜻함을 잘 유지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아직 알지 못하는 어떤 놀라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버스는 왔던 길을 따라 시내로 달려갔고,

내 생각은 상상의 길을 따라 자유롭게 날아올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