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님, 미안합니다. 내가 그날은 감정이 너무 격했어요. 딸내미들한테 엄청 혼났어요. 내가 서울에서 내려와 혼자 살다 보니 말주변도 없고 감정 조절도 약해졌나 봐요. 미안했습니다."
태도가 정말 달라졌다.
한 달 전만 해도 굶주린 늑대처럼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오늘은 한 마리 온순한 양처럼 말투와 눈빛이 부드러웠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괜찮습니다. 사물함은 정리해서 사용하실 수 있도록 해놨습니다. 편히 사용하세요. 저도 처음 와서 잘 몰랐어요. 응대하는 데 있어 이용자분의 기분을 상하게 했나 봐요. 저도 죄송합니다."
그렇게 이용자와 나는 화해를 했고, 문제는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그분의 사과는 그날로 끝나지 않았다. 다음날, 그다음 날, 또 그다음 날..... 시간이 지나도 사과는 계속되었다.
심지어 2년 후 근무지 이동하는 날까지 볼 때마다 계속 사과를 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진심으로 미안해하시는구나 하고 생각하려고 했다. 그런데 계속되는 사과는 왠지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다.
지금이라면 웃으면서 "그만하셔도 괜찮아요."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당시에는 마치 긴장 속에서 신중해야 하는 이병 같아서 조심스러웠다. 그저 같이 고개를 숙이는 방법 말고는 선택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긴장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내 말투와 표정이 가장 컸다. 원리원칙을 지켜야 하고 융통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성격이었는데, 그 성격이 말투와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매뉴얼을 좋아하는 내게 주변 사람들은 직업으로 군대를 추천하기도 했다. 그 정도로 인정머리가 없었고, 딱딱함이 배어있었다.
3년 공부 끝에 공무원에 합격하고, 기쁨을 누리고 있을 때였다. 남자친구가(지금의 남편) 조심스레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너 성격이 조직생활을 하는데 힘들 수도 있어. 3년 동안 공부만 하기도 했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고. 너는 표정관리가 하나도 안 되어서 얼굴에 감정이 다 드러나. 직장 생활을 하려면 연습을 좀 해야 할 것 같아. 내가 먼저 해보니 그렇더라고."
처음에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기분이 나빴다. 그런데 남자친구의 말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말투와 표정으로 자주 싸웠기 때문이다.
어느 날 양치질을 하다가 내 앞에 있는 거울에 미소를 지어봤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웃는다고 생각했는데, 썩은 미소(줄여서, 썩소)를 진 사람이 보였던 것이다. 그때부터 거울을 볼 때마다 미소 짓는 연습을 했다. 결국 웃을 때는 활짝 웃는 게 가장 좋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미소 X, 어정쩡한 웃음 X)
말투는 어떻게 바꿔야 할까? 곰곰이 생각하다 동네 서점에 가기로 했다. 고민거리가 있을 때, 해결할 방법이 딱히 없으면 마지막은 항상 책으로 해결했기 때문이다. 말투에 관한 책이 이렇게나 많았던가. 나만 고민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어떤 책을 고를까 고민하다가 눈에 띄는 책 한 권을 골랐다. 나를 향해 웃고 있는 책이었다. 내 미소가 누군가에게 이런 느낌을 주면 참 좋겠다.
책 내용은 다음 글에서....
30년 넘게 함께 해 온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건 불가능하다. 책 읽고, 거울 보고 웃는 연습 하면서 혼자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했다. 하지만 원래 모습은 평소에는 나오지 않는 법! 급할 때 나도 모르게 불쑥 나온다.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이유는 본래의 내 말투와 표정이 나올까 봐서였다.
그런데 그 분과 이야기할 때 나도 모르게 그걸 모두 잊어버렸던 것이다.
'그분이 그렇게 화를 낸 이유 중에 하나는 내 말투와 표정 때문은 아니었을까?'
'관장실에 가서 사과할 때 진심이 담기지 않은 사과를 표정에서 들켜버린 건 아니었을까?'
'2년 동안 사과를 할 사람은 그분이 아니라 내가 아니었을까?'
내 말투와 표정이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꾸준히 연습하리라 다짐해 본다.
금요일 발행인데, 이번 주에도 하루가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A형 독감에 걸렸는데, 고열로 시달리다가 수액맞고 겨우 살아났거든요...
독감이 엄청 유행이라고 합니다. 모두들 독감 조심하세요 ㅠㅠ
(병원에 가니 수액 맞을 곳이 없어서 대기할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