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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지켜볼 거야"

by 책글놀

(이전 글에 이어서)


마음이 불안했다.

무슨 난동을 피우는 건 아닐까.

관장님께 죄송하고 또 죄송했다.

자리에 앉을 수도 없었다. 문 앞을 서성이며 계속 오갔다.

큰 소리가 들리진 않을까 싶어 두 귀는 관장실 쪽으로 향해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선생님, 여기로 잠깐 올래요?"


관장님이었다. 올 것이 왔구나.

바로 죄송하다고 사과부터 할 작정으로 관장실로 걸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먼저 분위기를 살폈다.

다행히 싸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까는 제가 죄송했습니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안 된다고 말씀드려서 속상하셨죠?"


이용자는 나를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물함은 최대한 사용하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이용자분은 사과를 받지 않았다.

TV에서만 보던 것처럼 무릎도 꿇어야 하는 건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관장님이 이제 나가보라고 하셨다.

한 번 더 고개를 숙이고 자료실로 돌아갔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그 순간을 못 참아서'


자료실로 돌아가는 내내 그때의 시간을 돌리고 싶었다.


10분 뒤쯤, 관장실 문이 열렸다.

(참고로, 관장님 실은 1층에 자료실과 함께 있었다)

눈은 모니터에 있었지만, 온 신경이 관장실로 집중됐다.

이용자 분이 나오셨고, 어린이 자료실로 걸어오는 게 느껴졌다.

문이 확 열리더니 이용자 분은 한 마디를 남기고 나가버렸다.


"내가 잘 지켜볼 거야!"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가 그렇게 잘못한 것일까? 이렇게 사과를 해야 하는 게 맞는 걸까?

난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머리가 아팠다.

오만 생각에 사로잡혀 관장님이 내 앞에 오신 줄도 몰랐다.


"놀랐죠? 너무 신경 쓰지 마요. 도서관에서 일을 하다 보면 참 많은 민원들이 많아요.

특히 저분은 술까지 드시고 오셔서 더 조심스럽긴 했어요. 아까는 사과하라고 부른 게 아니었어요.

상황을 정리해볼까 싶어서 불렀어요. 그래도 고마워요. 어려웠을 텐데 먼저 사과해 줘서.

사과할 입장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잘 대처해 줬어요. 경력 1년 차든, 10년 차든 적응되지 않는 게 민원이에요. 처음엔 누구나 이런 상황에 놀라고 힘들어하니까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


따뜻했다. 내 마음의 무거운 짐이 조금은 내려앉는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앞으로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이런 일들이 앞으로 자주 있을 것이다.

일을 계속하기 위해 조금 더 단단해질 필요가 있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직장은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 스스로 발을 들였다.

혼자가 아닌 팀으로 일하고 있는 곳에서, 내 개인적은 감정을 지나치게 내세우지 말자는 결심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조절하고 스스로를 다스리는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했다.

나에게는 습관이 있다. 이런 문제가 생길 때마다 책을 찾는 것이다.

책에서 문제의 해답을 찾고, 때로는 위로를 받는다.


예전에는 도서관을 직접 찾아가야 했지만, 지금은 매일 도서관에 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언제나 멘토가 옆에 있어주는 것처럼 든든했다.

서가를 서성이며 내 문제를 해결해줄 책을 찾기 시작했다.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온다.

기시미 이치로, <미움받을 용기>.

제목부터 강렬했다.

미움은 받기 싫은데 받을 수밖에 없을 때는 정말 이런 용기가 필요할 것 같았다.

이 책은 앞으로 일을 하면서도 나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알려줄 것 같았다.

미움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 그것이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무기가 아닐까.




약 한 달 동안 그 이용자는 도서관에 오지 않았다.

그 사이 나는 조금씩 평정을 되찾았고, 그날의 기억도 조금씩 희미해져 갔다.

그런데 어느 날, 자료실 문이 열렸다.

낯익은 얼굴이 데스크 앞으로 다가왔다.

그 이용자였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용자는 천천히 내 쪽으로 걸어왔다.

가까워질수록 나는 더 긴장을 했다.

데스크 바로 앞에서 와서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다음 화에 이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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