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한 지 벌써 세 달이 흘렀다.
1월에는 도서관에서 1년 동안 진행할 프로그램과 사업 계획을 세워야 했다.
업무 파악이 되지 않았지만, 그건 내 사정에 불과했다.
시간은 조금도 기다려 주지 않았다. 내 마음의 시계는 앞서가는 분침을 쫓느라 헐떡이는 초침 같았다.
겨우 일을 마무리하고, 한숨 돌리려는 순간 전화가 왔다
"상반기 강좌 내용은 언제 올라오나요?"
3월에 있을 상반기 강좌 문의 전화가 오기 시작했고. 홈페이지에도 관련 문의 글이 계속 올라왔다.
잠깐이라도 쉬면 안 될 것 같았다.
자세를 고쳐 앉아, 행사 세부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계획서가 마무리된 후에는 홍보를 해야 했다.
도서관 자체에서 운영하는 업체에 홍보 디자인을 요청했다. 디자인만 완성되면 홍보를 시작하면 되는데,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어서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하령도서관 김나윤입니다. 홍보가 급해서 전화드렸습니다. 죄송한데, 홍보 디자인을 조금 빨리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사정은 알겠지만, 29개 도서관에서 한꺼번에 요청을 주셔서요. 저희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속도가 평소보다는 느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아는지라 더 이상 말할 수는 없었다.
알겠다고 대답한 후에 전화를 끊었다.
고민 끝에 홍보지를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다.
검색했더니 다행히 미래캔버스, 캔버와 같이 홍보지를 만들 수 있는 사이트들이 있었다.
몇 시간 동안 홍보지 제작에 몰두한 끝에, 완성된 결과물을 가지고 관장실로 향했다.
다른 기관은 모두 비슷한 홍보지를 사용했지만, 내가 만든 홍보지는 달랐다. 그래서 독특한 내 홍보물을 자신 있게 내밀었다.
"홍보지를 업체에 맡겼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제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입꼬리가 계속 올라가려는 것을 참기 어려웠다.
관장님은 홍보지를 한참 동안 꼼꼼히 살펴보시더니, 조용히 펜꽂이로 손을 뻗었다. 빨간펜이 홍보지에 닿는 순간, 홍보지는 순식간에 도화지로 변해갔다.
빨간펜으로 한가득 표시된 홍보지를 들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뭐가 틀렸던 걸까? 빨간색으로 칠한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보이지 않았던 오탈자가 왜 이렇게 많지?'
'문장 연결이 어색했네..'
'내가 왜 이 날짜를 적었지? 큰일 날 뻔했네'
'QR코드 이미지는 어디로 간 거지?'
이런 홍보지를 만들어 놓고선 입꼬리가 올라갔다니,
생각할수록 부끄러웠다.
왜 이런 실수가 생겼을까?
마음이 급했던 탓에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초조함에 시야가 좁아졌고, 그로 인해 실수들이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체크해 주신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며 천천히 수정하기 시작했다. 수정이 끝난 후에는 출력을 해서 두세 번 더 꼼꼼히 확인했다.
그러고는 다시 홍보지를 들고 관장실로 갔다.
심장이 뛰었다. 손에 땀이 배어들었다. 홍보지를 잡고 있는 손가락 끝이 조금 떨렸다.
관장님은 홍보지를 천천히 훑으셨다. 고요한 침묵이 몇 초간 이어졌다.
"좋네요. 잘 수정했고, 잘 만들었어요. 처음이라 긴장했죠? 시간이 촉박해서 마음이 급했을 거예요.
하지만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실수를 줄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번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신규니깐 모든 게 용서되는 시기예요. 실수했다고 속상해하지 말고 실수를 발판 삼아 앞으로 더 나아가길 바라요. 고생했어요"
어떻게 내 마음을 읽으셨을까?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실수한 것이 속상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여서 기뻤다.
관장님의 말씀을 곱씹어 보았다. '실수를 줄이고 완성도를 높이는 일, 그러기 위해서 여러 번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초보일 때는 더더욱 가능하다'
어쩜, 상대방을 배려하면서도, 일에 대한 태도를 확실히 짚어주실 수 있을까? 리더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까지 배운 것 같았다.
이번 경험을 통해 한 가지 확신이 생겼다.
실수는 나를 멈추게 하는 게 아니라, 더 나은 사람으로 나아가게 하는 디딤돌이라는 점이다.
실수의 흔적이 가득했던 홍보지를 다시 들여다봤다.
얄밉게만 보였던 빨간펜이 이제는 나를 성장으로 이끄는 등불처럼 빛나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