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시오, 여기가 어디요?”
인재는 3시간 넘게 걷고 또 걷다 드디어 사람을 만났다. 얼굴이 시커멓게 탄 그 사람은 사극에 나오는 일꾼 복장을 하고 등에 물지게를 지고 있었다. 그 복장을 보니 인재도 저절로 사극 톤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예상대로 그 사람도 옛날 사람처럼 대답했다.
“길을 잃었소? 차림새가 묘하구려.”
인재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 사람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 길로 쭉 내려가면 마을이 하나 있을 것이오. 거기 가서 물어보오.”
“아, 네. 고맙습니다. 그럼.”
꾸벅 인사하고 사내가 가리킨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두 갈래 길이 나왔다. 길이 다 똑같이 생겨 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감이 안 온다. 그 사람에게 자세히 물어보지 못한 것을 후회하다 그냥 왼쪽 길을 선택했다. 계속 걸었다. 하염없이 걸었다. 왼쪽 길이 아닌가 보다. 가도 가도 계속 대나무숲만 나온다. 인재는 다시 돌아갈까 고민했지만 이미 너무 많이 와 버려 돌아갈 바엔 그냥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대나무 숲 지옥에서 드디어 사람을 다시 만났다. 그것도 무려 10명쯤 된다. 각자 손에 긴 칼을 들고 있고…. 인상이 험악해…. 뭐라도 털릴 것 같은 상황이다. 그들 중 털보가 말했다.
“눈치 있으면 그냥 다 내놔.”
“왜 이러세요. 전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근데 복장이 왜 이래?”
“다른 세계에서 온 지 얼마 안 돼서…. 혹시 먹을 거 좀 있으시면….”
“뭐야, 이거 완전 거지네.”
배고픈 것도 서러운데 털보가 거지 취급을 한다. 이전 세계에서 미친 듯이 썼던 그 마법 무기들만 있었으면 저놈의 지저분한 털을 싹 다 태워버렸을 텐데. 아쉽고도 아쉽다. 일단 지금은 탈출이 우선이다. 무기를 떠올리던 인재는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흐흐흐.”
“뭐야, 왜 저래?”
“히히히, 으하하하.”
“미친 거 아냐?”
당황한 산적들이 잠시 머뭇거리자, 인재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봐, 아저씨들, 내가 어디서 온 줄 알아?”
“갑자기 저거 왜 저래?”
“나무가 살아서 움직이는 신기한 동네에서 왔어. 이 주머니에 뭐가 들었는지 알 것 같아?”
“헛소리 그만하고….”
“꺼내는 순간 여기 있는 사람 다 같이 저승 보낼 폭탄이야.”
그 소리를 듣자 인재 오른쪽에 서 있던 산적의 얼굴에 당황하는 기색이 엿보였다. 인재는 지금이다 싶어 주머니에서 빈손을 빼 그 산적을 향해 뭔가 던지는 척했다.
“으악!”
산적이 머리를 감싸 쥐고 웅크린 사이 인재는 그 옆을 날다람쥐처럼 빠져나가 달렸다. 진짜 앞만 보고 온 힘을 다해 한참 달렸는데, 인재의 머리 위로 털보가 붕붕 날아 지나가더니 앞을 가로막았다. 어깨에 긴 칼을 기대고 혀를 찬다.
“이거, 이거 요망한 놈일세.”
사람이 막 날아다닌다. 무협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허공을 걸어 인재 앞에 착륙하지 않았던가? 털보의 표정으로 보아 이제 자비심이 거의 다 바닥난 모양이다. 이를 어쩐다? 그때 어디선가 칼 한 자루가 날아오더니 털보를 공격했다. 털보는 깜짝 놀라며 칼을 막더니, 사람도 없는데 혼자 춤추는 칼과 함께 열심히 싸우기 시작했다. 뭐지? 잠시 후 등 뒤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아저씨, 괜찮아요?”
뒤를 돌아보니 민정이 어떤 젊은 남자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남자는 20대 청년의 얼굴에 백발 머리여서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어? 너? 어디 있었어? 여긴 어디고? 이 사람은 누구?”
“아저씨는 여전하네요. 하나씩만 물어봐요. 좀.”
그러는 동안에도 털보는 저절로 움직이는 칼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민정은 옆에 있던 젊은 남자를 소개했다.
“이분은 화산파의 일대제자 백운천이라 하오.”
“화산파? 일대제자?”
“그렇소. 여긴 무협 소설의 세계요! 나는 백운천의 수제자 백민정이라 하오.”
<다음 편에 계속>