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니기에 아무나 될 수 있는 자유
애초 뼈를 묻을 회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만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채 참고 견디던 두 번째의 회사 생활이 끝났다. 첫 경력직 이직에 더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를 남기고싶던 욕심, 똑똑이들이 수두룩 빽빽인 동료들 사이에서 어떻게서든 고유한 영역을 만들고싶다던 욕심. 잠시의 여유와 일탈이 스며들 틈 없도록 온 몸에 힘이 뻣뻣하게 들어가있던 3년 반의 생활은 결국 퇴사 이후 축 늘어지듯 풀어진 긴장에 온갖 병을 몰고왔다. 잠시 잠깐의 여행 후 몰려온 질병 대군에 함락당한 나는 3주간 시체처럼 침대에 고요히 침전해있었다. 그리고 눈을 떠 보니 눈에 띄게 높아진 물가와 금리, 그간 돌보지 못한 집안일, 아직도 풀지 않은 회사 짐짝이 눈에 들어온다. 아. 그리곤 문득 깨닫는다. 나는 지금 트랙을 벗어났다. 링 밖으로, 경기장 밖으로 나온 파이터. 회사 밖 회장님이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되는 것처럼,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 그렇기에 아무것도 될 수 있다.
인수인계 서류를 만든다. 후임자가 어떤 일이건 제 일처럼 꼬박 해내게 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자료를 작성한다. 토씨하나 놓치지 않고 업무와 관련된 유관 페이지부터 가입정보, 프로세스, 관계자 C/P까지 3년 반을 축적한 정보들을 고스란히 쥐어짜넣는다. 한 페이지에 작성하려고 했던 자료는 점점 방대해져 결국 다른 페이지를 생성한다. 인수인계 자료는 페이지에서 그룹이 되고, 그러다가 나름의 위계를 이루는 폴더가 된다. 자료 승인을 받으러 팀장님께 링크를 보내고 자리에 가 보니, 팀장님이 말한다. "인수인계 자료의 구조를 보면 그 사람이 일을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있지. 잘했고 참 아쉽다."
칭찬 일색인 나의 결재선, 원하는 어떤 프로젝트건 추진할 수 있었던 나쁘지 않은 평판. 똑똑이 동료들. 내가 산소호흡기를 껴야한 이유는 무엇이었던가.
퇴사 이틀 후, 거진 8년만에 다시 스페인으로 떠났다. 회사 안에서건 밖에서건 힘들고 약해질때마다 나는 2012년 스페인에서의 호시절을 그리워하며 술에 취하고 우울에 젖어들었다. 이번 여행지를 정할 때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선택지만 있었다. 다시 둘러본 마드리드부터 살라망카, 그라나다, 마요르카, 바르셀로나까지 그 어느 도시도 12년, 14년에 느낀 풍광과 다름이 없었고, 시대가 흘러감에도 고스란히 도시가 유지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에 감복한다. 유년 시절의 동네는 이미 브랜디드 아파트가 차지한 지 오래고, 창문을 열면 옆집 벽 혹은 아파트 뷰 정도가 일반적인 조국에서 벗어나 오랫만에 마음놓고 지난 역사를 되새긴다. 10년 전 이 곳에서 머문 나의 역사는 그 자리에 고스란히 변하지 않고, 공간도 변하지 않았다. 달라진 건 오직 나뿐이다. 문제의 근원이 뭐인지 스스로 물으며 3년 여의 시간을 톺아보다보면, 결국 귀결되는 문제는 하나다.
내가 근무한 곳은 꽤 이름난 기업의 신사업팀이다. 그룹사의 정체된 비즈니스에 뜨거운 물을 부어보자며 추진된 팀인만큼 꽤 이름난 경력직들과 열정맨들이 모여드는 곳. 어떤 일도 시도할 수 있었던 이 곳에서 한 1년동안은 경주마처럼 미친듯 일을 했고, 1년 간은 복어마냥 독이 가득 차 "뭔가가 불만인데, 무엇이 불만인가?"를 질문한다. 정답, 시스템. 그리고 1년간 퇴사 시기를 고민했다. 지혜롭고 욕심 많은 이들이 가득인 집단에서 일이 즐겁지 않을 리 없다. 그러나 그 열정이 끓어넘치지 않도록 정도를 마련해주는 것, 새로이 시작하는 비즈니스인만큼 어느 부서보다 열띤 기여에 비해 고속성장이 어렵기에 적당한 수준의 보상을 만들어주는 것과 미미한 매출성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사내 여론을 만들어주는 것. 내가 기대한 복지란 품의 유지비나 떡값, 값비싼 커피머신 따위의 실물적인 것들보다는 이렇듯 보이지 않은 성질의 소프트웨어였다. "무엇이 불만인가"를 정의하는 데에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고, 실은 회사에 기대하는 것은 누구나 다르기에 동료나 친구에게 동의를 바라거나 하지 않았다. 모두가 다른 이유로 원하고 증오하며 회사를 다닌다. 궁극적으로 "이 회사 체계 없어"가 요지가 아니다. 다만 나는 조금 더 인간을 이해해 설계된 심화된 인사(人事)구조가 훨씬 더 중요했을 뿐이다.
MBTI를 보면 나는 P와 J가 절반인 인간이다.
여행을 떠나면 계획에 따라 움직이기도, 즉흥적이고 싶기도 한 애매한 인간에 속하는 것.
"이직할 회사 왜 정하지 않고 나가?" 첫 번째 퇴사도, 두 번째 퇴사도 같은 질문을 하는 친구가 90%다. 잽싸게 "멀티태스킹이 쉽지 않아 이회사에서 저회사 지원하는 일은 못 하겠더라" 하는 너스레를 떨지만 전적으로 핑계다. 어떤 업계로 이직을 하고싶은지, 창업을 하고 싶은 눈꼽만한 마음도, 다른 직무로 전직해보고도싶은 모험심까지 마음 속 수만 개의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와중에 그저 내 위치와 분수에 비슷해보이는 다른 회사들에 지원해서 떠밀리다시피 일을 하고싶지 않았을 뿐이다. 어느 책에서 30대 중반이 되면 파놓은 우물 중 원하는 우물을 더 깊이 파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마저 사바사였던걸까, 아니면 내가 아직도 물정 모르는 피터팬인걸까.
그래서 <1박 2일> 관두면 뭘 하려구 그래?
김C는 조용히 대답한다. 유학 가려구
유학?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지.
웬 유학? 어디로?
베를린.
베를린? 거기 가서 뭐하려고?
김C가 말을 잇는다.
사실 유학도 아니고 뭣도 아니야. 그냥.. 어느 순간 궁금해지더라고. 나도 이제 마흔인데.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 건지. 이것이 내가 원하는 인생인지. 그냥 TV에서 나오고 음악 하면서 시간을 어영부영 보내고 있는 것만 같아서. 더 늦기 전에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언지 알아보고 거기에 빠져서 살고 싶어. 지금 아니면...영영 이러고 있을 것만 같아서. 일단 떠나야겠다고 결정한 거야. 그래야 알 것 같더라고. 내가 누군지.
나영석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
퇴사를 하는 그 날은 참 감격스럽다. 3년간 참 정 붙일데 없다며 생각했던 회사 곳곳 부서의 동료들에게서 축하(?)선물과 커피콜이 넘친다. 저 사람과 일했다면 나는? 저 부서에서 일 했다면 나는? 하며 망상을 해보는데, 여지없이 결론은 "아마 그래도 그만뒀겠지"다. (누군가 말했다 [최고의 기업이라 손꼽히는 삼땡전자도 다니는 사람은 체계없다고 한다]) 시스템에 질려, 사람에 치여, 야근에 치여 등등 퇴사를 하는 이유를 꼽자면 100이면100이 모두 다르고, 치명적인 이유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다. 단점이 오케스트라마냥 조화롭게 기승전을 만들어대다가 결이 오는 때가 이별할 때인거다. 아니면 기승전결을 모두 무시할수 있는 임팩트있는 사고가 생겼다거나. 문제를 껴안아 해결해 볼 것인가, 아니면 문제를 스킵하고 다른 문제를 풀 것인가. 아니면 수포자마냥 언어영역과 영어에 올인할것인가. 이것은 오롯이 개인의 선택이며, 선택에는 고민의 시간이 따르기 나름이다.
늘 나를 둘러싸고 있는 맥락에서 떨어져 새로운 감각으로 나와 세상을 볼 때만 얻을 수 있는 영감과 에너지가 있다. 타인으로부터 비롯된, 혹은 사회가 이미 만들어놓은 어떤 맥락 안에서의 영감이 아닌 오롯이 나로부터 비롯된 영감. 이러한 영감과 에너지는 자존감과 자기 확신의 씨앗이 된다.
김진영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어디 한 달 살기, 무슨무슨 테라피처럼 어떤 이벤트가 필요하기보다 원하던 삶의 모양을 가만히 돌이켜보고 마음이 말하는 의미를 명료하게 알아차리는 과정이 필요했다. 첫 번째 퇴사 후에는 내게 주어진 자유가 "격무로 너덜해진 마음을 차근하게 보듬어줘라" 라는 의미였다면, 지금은 주어진 자유가 마냥 편치는 못하다. 비슷한 처지로, 혹은 퇴사를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다 괜찮아" 혹은 "쉬어가도 괜찮아"라고 말하지도 못하겠다. 대출 이자, 결혼, 육아 등등 개인이 떠안은 현실적인 문제 또한 100이면 100 다르기에. 다만 현실이 허락하는 선에서는 환승 이직처가 없어도, 커리어의 거창한 목표가 없어도 손을 놓아야겠다 확신이 들 때 잡은 손을 놓는 것은-모든 결정은 근사한 용기다.
퇴사 이후의 심호흡이 어떤 의미를 담아야 할 지는 차근하게 고민해보고, 달리던 차에서 서서히 브레이크를 밟아 버스 정류장이 너무 멀어 걷다 지치지 않을 어딘가에서 여정이 잠시 멈추길. 그리고 잠시 멈춘 그 시간이 눈물겹게 아름답길. 그리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지금의 시기를 사랑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